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위해 재판관들이 입장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재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했으며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강제 해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했다는 것이 정당 해산의 가장 큰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뒷받침할 명백한 증거는 찾기 힘들다. 일부 구성원의 과거 전력과 발언, 김영환 등 몇몇 전향자의 증언만으로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했다고 단정하는 건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다.
이런 논증이라면 새누리당은 명백한 친일 정당 아닌가?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일본 총리가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를 일본땅이라고 명기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밝히자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 나경원 의원 등은 과거 일본 자위대 창설 행사에 참석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누리당 내에는 일제 침략을 미화하는 발언을 쏟아낸 의원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친일매국으로 재단하고 법의 심판대 위에 세울 수 없는 건, 부분으로 전체를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1년 탄생한 민자당은 '광주학살'의 원죄를 갖고 있는 민정당이 살아남기 위해 택한 야합의 결과물이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또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4000억대 비자금 사건이 불거져 총선에서 패배할 위기에 몰리자 당명을 바꾸면서 태어났다.
한나라당이란 당명을 택한 것도 IMF를 몰고 온 김영삼 전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 위해서 진행한 작업 중 하나다. 이후 한나라당도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위기에 몰렸지만, 천막당사 이전이라는 배수의 진을 치며 기사회생했다. 새누리당 탄생은 한나라당의 부패와 이명박 정부의 패정을 덮고, 총·대선을 대비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사법부야 말로 직무유기, 지탄의 대상광주 학살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탄생시킨 민정당에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며 35년을 버틴 것이 보수 정치권력의 역사다. 국민의 피를 묻히고 탄생한 정권은 IMF 외환위기, 대선 비자금 사건 등으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정치 질서를 유린했다.
아직까지 현실에선 단 한 번도 증명되지 않은, 통합진보당의 국가안전 위협 때문에 정당해산이 불가피하다는 헌재. 그러나 그들의 결정은 논리의 빈약성뿐 아니라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수없이 위협해, 해산하지 않으면 존립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려 수시로 당명을 바꿀 때, 사법부는 한번이라도 통합진보당에게 내민 잣대를 꺼내 든 적이 있던가. 35년 이상 국가안전 위협세력의 농단을 관망해온 사법부야 말로 직무유기, 지탄의 대상이다.
이번 해산결정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한 자유민주주의는 자유, 평등, 인권의 보장·국민주권·표현의 자유·권력분립·대의제도·복수정당제도·민주적 선거제도·사법권의 독립을 구성요소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헌재의 결정이 자유민주주의 8대 구성요소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주권, 표현의 자유, 권력분립, 사법권의 독립이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지켜내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죽이는 모순이 박근혜 정권에서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해산 결정으로 대한민국은 많은 것을 잃었다. 우선 14년이란 진보정당의 역사가 권력화된 사법에 의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정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통합진보당은 노동과 통일 운동에서 어떤 정당도 흉내 낼 수 없는 '목소리'를 냈다. 절차의 비민주성을 차치한다고 해도, 헌재 결정이 아쉬운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이제 어떤 정당이 그 몫을 대신할 수 있을까. 보수 정권의 집권 후 기울어진 정치 편향은 통합진보당의 해산 결정으로 한층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야당스럽지 않은 야당... 진보당 빈자리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