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최고경영자(CEO) 선임시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으려고 추진했던 '금융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정작 재벌 계열 금융사들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제 2금융권 계열사를 지닌 오너 그룹 등 재계의 반발에 결국 방침을 번복한 것이다.
금융위원회(금융위)는 24일 오후 2시 정례회의를 열고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상의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설치 규정을 보험·증권사 등 제2금융권에는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수정안을 상정해 의결했다.
금융위는 "임추위는 은행지주회사와 은행부터 시행할 것"이라며 "제 2금융권에는 은행지주, 은행의 제도 정착을 봐가면서 중장기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 2금융권 적용을 연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시기를 명시하진 않았다.
이처럼 금융위가 지배구조 모범 규준을 수정한 이유는 재계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다. 당초 금융위는 지난달 20일 제 2금융권을 포함한 자산 규모 2조 원이 넘는 모든 금융회사들은 임추위를 의무적으로 만들어 CEO와 임원들을 추천하는 내용의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발표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재벌 총수가 계열 금융사의 사장을 마음대로 임명해 온 관행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생명, 증권, 화재 등 계열사들이 모범 규준에 걸리게 되기 때문에 제 2금융권을 제외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임추위를 통한 CEO 선임은 주주권 침해"라고 주장해왔다. 결국 금융위는 삼성을 포함한 재벌 기업의 거센 반발에 애초 발표한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수정하며 항복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은행지주·은행 사외이사 임기도 본래 지배구조 모범규준의 1년이 아닌 현행 2년을 유지하기로 수정했다.
KB금융, 8개월 만에 LIG손해보험 자회사 인수 승인 받아
한편 이날 금융위는 KB금융의 LIG손해보험 인수 승인도 결정했다. KB금융이 자회사 편입 신청서를 제출한 지 4개월여 만이다. KB금융은 지난 8월 금융위에 LIG손보 자회사 편입 승인을 신청했지만 그간 금융위는 사외이사 퇴진과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승인을 미뤄왔다(관련기사: KB금융 '제왕적 사외이사' 축소... 금융위 요구 수용).
금융위는 "KB금융이 LIG손해보험 지분 19.47%를 인수해 자회사로, LIG투자증권을 손자회사로 편입하는 것을 승인했다"며 "다만 최근 잇따른 법규위반 사례의 재발방지 등을 위해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는 내년 3월까지 내부통제 및 지배구조 개선 계획의 충실한 이행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감독원에도 KB금융지주의 개선계획 이행상황 등을 지속적으로 점검해 향후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시스템의 부실이 해당 금융회사의 경영 위험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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