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려 만났지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중국에서의 추억 ④] 푸다오와 후샹으로 얻은 인연

등록 2014.12.11 11:14수정 2014.12.1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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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의 교재... 덕분에 한국어를 중국어로 가르치며 공부할 수 있었다.

우리의 교재... 덕분에 한국어를 중국어로 가르치며 공부할 수 있었다. ⓒ 최하나


중국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은 푸다오(辅导)를 적어도 한 개 쯤은 한다. 한국어로 과외에 해당하는 푸다오를 하는 이유는 당연히 원어민과 이야기를 나누며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푸다오를 하나만 하는 학생도 있지만 두세 개 하는 경우도 많다. 사람마다 자주 쓰는 어휘와 고유의 억양이 있다 보니 지역을 달리하거나 성별을 달리해서 푸다오를 하는 것이다.


푸다오의 가격은 비싸지 않다. 당시 물가로 한 시간에 10위안(한화로 1300원)쯤 했는데 우리에게는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반대로 중국학생들에게는 고소득 알바에 해당했다.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아르바이트의 경우 시간당 5위안을 주니 한 시간에 약 두 배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셈이었다. 푸다오를 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대학교 건물 안에 전단지를 붙여놓으면 연락이 오고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해본 뒤 결정하면 된다. 그게 싫다면 한국인 학생에게 아는 중국인을 소개받는 방법도 있다.

푸다오는 주로 학교 안 빈 강의실 혹은 자기 집에서 이뤄진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푸다오를 위한 전용공간이 있었다. 솔직히 나는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끄러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안 기숙사에 살던 나는 푸다오를 집으로 불러 공부를 했다.

내가 푸다오를 구하게 된 건 전단지를 붙여서도 아니고 아는 사람에게 소개를 받아서도 아니었다. 우리의 만남은 순전히 실수로 시작되었다. 하루는 배가 고파 시장에 가서 밥을 먹는다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 저녁을 다 먹고 돌아왔는데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당시 우리 기숙사는 자동잠금장치가 되어있어 문을 닫기만 하면 잠가졌다. 설상가상으로 룸메이트들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추워서 두 발을 동동 구르다가 건물 앞 공터에 앉아있는데 한 중국인 여학생이 다가왔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무슨 일이 있니?"
"열쇠가 없는데 룸메이트도 집에 돌아오지 않아서 들어갈 수가 없네."
"그럼 걔네 올 때까지 우리 기숙사에 가 있을래?"

그렇게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알고 보니 그녀는 같은 학교 대학원생이었고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컴퓨터로 예능 프로그램을 함께 보며 시간을 때웠다. 며칠 뒤 나는 고마운 마음에 그녀에게 밥을 샀고 그 후로 몇 번을 더 우리는 밥을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성격도 쾌활한 그녀가 마음에 들어 푸다오를 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고 그 다음 주부터 우리는 함께 공부를 하게 되었다.


푸다오라고 해서 특별한 커리큘럼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나의 경우에는 교과서 본문을 외워 검사를 받고 발음과 성조를 교정 받았다. 가끔은 잡담을 나누기도 하고 쇼핑을 함께 한 적도 있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우리는 약 3개월 정도 시간을 함께 보냈다. 여러 명과 푸다오를 해봤지만 그 중에서도 그녀는 제일 좋은 선생님이자 친구였다.

" 一路顺风(이루순펑)"


떠나는 나에게 그녀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으면 한다는 덕담을 건넸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푸다오가 과외에 가깝다면 후샹(互相 , 원래는 서로 돕는다는 뜻으로 互相帮助라고 한다)은 언어교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서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 각자의 모국어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당연히 돈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보다 한국인과 후샹을 하려고 하는 중국인은 많지 않았다. 사실 어학연수 초반에는 늘 중국인친구들과 어울렸기에 후샹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그러다가 정말 신기하게도 일본인친구와 후샹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둘이 어울리는 시간이 너무 많았기에 어느 날 내가 놀지 말고 공부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내가 한국어를 알려줄게."

일주일에 한 번 나는 그녀에게 중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다. 당시 우리의 교재는 '한국어 유행회화 단문 500문장'이라는 책이었다.

a  발음은 직접 전자사전으로 찾았다... 함께 공부한 흔적들

발음은 직접 전자사전으로 찾았다... 함께 공부한 흔적들 ⓒ 최하나


"필요없어요."
"시치미 떼지 말아요."
"두고 보자."

이러한 한국어표현이 적혀있고 그 옆에는 해당하는 중국어 문장이 적혀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녀와의 수업은 한국으로 돌아 온 후에 끝이 났지만 인연은 계속되었다. 내가 일본으로 또 그 친구가 한국으로 놀러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이메일을 주고받고 전화통화도 하면서 연락을 이어나갔다.

푸다오과 후샹을 어떻게 보면 서로 필요한 걸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관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형식적인 관계라도 노력한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푸다오와 후샹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중국어 #푸다오 #후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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