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들시설에서 출산교육을 하고 있는 모습
대한사회복지회 사랑샘
아이 아빠는 그렇게 한동안 연락을 끊어 버렸다. 배가 불러오면서 직장도 그만두고 오갈 데 없이 친구 집에 머물던 유미씨는 마침 고향 읍내에 따로 나와 살던 둘째 언니 집으로 가게 됐다.
"(언니가) 제 배를 보더니 '이건 뱃살이 아니라 임신한 배다'라며 경악했어요. '어떻게 할 거냐? 지워라' 그래요. '못 지운다. 유도 분만으로 낳아서 보는 앞에서 죽인다는데 그걸 어떻게 보고 있냐'고 울면서 말했어요."유미씨는 언니와 상의 후 출산 뒤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언니가 수소문한 미혼모 시설에 입소 신청을 했다. 이후 배가 만삭이 됐을 때 입소를 하게 되었다.
- 시설에 들어가니 어땠어요? "입양을 보내기로 하고 들어갔어요. 들어가니까 저랑 똑같은 산모들이 많아 더 막막해지더라고요."
- 더 안정되진 않고요?"네. 안정되지도 않고, 더 불안해지고... 밥 먹을 때마다 산모들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더 못 보겠더라고요. 그래서 밥도 먹으러 못 내려가고 울기만 바빴어요.
- 매일 그랬어요? "네. 매일 그러니까 언니가 '안 되겠다. 그냥 퇴소하고 집에 며칠 있다가 병원에서 아이 낳고 시설에 들어가서 한 일 년 보내는 걸로 하자'했어요. 퇴소서도 다 쓰고 그 다음 날 아침 집으로 가는 날이었는데 그날 밤에 양수가 터진 거예요. 그때가 12월 24일 12시가 땡 하고 넘어갔을 때였거든요. 그 때 휴대폰을 보고 '아 크리스마스 이브네'하면서 딱 자려고 하는데 뭔가 터지려는 느낌인 거예요."
- 자연분만 하셨어요?"네."
- 그 다음엔 어떻게 하셨어요?"무작정 울었어요. 아기를 보니까 갑자기 그 때 그 생각이 났거든요. 사실은 제가... 아기 아빠랑 헤어지고 바로 약을 먹었어요. 너무 막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누구한테 알릴 수도 없고, 아이를 지울 수도 없고... 그래서 그 때 제 판단이 그냥 조용히 (아이와) 같이 죽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수면제를 먹고 같이 죽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친구가 뭔가 느낌이 들었는지 문을 따고 들어온 거예요. 그렇게 응급실로 실려갔어요.
병원에서 산모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 다급해졌죠. 혈압도 엄청 떨어지고 그랬으니까요. 그래도 다행히 둘 다 건강해졌는데 의사 선생님이 제가 자살하려는 걸 알고 계셨어요. 그 분 말씀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애가 이렇게 살려고 바동거리는 거니까 낳아서 악착같이 기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기를 낳자마자 그 생각이 난 거예요. 그 한 마디밖에 안 떠올랐어요. 악착같이 기르라는... 제가 퇴소하기 전날 양수가 터졌잖아요. 만약에 퇴소를 했으면 밖에서 추운 날씨에 집에서 낳을 수도 있었는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예요. 애가 제 발목을 잡아준 거예요. 시설에 있어라, 하고요. 그래서 애를 안고 많이 울었어요."
- 처음엔 입양을 보내기로 했는데. "법이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젠 입양을 보내더라도 일 주일간 입양 숙려 기간을 보내야 해요. 그렇게 아이를 데리고 있었죠. 아이 아빠와 연락하는 데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렸어요."
- 아이 아빠는 뭐라 그래요?"결국에는 낳았느냐는 식으로..."
아버지는 아직 아이를 보지 못하셨다유미씨와 같은 고향 사람인 당시 스물네 살, 지금은 스물여섯 살의 이 비겁한 청년에 대한 나의 분노는 사실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던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스멀스멀 일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리 철딱서니 없는 청춘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이 지경에 있는 여자 친구와 제 아이를 이런 식으로 무참하게 만들 수 있는 건지.
"아이 아빠에게 이제는 법이 바뀌어 입양동의서를 아빠도 써야 한다, 와 줄 수 있겠냐 그랬더니 저 몰래 입양 동의서만 쓰고 다녀갔더라고요. 아이 얼굴 한 번 보지도 않고요. 이제 저만 사인하면 끝이었는데... 못 쓰겠더라고요. 채영이 낳고 한 달 정도 됐을 때예요. 못 보내겠더라고요. 만약 애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제가 잘살 수 있을까... 내가 또 죽으려고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고, 계속 생각이 아른아른댈 것 같아서... 보낸다는 심정으로 데리고 있어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내 눈에 없으면 얼마나..."- 그래서 동의서 사인을 안 하시고 키우겠다고 얘기를 한 거네요?"네. 하지만 언니 반대가 좀 심했어요. '입양을 보내는 게 맞다. 엄마 아빠 얼굴 어떻게 볼 거냐'고."
유미씨는 이미 양육을 결심했지만, 가족들은 입양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부모와 형제들은 유미씨의 미래만 걱정했을 뿐 유미씨가 낳은 딸 채영이의 미래는 존중하지 못했다.
- 가족들은 언제 알았어요? "부모님한테는 정말 끝까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사촌 동생이 알게 되면서 결국은 엄마에게 전화가 왔어요. 괜찮냐고. 그러면서 입양을 보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못 보낸다. 엄마도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듯 나도 애가 중요하다. 애를 보내면 내가 두 발 뻗고 살 수 있겠냐. 나는 결국 죽게 될 거다. 그런 딸을 원하면 입양을 보내겠다' 그랬죠. 엄마가 그럼 인연을 끊자, 하시더라고요. 하루 있다 다시 전화가 왔어요. 엄마 생각이 짧았다고, 대신 후회는 하지 마라 하시더라고요. 나중에는 엄마가 아빠에게도 말씀을 드렸어요. 하지만 아빠는 아직까지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으세요."
- 부모님이 아이를 한 번도 안 봤어요? "엄마는 한 번 봤어요. 딱 한 번요. 아빠는 아직까지 보지 않으세요."
- 경제적으로 도움 주는 건 없으시고요?"네. 아빠가 (재정) 관리를 다 하시니까."
- 채영이 낳고 계속 시설에만 계신 거네요? 언제까지 있을 수 있나요? "내년까지예요. 최대 3년 동안 있을 수 있어요."
채영이가 돌을 넘기고 아빠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 연락이라는 것이 술만 먹으면 전화를 해서는 어디서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를 물어보곤 하는 것이었다. 지난 10월 새벽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고. 그 때는 너무 어려서 그런 판단밖에 못 내렸다고. 이제 같이 살면 채영이 키울 수 있겠냐는 말까지 했다.
12월 24일이 채영이 두 돌이니 나한테는 잘할 필요 없지만, 아직 얼굴 한 번 못 본 채영이를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뽀로로 하나 사서 보러 오라고 했다. 그렇게 약속했고, 올 줄 알았다. 이후 술이 아닌 맨정신으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카톡을 보냈다. 혹시 전에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느냐고. 곧 답장이 왔다.
"미안하다. 기억이 안 난다."내가 같은 남자인 것이 유미씨에게 미안했던 대목이다. 표현은 못했지만 어쩌면 이런 무책임한 사람과 안 살기를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술의 힘을 빌려 알량하게 남아 있던 양심마저 덜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