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판잣집들 사이로 전깃줄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김재환, 이유진
강순옥(가명·57·여·서울 강남구 개포4동)씨가 이곳에 들어온 건 1992년이다. 방은 비좁지만 7살 난 딸아이와 단 둘이 눕기엔 충분했다.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스물두 번의 겨울을 버텼다. 그녀는 딸 시집은 제대로 보내자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일했다. 파출부, 빌딩 청소, 때밀이…. 행여나 사위 될 사람이 이 집구석을 보고 달아나면 안 될 일이었다. 상견례 전엔 번듯한 집이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 집을 갖기 위해 싸우는 엄마는 판자촌의 쓰러져가는 흙벽 같았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았지만 딸과 집을 위해 버텼다. 낮에는 투기꾼들과 싸우고 밤에는 목욕탕 청소를 했다. 혼자 남은 딸은 엄마 사진을 보며 외로움을 달랬다. 엄마를 닮아서인지 억척스러운 딸은 냉골의 방에서 자라 시집을 갔다. 순옥씨는 그런 딸 앞에만 서면 죄인 같다. 구룡마을 재개발은 아직 첫 삽도 못 뜬 채, 이제 그녀는 같은 집에서 스물세 번째 겨울을 홀로 맞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시는 구룡마을 재개발 방식에 대해 강남구와 합의한 내용을 발표했다. 1999년 주민들이 민영개발을 제안한 지 15년, 2011년 공영개발을 시에서 선언한 지 3년 만이다. 그러나 이 결정으로 구룡마을 개발의 첫 삽을 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5년간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번번이 개발 논의가 원점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지난 8일부터 20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구룡마을을 찾았다. 서울시와 강남구의 협의 과정에 참여할 수 없어 정부의 발표만 기다려야 한 주민 김아무개(65·여)씨는 18일 합의 내용이 발표되자 "이제 와 이럴 거면 뭣 하러 3년을 또 끌었냐"며 가슴을 쳤다.
구룡마을은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규모의 판자촌이다. 2011년 개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서울시와 강남구는 재개발 방법을 두고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서울시는 토지주들에게 땅으로 보상하는 환지 방식을 일부 도입한 혼용 방식을 주장했고, 강남구는 현금으로만 보상하는 전면 수용·사용방식을 굽히지 않았다. 혼용 방식이 일부 투기 목적의 지주들에게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구룡마을에는 투기 차익을 노린 가짜 거주민들도 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세대는 강순옥씨와 같이 불안전한 주거 시설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여기 아줌마들 다 전과 10범 넘어... 투기꾼이랑 싸우다 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