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리틀마닐라일요일 헤화로터리는 리틀마닐라로 변한다.
노유리
리틀마닐라는 지금 '리틀'마닐라버스에서 내려 성당으로 가는 길, 활기찬 타갈로그어 소리가 들린다. 필리핀에 온 건 아닌지 봉은 잠시 착각을 느낀다. 일요일 대학로 일대는 필리핀 시장으로 변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리는 '리틀마닐라'다. 상인들이 파는 물건은 정육, 생선, 전화카드까지 다양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거리는 필리핀 사람들로 붐빈다. 특유의 고향 냄새가 봉의 시선을 잡아끈다. 봉은 상인에게 바나나 큐(구운 바나나) 가격을 묻는다. 2000원, 고국보다 10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고향 음식에 가격은 중요치 않다. 2000원의 행복을 가슴에 품고서 봉은 다시 성당을 향해 걷는다.
성당 입구에 도착한 봉이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그는 이내 뒤돌아 점포 수를 세어보기 시작한다. 1개, 2개, 3개…, 15개. 또 하나가 줄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혜화역까지 이어졌던 장터는 위기를 맞고 있었다. 1주일에 단 한 번, 모국어로 마음 편히 대화할 수 있는 곳에 '불법'이란 딱지가 붙었다.
'도로교통법', '식품위생법', 한때는 법대생이었던 봉이 리틀마닐라가 위반하고 있는 법을 되뇐다. 그렇다. 법은 정확하고 분명하다. 그러나 리틀마닐라, 그것은 필리핀 사람들의 유일한 안식처임이 확실하다, 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봉은 두통을 느낀다. 리틀마닐라는 그 이름처럼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다른 사연, 같은 마음마침내 봉은 성당에 들어선다. 문을 열자 수많은 뒷모습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기가 여간 쉽지 않다. 간신히 비집고 들어간 그곳엔 2000명이 넘는 동포들이 경건한 자세로 앉아있다. 각자의 사연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으리라 봉은 생각했다. 성당 안, 타갈로그어 미사가 울려 퍼진다. 이윽고 타지에서의 낯선 삶들이 기도를 통해 서로에게 전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