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이 나오자마자 부담없이 사는 학생들도 있지만, 학기 시작 무렵 교정 한 귀퉁이에서 헌책들을 사고 파는 학생들도 있다.
김소연
나는 그 한 시절을 훌쩍 넘기고 중국에 왔다. 그런데 바링허우(八零后)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때의 '느낌'이 쓱 지나간다. 펄펄 끓었던 20대와 바싹 오그라들었던 30대로 만든 몽타주, 그 몽타주를 복사기에 갖다 댄 후에 나온 얼룩덜룩한 흑백 그림에서 발견하는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느낌.
1980년대에 태어난 바링허우는 이제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한창 경제활동을 하는 나이이다. 그만큼 바링허우는 소비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주도하고, 그 세대와 연관된 신조어도 많이 생겨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웨광쭈(月光族), 푸웡(负翁), 컨라오쭈(啃老族). '웨광쭈'는 1990년대 말에 생겼는데, 월급(月薪)을 받으면 다 써버리는(用光)는 소비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웨광쭈는 대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고 서양자본주의 문화를 즐기는 바링허우다. 주로 IT, 금융, 출판, 방송, 예술 등 전문직에 종사한다. 유행에 민감하고 명품 옷이나 화장품, 파티, 여행을 위해서 돈을 아끼지 않는다.
수입에 맞춰 소비를 해온 기성세대는 웨광쭈를 마뜩찮게 본다. 신문은 웨광쭈(月光族) 현상을 사회문제로 보고 월급을 관리하는 방법부터 젊어서 낭비하면 늙어서 고생한다는 식의 계몽적인 글을 실어왔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콧방귀를 뀌기 일쑤다. 부모 세대가 부를 일구는 과정을 보아온 그들은 돈과 권력이 따로 놀지 않는 세태를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근검절약 대신 '권력이 돈을 만들고 돈이 권력을 만든다(权生钱 钱生权)', '인맥과 운이 있으면 돈은 생기기 마련이다'를 더 믿는다. 웨광쭈의 배후에 그만한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학력과 실력이 모두 좋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이 딱히 없는 사람은 어떨까? 그런 사람들은 은행 대출로 집과 차를 사고 목돈이 들어가는 물건들을 먼저 산다. 고학력에 고수입을 받는 그들은 은행 빚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갚을 능력이 있지만 은행에 빚을 진(负) 상태이니 푸웡(负翁), 신용카드를 과도하게 사용해서 '카누(卡奴, 카드의 노예)'라고도 한다. 전문가들은 그들에게, 만일 경제 위기가 온다면? 어느날 순식간에 회사에서 밀려난다면? 물가는 오르는데 수입이 준다면? 대출 금리가 갑자기 오르면? 경고 메시지를 보내지만, 대출이 아니면 평생 집을 장만할 수 없는 현실에서 통할 리가 없다.
'컨라오쭈(啃老族)'는 부모에게 빌붙어 사는 자식을 말한다. 컨(啃)은 '갉아먹다'는 뜻이고, 라오(老)는 부모를 가리킨다. 컨라오쭈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경우부터, 직업이 있어도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우, 고학력 고소득자인데도 부모의 돈으로 고가의 주택, 자동차와 사치품을 사는 경우까지 포함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현재 중국에서 컨라오쭈가 아니거나 장차 안 될 젊은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실제로 도시 젊은이의 30%가 컨라오쭈 경험이 있고, 65%의 가정이 컨라오쭈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
가장 고달픈 바링허우는 '이쭈(蚁族, 개미족)'와 '팡누(房奴, 집의 노예)'이다. 이쭈는 대부분 농촌이나 소도시의 가난한 집안 출신들이다. 대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도 월급이 워낙 적어서 도시생활을 감당할 수가 없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역시 집세인데, 열악하고 비좁은 동네에서 집단으로 거주하며 겨우겨우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부모의 기대와 대졸자라는 체면도 그렇지만, 농촌이나 소도시에 간들 마땅한 직장이 없기 때문이다. 평생 집 걱정을 해야 하는 이쭈는 팡누이기도 하다. 특히 남자 이쭈와 팡누는 결혼하기도 힘들다. 그들의 삶은 언론에서 보도되는 소비지향적이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바링허우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농촌에서 돈을 벌기 위해 도시에 온 농민공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다. 내일을 계획할 수 없는 그들에게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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