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의 탄생> 책표지.
시사인 북
A씨는 화장실이 딸린 작은 방에 감금된다. CCTV가 설치된 방이었다. 그 방에서 24시간 감시를 받으며 생활한다. A씨는 4달 동안 감금당한 채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에 자백하라고, 거짓 문서에 사실임을 인정하는 사인을 하라고 강요 당한다. 그들은 A씨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자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게 한다. 그리고 거짓말과 감언이설로 회유하는 한편, 협박하나 먹히지 않자 폭행(고문)도 서슴지 않는다.
A씨의 이야기를 읽으며 부림사건(부산 학림 사건. 1981년 9월)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이나 <남영동 1985>의 장면들을 떠올릴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두 사건 모두 특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른바 '빨갱이'가 아닌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단정 지은 후 허위자백을 강요하며 온갖 고문을 했고, 그렇게 받아낸 증거로 빨갱이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두 사건 다 30년 전 군사정권 시대에 일어난 일. 이제는 시대도 많이 달라졌고 민주국가이니 그야말로 옛날에나 가능하던 일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도 30년 전에나 있던 공갈과 협박, 고문에 의한 조작이 계속되고 있다면?
변호인단이 유가려를 만나려고 수없이 찾아갔던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의 굳게 닫힌 문 안에서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드는 '사업'이 넉 달 동안에 걸쳐서 밤낮없이 진행되었다. (줄임) 수사관들은 CCTV가 설치된 방으로 가려를 옮겼다. 유가려는 24시간 감시를 당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가려가 독방에 돌아가 쉬려고 하면 아줌마가 인터폰으로 숙제를 하라고 족쳤다. 끊임없이 진술서를 쓰라고 요구하면서 가려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원하는 진술을 얻어내려는 일종의 가혹행위였다. 조사는 새벽까지 계속되었고 대머리는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가면서 했다. 가려가 말을 듣지 않으면 물병으로 때리고 몇 시간이고 앉지 못하게 세워두었다. 가려는 폭행이나 욕설보다 오빠를 추방하고 교화 보낸다는 말이 더 무서웠다. 화교라는 약점이 잡힌 물정 모르는 처녀를 압착기에 넣고 힘껏 누르자 점차 새로운 간첩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힘껏 누르기만 하면 필요한 증거는 나오기 때문에 편리한 방법이었다. - <간첩의 탄생>에서유가려라는 한 여성이 2012년 10월 30일 이후 겪은 일, 그 중에서도 아주 적은 부분에 해당한다. 유가려씨는 2013년 1월 21일 <동아일보>의 보도를 통해 알려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주인공인 유우성씨의 동생이다. 그녀는 이처럼 국정원 수사관들의 감시와 협박, 폭행을 견디다 못해 오빠를 간첩으로 만드는 것에 협조하고 말았고, 국정원이 만든 간첩 유우성씨는 법정 투쟁으로 2심(2014년 4월 25일)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힘껏 누르기만 하면 '간첩' 증거는 나온다 <간첩의 탄생>(시사IN북 펴냄)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그 전모를 밝히는 책이다. 유우성·유가려 남매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자랐다. 엄밀히 말하면 남매의 신분은 중국 국적자도, 북한 국적자도 아닌 재북화교였다. 그럼에도 유우성씨가 자신이 탈북자(북한 이탈주민)라고 신고한 것은, 재북화교지만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 음식들을 먹으며 북한 아이들과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북한 주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매의 가족은 4대 증조부 때부터 북한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것도 친가와 외가 모두. 그리고 재북화교가 어느 쪽이든 국적을 취득하려면 복잡한 절차와 심사를 거쳐야 하는지라, 국적을 취득하기보다 중국에서 내준 여권과 북한에서 내준 외국인등록증을 신분증으로 사용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동아일보>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보도가 있기 전까지 유우성이란 이름은 탈북자 1호 공무원으로 유명했다.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방송 출연(KBS <통일열차>, MBC <통일전망대> 등)도 여러 번 했으며,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연도 했다.
북한 회령에 살 때부터 한국의 자유를 꿈꾸던 남매였다. 2004년에 탈북,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해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된 유우성씨는 어머니의 죽음(2006년) 후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생을 데려와 함께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동생을 데려와 일련의 절차와 심사를 거친 후,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동생과 헤어졌다. 그런데 국정원이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만들고자 동생을 감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