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에 담긴 뜻, 그 분은 알까

[세상을 담은 한자 3] 手帖(수첩)

등록 2014.12.11 17:34수정 2014.12.1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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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달력을 받았다. 벽에 걸어두고 보니 올해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이참에 다이어리도 주문했다. 잦은 모임에 피곤함을 호소하기도 하고, 때론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허탈함에 휩싸이기 쉬운 연말, 다이어리만큼 새해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주는 물건도 드문 것 같다.


다이어리를 한자로 바꾸면 手帖(수첩)이다. 手(손 수)는 손가락 다섯 개를 그대로 상형한 글자다. 맨 위에 얹은 획이 손가락 한 개를, 아래에 놓인 가로획 두 개는 세로획으로 나뉘어 각각 손가락 두 개씩을 표현한다.

帖(첩)은 문서란 뜻으로, 巾(수건 건)과 占(차지할 점, 점칠 점)으로 나뉜다. 巾은 아래로 늘어진 천 조각 모양이다. 늘어진 천의 주름을 세로 선 세 개로 표현했다. 천이 귀하던 시절, 천 조각은 일상에서 물기를 닦거나 주위를 깨끗하게 하는 데 많이 쓰였다. 그래서 '수건'이란 뜻으로 좁혀졌다.

占은 卜(점칠 복)과 口(입 구)로 다시 나뉜다. 한자가 만들어진 시대엔 점을 대단히 신성시했다. 신에게 무언가를 묻고 답을 구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점을 치는 도구로 동물의 뼈나 거북의 등딱지를 주로 사용했다. 여기에 질문을 새긴 후 불에 구우면 뼈가 갈라지고 터지는데, 그 모양과 방향으로 신의 뜻을 추리한 것이다.

뼈가 갈라지고 터진 모양을 그대로 한자로 바꾼 것이 바로 卜이다. 卜이 들어간 한자 가운데 많이 쓰이는 것이 성씨 朴(후박나무 박)이다. 朴은 점쟁이가 모시던 신령스러운 나무(木)를 나타낸다. 최초로 朴씨 성을 가진 이들은 당시 점을 치고 제사를 지내던 최고 권력층이었음을 알 수 있다.

口는 쓰임에 따라 세 가지로 해석한다. 신체의 입을 가리키기도 하고, 한정된 구역을 뜻하기도 한다. 占(점)에서는 제사 때 쓰이는 그릇을 나타낸다. 이를 축문그릇이라 한다. 여기에 동물의 피나 깨끗한 물을 담기도 했다. 占은 축문그릇을 앞에 두고 경건한 모습으로 뼈를 달구는 모습, 즉 점을 치고 있는 상황을 나타낸 한자이다. 占에서 중요한 것은 뼈나 등딱지에 나타난 신의 흔적이다. '신의 흔적이 있다'는 뜻에서 占은 '있다' '차지하다'는 뜻으로도 쓰였고, 이후엔 '자리'라는 뜻도 추가 됐다.


그래서 帖(첩)은 천 조각에 글귀를 써 기둥이나 벽 등, 어떤 자리에 붙인 것을 뜻한다. 여기에 手를 붙여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공책을 手帖(수첩)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런 '수첩'이 지난 2년 동안 어느 한 사람 덕분에 언론에 많이 등장했다. 최근엔 '수첩인사'라는 말도 자주 들린다. 절차에 맞게 공적으로 다뤄야할 문제를 혼자 판단하고 결정한 데서 나온 말인 듯하다. 대게 수첩에 적힌 것은 개인적인 기록이라, 다른 이의 수첩을 함부로 들춰보는 것은 대단한 실례가 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도 보아선 안 되고 볼 수도 없는 수첩에 의존해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한다는 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차라리 신에게 묻고 답을 구하던 그 옛날 방식이 훨씬 민주적이고 합당하단 생각이 들 정도다. 도대체 얼마나 뒤로 간 것일까. 너무나 아득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수첩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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