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18세 미혼모 임신 38주, 출산을 앞 둔 박은영씨
김지영
임신 후에도 남자친구와 만남을 이어가는 두 미혼모 여기 두 미혼모가 있다. 2014년 11월 인터뷰 당시 입양을 결심하고 시설에 들어와 생활중이던 젊은 예비 엄마들이다. 23세 임신 18주이던 김경미(가명)씨와 18세 임신 38주 곧 출산을 앞둔 박은영(가명)씨가 주인공이다. 경미씨와 은영씨는 같은 듯 다른 가정환경과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다. 둘 모두 임신 후에도 남자친구와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지만, 임신 후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점에서는 비슷한 듯 다른 감정선을 지니고 있었다.
평소 술 만 먹으면 폭력적으로 돌변했던 아빠는 경미씨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엄마와 별거에 들어갔다. 술만 아니면 그런대로 평범하게 지냈던 가족이었다. 부모님의 별거로 엄마는 친정으로 들어갔고 포클레인 일을 하는 아빠는 아주 가끔씩만 들를 뿐 집에는 경미씨와 두 동생이 남았다.
은영씨의 부모님은 세 살 때 이혼했다. 일당으로 전기 일을 하는 아빠의 수입은 늘 규칙적이지 못했고 대개는 늘 가난했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 은영씨와 두 살 위 언니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세 살 무렵 헤어진 엄마와는 중학교 2학년이던 열다섯 무렵에 다시 연락이 닿았다. 여전히 혼자 살고 있는 아빠와 달리 엄마는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다. 엄마는 은영씨에게 잘해주려 노력하지만, 은영씨에게 엄마는 어색함이 아직 가시지 않은 그런 존재다.
전문대 조리학과를 나온 경미씨가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난 때는 열아홉 고등학교 3학년. 허물없는 친구로 지내다 연인관계로 발전한 건 그로부터 4년 뒤인 스물세 살을 막 넘긴 때였다. 임신한 건 그러기를 불과 4개월여 지난 시점이었다. 무정자증으로 알고 있던 동갑내기 남자친구는 임신 사실을 듣고 당황했다.
은영씨는 중학교 2학년을 끝으로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는 거 진짜 못했어요"라고 천진하게 이야기하던 18세 은영씨의 인상은 껌 좀 씹고 침도 뱉었을 거라는 내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아침에 일어나는 거 진짜 못했'다는 그 말을 할 때의 은영씨 표정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사귄 지 벌써(?) 4년이나 된 은영씨 남자친구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임신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설마 나에게 그 일이'라는 막연했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비록 늘 싸움이 있었던 부모님이었지만, 경미씨의 학창시절은 지나칠 만큼 평범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빠의 술버릇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집안에는 언제나 세 남매만 있었고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는 대화를 기피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열두 살이나 어린 막내 남동생은 경미씨와 여동생이 돌봐주어야 했다. 경미씨는 집에 있는 걸 참지 못했고 가능한 밖으로 나갈 궁리만 했다.
은영씨는 중학교 2학년 때 한 번 낙태한 경험이 있다. 지금 남자친구의 아이였다.
"오빠네 집도 우리랑 같이 엄마 아빠 따로 사는데 엄마 쪽에서 다 해결해 줬어요. 아빠는 모르게요. 저도 우리 집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막막했어요. 다시 남자친구 부모님한테 말하기도 그렇고 내가 임신 사실을 알고 병원에 간 게 16주였어요. 그런데 초음파 사진을 본 거예요. 보니까 막 그 뭔가 이번엔 키우고 싶다 생각도 들었어요. 근데... 아무래도 남자친구한테 키우자 하니까 남자친구는 무심하게 넘어가는 식. 그런 식으로 하다가 너무 힘들고 자주 싸우고 아무래도 예민하니까 둘 다. 그렇게 5개월 되고 6개월 되고..."경미씨가 임신 사실을 안 때는 11주였다.
"처음에는 이게 우리 둘이 생각해 보고 지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돈을 구할 수 있는 데는 다 연락을 했는데 못 구했어요. 지금도 수술은 가능하대요. 그런데 이제와서 수술하는 거는 좀 그렇고... 아기 심장소리를 들었어요. 되게 마음이 짠했어요."- 경미씨 남자친구는 계속 만나요? "네"
- 남자친구가 임신했다고 질색하고 도망가고 그러진 않네요? "저도 그게 신기했어요. 다만 끝까지 책임지기에는 아직 뭔가가 불안한..."
- 남자친구 집안에 얘기했어요?"그 친구 엄마가 전화해서 아이를 지우는 게 좋지 않겠냐고 그러시더라고요. 차라리 안 지우고 입양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말씀드리니까 그러면 니가 어차피 니 뱃속에 품고 있는 새끼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 떨떠름하게? "쫌..."
은영씨가 입양을 결심하고 시설에 들어오게 된 건 언니를 통해서였다. 아이 입양을 결정하는 데 대한 은영씨의 솔직한 표현은 딱 열여덟 소녀였다. 역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게다가 은영씨는 성장 과정에서 결핍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 직접 키우는 건 생각해보지 않으셨어요?"초음파를 보고는 그 생각을 했어요. 그걸 보니까 그냥 키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키우자고 하니까 남자친구가 들은 체 만 체 하고 그렇다고 또... 미래를 생각하면 아니긴 아닌데..."
- 본인의 미래?"네."
- 남자친구는 지금도 만나고 있어요?"네."
- 입양을 결정하는 데 고민은 많이 안했어요?"고민을 좀 많이 했어요. 남자친구랑 오래 간 편이니까 키우고 싶은데 주변에도 보면 애 키우는 친구들이 몇 명 있어요. 그거 보면 나도 애 키우는 축복 같은 거 받을 수 있는데 보내야만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근데 아무래도 스무 살 돼서 친구들은 밖에서 놀고 있고 나는 집에서 아기 보고 있고 이런 식으로... 솔직히 돈도 아직 열여덟 살이니까 많이 못 벌고 그래서 그냥 입양을 보내는 걸로..."
- 예를 들어서 정부에서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보조금을 준다면 키울 생각이 있으세요? "근데 남자친구랑 같이 이렇게 끝까지 간다는 보장을 하면 그럴 수 있는데 이혼할 수도 있고 그러면 아기한테도 안 좋을 것 같고. 일단 제가 그걸 겪어봤잖아요. 엄마 없이 그런 거 별로... 그럴 바에 그냥 양부모님 다 있는 그런 집안에서 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경미씨의 입양 결정 역시 은영씨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래도 나이도 요리사라는 전문직업도 있으니 양육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처하겠지만, 질문을 했다.
- 나이도 아주 어린 것도 아니고 남자친구도 올해 졸업반이라 곧 취직할 거고 낳아서 키워도 될 것 같긴 한데요?"입양 보내는 거, 한 번에 선택하지 못했죠. 처음에는 이제 키워야 되지 않을까라고 남자친구에게 계속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지 뜻이 너무 강하고 안 굽혀지더라고요."
- 그 남자친구하고는 지금 생각으로 평생을 같이 갈 것 같아요?"네, 그럴 거 같아요."
- 남자친구하고 결혼하면 아이 생각이 날 것 아니에요? 아이는 또 낳겠지만,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그 상황이 되면 아이 생각이 날 것 같긴 해요."
- 출산하려면 아직 5개월이 남았는데 그 사이 마음이 변할 수도 있겠네요."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아요. 남자친구가 워낙 강하게 원하지 않으니까요."
실은 좀 많이 안타까웠다. 통상 미혼모들이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는 아이아빠와 헤어지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육아와 살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데, 경미씨는 아직 아이아빠와의 관계가 굳건했기 때문이다. 다른 질문을 던져보았다.
- 입양을 보내기로 하셨는데 국내입양을 원하세요? 아니면 해외입양? "국내입양요."
- 꼭 국내여야 하나요?"그러면 좋지 않을까..."
- 해외는 왜?"해외 쪽으로 가면 만약에 찾고 싶으면 못 찾잖아요."
- 경미씨는 나중에 한 번은 꼭 만나보고 싶어요?"네."
경미씨의 남자친구가 입양을 강하게 원하는 이유는 자신의 미래 때문이다. 경미씨 역시 자신과 남자친구와의 미래를 위해 지금은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아이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근본적인 욕망을 간간이 비치긴 했지만. 그 나이 그 시절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일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은영씨의 주된 입양 동기도 물론 경미씨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그러나 은영씨는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겪었던 엄마 없는 아픔에 대한 상처가 아이에게 투영되고 있었다. 아직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 지 무엇 하나 자신할 수 없는 열여덟 어린 나이다. 그래서 경미씨와는 또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 은영씨 아이가 입양을 가면 어디로 가길 원해요? "음... 저는 좋은 가정으로만 가면...부모님 다 계시는..."
- 나중에라도 혹시 아이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들겠죠... 들 것 같은데... 제가 찾기는 힘들 것 같아요."
- 아이가 찾아오면?"미안해서... 미안해서 그렇게 따뜻하게 보진 못하겠죠. 피할 것 같긴 해요."
미혼모의 사전적 정의는 '결혼하지 않은 몸으로 아이를 낳은 여자'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혼모에는 결혼이란 단어가 빠지고 남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말하자면 '남자가 없는 몸으로 임신을 하거나 아이를 낳은 여자'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몸 간수를 제대로 하지 못한 단정치 못한 여자'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 문장이다. 모든 임신의 원인에는 남자가 있고 모든 아이에게 엄마가 있듯 반드시 아빠가 있다. 가부장 핏줄에 의한 가문의 적통을 절대시하는 유교적 문화의 잔재인지 아니면 기적 같은 산업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시민의식의 천박성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못된 습성들이 남아 있다.
그런 사회를 천박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배제와 차별의 대상들이 대부분 오히려 도움을 받고 절대적 지원과 지지를 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미혼모를 미혼모이게 한 남자들은 그럼 어디로 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