성고문, 모의처형, 전동드릴... CIA '잔혹한 고문'

미 상원 정보위, 9·11 사태 후 테러 용의자 고문 실태 보고서 발표

등록 2014.12.10 10:13수정 2014.12.1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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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앤 파인스타인 미국 상원 정보위원장의 중앙정보국(CIA) 고문 실태 보고서 공개를 생중계하는 CNN 뉴스 갈무리.
다이앤 파인스타인 미국 상원 정보위원장의 중앙정보국(CIA) 고문 실태 보고서 공개를 생중계하는 CNN 뉴스 갈무리. CNN
다이앤 파인스타인 미국 상원 정보위원장의 중앙정보국(CIA) 고문 실태 보고서 공개를 생중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성고문, 모의처형, 전동드릴, 잠 안 재우기….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테러 용의자에게 가했던 잔혹한 고문이 세상에 공개됐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는 10일(한국시각) 지난 2001년 9·11 사태 이후 CIA의 테러 용의자 고문 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밀로 지정된 총 6800쪽 분량의 서류를 수년간 검증을 거쳐 약 500쪽으로 요약한 이 보고서에는 전 세계 CIA 비밀 시설에서 알카에다 대원들에게 가했던 CIA의 모든 고문 기법과 사례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담긴 CIA의 고문 기법인 이른바 '선진 심문(enhanced interrogation) 프로그램'은 그동안 CIA가 의회나 언론에 공개한 것보다 훨씬 끔찍하고 잔혹했지만, 목표한 성과도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CIA는 알카에다 간부와 요원들을 가두고 전동드릴로 위협하거나 5일 넘게 잠을 재우지 않고 수면을 박탈해가며 신문했다. 또한 빗자루로 성고문 위협을 가하고, 심지어 상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모의처형'을 연출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물고문, 폭행, 추위에 노출시키기 등 다양한 고문 기법을 동원했다.

 

더구나 보고서는 CIA가 가혹한 고문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 용의자들로부터 핵심 정보를 전혀 얻어내지 못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사실상 고문이 테러 방지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 공개를 주도한 상원 정보위원장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민주당)은 "고문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테러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고 답하겠다"면서도 "확실한 결론은 CIA의 고문 프로그램에 너무나 많은 결함(flaws)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퇴임하기 전 고문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종료시켰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취임 이후 이를 전면 금지한 바 있다.

 

'인권국가' 미국 이미지에 타격... 부시 행정부 반발

 

 지난 2005년 미국 중앙정보국(CIA)를 방문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지난 2005년 미국 중앙정보국(CIA)를 방문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백악관 홈페이지 아카이브
지난 2005년 미국 중앙정보국(CIA)를 방문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아카이브

이번 보고서 공개로 인권 국가를 자부하는 미국과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 CIA의 도덕성이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은 물론이고, 민주당과 공화당, 오바마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당 성향의 앵거스 킹(무소속) 의원은 "2차 세계대전 후 전범인 일본군이 가했던 고문을 CIA가 한 것"이라며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깎아내리고 전 세계 테러리스트들을 자극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엔도 나섰다.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은 성명을 통해 "과거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따라 국제 인권법에 어긋나는 조직적인 인권 범죄가 발생했다"며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책임자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9·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한 부시 행정부 인사와 공화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부시 전 대통령은 CNN에 출연해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CIA 직원들이 있다는 것은 미국의 큰 행운"이라며 "보고서가 조국을 위한 애국자들의 헌신을 헐뜯는다면 무척 잘못된 것"이라고 맞섰다.

 

부시 행정부 시절 CIA 부국장을 지낸 존 맥로린은 "이번 보고서는 정보를 선별적으로 이용하고 특정한 논리에 맞춰 왜곡된 것"이라며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CIA를 이끌고 있는 존 브레넌 국장도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검토한 바로는 가혹한 조사를 통해 실제 테러 계획을 막아내고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했다"며 "미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데 (고문이)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고 보고서의 주장을 반박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를 의식한 듯 "이번 보고서가 해묵은 정쟁을 다시 일으키는 이유가 되지 않아야 한다"며 "어느 국가도 완벽하지 않지만 미국의 특별한 힘은 과거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더 발전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테러 자극할라... 미국 '비상 경계령' 돌입

 

미국 정부는 보고서가 불러올 파장에 대해 만반의 대비를 해왔다. 보고서 공개 후 전 세계 테러 단체들이 공격을 가할 우려가 제기되자 미국 국방부와 CIA는 일찌감치 경계 태세 강화에 나섰다.

 

전날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회견에서 "보고서가 공개되면 전 세계 미국 시설과 미국인에 대한 위협이 증가할 수 있다"며 "지난 수개월 동안 보고서 공개 후 벌어질 사태에 대비했고 대사관이나 군 기지 등 주요 외부 시설에 대한 경계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고문을 통해 중요한 테러 정보를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고문이 부적절하고 미국을 안전하게 만들지 못 한다고 믿는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보고서 공개를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의 보고서 공개 직후 성명을 내고 "CIA의 가혹한 고문 기법은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며 "내가 취임 후 곧바로 고문을 금지한 이유"라고 강조하며 전임 부시 행정부와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당시 고문에 가담했던 CIA 직원들에 대한 조사는 않기로 결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미국민의 안전을 수호하는 것보다 더 큰 책임은 없다"며 "모든 국력을 동원해 우리의 이념을 공격하려는 알카에다와 다른 극단주의자들에 맞서 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CIA도 성명을 통해 "우리는 역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조국이 직면한 수많은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며 "과거의 배움으로부터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만 미국민을 보호하는 우리의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의회 #중앙정보국 #CI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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