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서 헤이리 주민들과 함께

2014 헤이리 송년의 밤

등록 2014.12.30 16:32수정 2014.12.3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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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헤이리에서도 온 주민이 함께하는 자리는 생각보다 드물고 어렵습니다. 변방에서도 나름의 일상이 혹독하기 때문이지요. 송년회 자리는 월례주민회나 공청회 같은 다른 토론이나 공론의 자리와 달리 흉금을 터놓을 수 있는 값진 기회입니다. ⓒ 이안수


#1


'塞(새, 색)'

'새'와 '색'의 두 가지 소릿값을 가진 '土(흙토)' 부수의 이 한자는 음미할수록 매력적입니다. '새'로는 '변방(邊方). 요새(要塞), 보루(堡壘)'의 뜻이 있고 '색'으로는 '막히다, 막다, 차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구멍 혈(穴)에 우물 정(井) 그리고 그 아래에 땅을 의미하는 가로획(一)이 있고 다시 그 아래에 흙(土)이 있습니다.

이렇게 각각을 떼어놓고 보면 이 한자의 원리가 보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우물처럼 흙으로 성과 요새를 쌓은 보루, 그곳이 바로 국경과 인접한 변방일 것입니다.

'막히다, 막다, 차다'라는 의미도 바로 성채가 있는 변방의 모습을 상상하면 쉽게 그 의미가 와 닿습니다.  이 변방 '새'의 구체적인 속뜻은 '한 나라에 속해있지만 어느 정도의 자치가 허용되는 지역'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중앙정부의 왕도 역모를 도모하지 않는 한 중심에서 먼 변방을 일일이 트집 잡아 감시와 감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속한 나라에 큰 일이 나면 삶이 휘둘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에서 중국 국경의 변방에 사는 노인의 삶이 중앙 권력에 의해 어떻게 휘둘리는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2

예술마을 헤이리의 공동체 태동이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여 년 전, 구체적인 법적, 물리적 구비요건을 갖추고 출발한 지도 만 17년이 되었고, 집을 짓고 이사를 오기 시작한 것도 11년이 되었습니다. 2014년 말 현재, 건축되어야할 공간 320채 정도의 60%인 194채가 완공되었습니다.

헤이리야말로 바로 현대의 '새(塞)'의 마을이지 싶습니다. 마을 태동의 동기 자체가 그렇습니다. 회원 대부분은 서울에서 각자가 설정한 '꿈'이라는 욕구의 충족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회사의 조직원으로서, 개인사업자로서, 혹은 프리랜서로서 관계의 망 속에서 그 작동원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지요. 헤이리에서는 좀 더 많은 자치와 자율을 희망했습니다. 

초기 이주 주민들은 대북방송과 대남방송의 웅웅거림 속에서 밤을 보내야했습니다. 헤이리는 분단선 서쪽 최북단 참호진지가 여전히 건재하는 곳에 위치합니다. 지리적으로도 변방인 셈입니다.  

이 변방에서 대처의 욕망에 휘둘리는 대신 한 조각이라도 더 많은 자유를 희망했고 그것을 예술에 헌정하고 싶어 했습니다. 변방의 새로운 마을을 만들면서 함께 추구하는 이런 개인의 욕구들이 자연스럽게 헤이리의 가치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보장하고 함께하는 담론들이 각자의 창작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기를 원했습니다.
-헤이리 밖의 이웃마을들과 함께 정주효과를 높이고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남북이 대치한 긴장의 변방에서 창작자들의 창작과 그 예술어법이 긴장의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3 

매년 12월에 개최되는 헤이리 주민들의 송년회는 마을을 일구면서 어렵게 적응해가는 주민 공통의 애로를 서로 이해하고 그 과실을 함께 나누며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면서 정을 도탑게 하고자 함입니다. 또한 마을의 공동 가치들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합니다. 

지난 18일에 헤이리 커뮤니티하우스에서 있었던 '2014년 헤이리 송년의 밤'은 특히 이 본질적인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습니다. 사회는 헤이리에서 가장 작은집을 짓고 살고 계신 가을이네의 가을이 어머님, 장숙희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이날 이웃들과의 즐거운 대면을 위해 서둘러 마을로 돌아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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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맡은 가을이 어머님도 바쁜 일상을 사시다가 헐레벌떡 오셔서 매무새 가다듬고 주민들 앞에 섰습니다. ⓒ 이안수


헤이리의 중장기 발전계획에 골몰하고 계신 이정호 이사장님을 모셔서 명년부터 펼쳐질 변화의 계획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헤이리를 일구는 고락을 함께하고 있는 사무국 식구들을 소개하고 감사를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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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경영능력을 가진 분을 이사장으로 두고 있음에 늘 안도하고 있습니다. 헤이리에는 개인의 삶과 문화예술의 행위를 해야 하는 부담이 함께 공존합니다. 축제를 비롯한 비일상적인 것 외에도 일상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 변방에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짐들을 나누어지고 있는 이들이 사무국의 식구들입니다. ⓒ 이안수


헤이리 밖 이웃들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매월 식량을 지원하고 있는 프란치스코의 집과 성금을 전하고 있는 열린청소년쉼터를 임원들이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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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10년 미만의 이주민인 헤이리 주민들에게 헤이리 밖 일상을 알고 교류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결국 헤이리는 지역속의 일원이기때문이지요. ⓒ 이안수


남북의 긴장 해소를 위한 역할의 일환으로 북한농아축구팀을 창단하고 이끌고 계신 이민교 감독님을 모셔서 활동 내용에 대해 경청하고 응원의 성금을 전했습니다. 평화와 화합을 위한 주민 어르신께도 한 말씀 청했습니다. 10여 년 동안, 전임 헤이리 촌장으로 봉사해 오신 강복영 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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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에서의 자유의지는 창작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장유유서의 법도 또한 공동체의 뼈대로서 훼손되어서는 안 될 가치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 이안수


주민들의 친교와 화목을 위해 공연 프로그램의 모든 연주는 외부 연주자를 모시는 대신 헤이리 이웃의 재능기부로 구성했습니다. 헤이리에 살고계신 재즈보컬리스트 정주혜, 재즈기타리스트 민영석 부부가 무대의 첫머리에서 절묘한 재즈 하모니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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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에는 영상, 음악, 문학, 회화 등 서로 다른 장르의 창작인들이 이웃해있습니다. 그것이 상호 창작의 지평을 넓히는데 긍정적으로 기능할 것을 의도한 것입니다. ⓒ 이안수


'Let it snow', 'My romance', 'Dindi', 'What A wonderful world' 등 곡이 이어져갈 때마다 주민들의 박수와 환호성도 커졌습니다.

한스갤러리의 바이올리니스트 한영주양과 한양의 아버님인 기타리스트 한상구 부녀 듀오, PaDo가 'Autumn leaves'로 연주를 시작하여 관객들이 감성에 젖어들 쯤, 한향림 옹기박물관의 한향림 선생님이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프랑스 유학파 도예가이신 한 관장님의 샹송 열창에 주민들의 뜨겁게 호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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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한향림관장의 고엽 주민들의 친교와 화목을 위해 공연 프로그램의 모든 연주는 외부 연주자를 모시는 대신 헤이리의 이웃의 재능기부로 구성했습니다. ⓒ 이안수


PaDo의 'Holy night'에 이은 무대는 또 다른 파격이었습니다. 이정호 이사장님이 드럼채를 잡았고, 10년 전 6살 어린이로 이사왔던 한진주양과 진주양의 단짝친구 김세인(김영준 주택의 막내 따님)양이 키보드를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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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헤이리 1세대의 주민들은 평균 연령이 높습니다만 점차 낮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헤이리의 문화예술적 토양은 교육 공간으로서도 유효하고 그 효험을 이곳에서 자라는 다음세대가 누리고, 그 결과로 헤이리가 더욱 크게 달라 질 수 있을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 이안수


가족과 가족, 이웃과 이웃, 구세대와 신세대가 함께하는 'Hey Jude'는 담장 없는 헤이리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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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이면서 기타리스트이고, 박물관경영자이면서 드러머인 이런 서로 다른 요소의 조합은 참 매혹적입니다. ⓒ 이안수


이웃끼리 원탁에 둘러앉아 한상 밥상을 나누고 주민들이 기부한 선물을 모두 나누고도 흥이 가라앉지 않아 주민들이 마이크를 잡는 3부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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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송년회의 드레스코드는 블루였습니다. 묵은 청마(靑馬)의 해를 보내고 새로운 희망인 청양(靑羊)의 해를 맞는 희망의 색으로 블루를 설정했습니다. 자연염색작가인 손경미 작가는 단아하고 소박하지만 자신이 직접 작업한 작품으로 드레스코드를 잘 갖추었습니다. ⓒ 이안수


#4 

저는 개회사로 헤이리에서의 가장 큰 성취가 바로 '여기 지금' 이웃으로 함께한다는 사실임을 고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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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과 마주보고 있는 어릿광대 풍선의 미소처럼 명년에는 웃을 일만 가득하길 소원합니다. ⓒ 이안수


"제가 헤이리로 이사 온 것이 내면이면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제가 서울을 뒤로하고 이 변방으로 온 것은 몸 바치다 죽어도 좋을 예술이라는 것을 하기 위함이었지요. 그러므로 헤이리에서의 제 본질은 애초 예술활동이었습니다.  

그런데 헤이리에와서 꽉 찬 9년을 살고 보니 더 중요한 본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Here and Now' 즉 추상적인 내일이 아니라 바로 '여기, 지금'이라는 것이지요. 헤이리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에게 'Here and Now'는 바로 좋은 이웃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9년이나 기꺼이 저의 좋은 이웃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헤이리의 모든 주민이 서로 간에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을 돕는 일에 늘 앞장서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바로 헤이리에서의 어떤 성취보다도 여러분과 함께라는 사실이 본질이며 축복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부디, 끝까지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려주실 것을 소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헤이리 #예술마을 #송년회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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