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영혼이 머물러 있을
이곳에서 새해 맞고 싶었다"

[새해 맞는 진도 네 가지 장면①] 세월호 침몰현장 찾은 지성양 아버지

등록 2014.12.31 21:25수정 2015.01.0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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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해역 다시 찾은 지성아빠, 목놓아 울다 30일 진도 세월호침몰 사고해역을 다시 찾은 지성아빠는 배가 가라앉아 있는 곳이라는 유일한 증표인 부표 앞에서 "딸의 영혼이 머물러 있을 이 곳에서 새해를 맞고 싶었다"며 목놓아 울었다. ⓒ 남소연


진도 대파가 힘있게 솟아 있었다. 한창 겨울이란 증거다. 4월 16일은 봄이었다. 여름이 지났고, 가을마저 떠나보냈다. 이제 해를 넘기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고 문지성(단원고)양의 아버지는 지난 30일에 사고 현장을 다시 찾았다. 딸의 영혼과 새해를 함께 맞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맹골수도의 찬 바닷물 속에 세월호가 있다는 것도 알리고 싶었다.

오전 9시 30분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탔다. 배는 동거차도를 향해 2시간 40분을 달렸다. 동거차도에서 다시 어선으로 갈아타 10분을 내달렸다. 그렇게 3시간 만에 도착한 사고 현장엔 노란 부표 하나가 떠 있었다. 세월호 사고 현장을 알리는 유일한 증표였다.

<오마이뉴스>가 아버지의 '팽목항~동거차도~사고 현장' 뱃길을 함께했다

사고 현장 앞에서 통곡... "이곳이 대한민국 맞나"

아버지는 울었다. 사고 현장에 덩그러니 떠 있는 부표를 보고 눈물을 쏟았다. 앞서 팽목항~동거차도 뱃길에선 "우리 아이들 보고싶어서 (사고 현장에) 가지요"라며 웃음을 보이기도 했던 그였다. 하지만 사고현장이 가까워지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엉엉' 우는 소리가 배의 엔진 소리만큼 컸다.

"(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정말 들어가고 싶은데…."


아버지는 딸을 삼킨 바닷물을 수차례 손으로 떴다. 손에 고인 바닷물을 입에 넣기도 했다. 그러더니 "이 바다가 대한민국의 바다가 맞습니까"라며 울분을 토했다. 사고 이후 열 번 가까이 찾았던 사고 현장이지만, 이날 아버지는 처음 사고 현장을 찾은 사람처럼 절실했다.

아버지와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사고 현장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0여 분에 불과했다. 다음날 기상악화로 배가 뜰 수 없다는 예보 때문에 취재팀은 이날 오후 1시 마지막 배를 타고 동거차도를 떠나야 했다. 낮 12시 50분께 사고 현장을 벗어났다.

노란 부표가 눈에서 멀어졌다. 아버지는 전에 딸에게 썼던 편지를 떠올렸다.

"예전에 지성이에게 써 놓은 편지가 있어요. 천천히 가라. 왜 천천히 가라고 했냐면, 내가 가야할 길이니까요. 그런데 그 자식, 달리기를 잘해서 멀리 가버렸을 거에요. 지금은 솔직히 가고 싶어도 가지를 못해요. 뭐 하나라도 제대로 된 게 있어야지. 지금 가면 (지성이가) 얼굴도 안 쳐다보고, 손도 안 잡아줄 것 같아요. 나는 이게 너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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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기 위해 카메라 들었지만, 끝내 울다 "딸의 영혼이 머물러 있을 이 곳에서 새해를 맞고 싶었다"며 30일 진도 맹골수도 세월호침몰 사고해역을 다시 찾은 지성아빠는 덩그러니 떠 있는 부표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잊지 않기 위해, 또 현장에 오지 못한 다른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 이희훈


10분 후 동거차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오후 1시 취재팀은 동거차도를 떠나는 배에 올랐다. 아버지는 "저는 (동거차도에) 남습니다. 조심히 가세요"라고 취재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어 "2015년 해가 뜰 때 동거차도에 있는 산꼭대기에 올라 사고 현장을 지켜볼" 거라고 했다.

취재팀은 "추위 조심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아버지는 "바다에 잠들어 있던 아이들만 하겠습니까"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붙잡으면 계속 이곳에 있어야죠"라며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아버지는 떠나는 배에 탄 취재팀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다. 다음날인 31일, 예보대로 팽목항과 동거차도를 오가는 배가 끊겼다. 아버지는 여전히 동거차도에 남아 있다.

아래는 아버지와 나눈 대화의 전문이다.

[팽목항~동거차도] "멈추지 않는 눈물... 아이들 보고 싶어 갑니다"

- 진도 팽목항에서 동거차도로 이동하는 배 위입니다. 왜, 배에 올랐습니까. "오늘까지 하면 한 열 번 정도 사고 현장에 가는 건데요. 아이들 보고 싶어서 가는 거죠(웃음)."

- 내일(31일)부터 진도 해역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질 것으로 예정돼 있습니다. 짧으면 금요일(2일), 길면 일요일(4일)까지 배가 못 나올 수도 있다던데요.
"각오하고 왔습니다. 아이들이 나를 붙잡는다면 더 오래 섬에 머무를 수도 있어요."

- 풍랑주의보도 풍랑주의보지만 기온도 뚝 떨어지고, 눈이 온다는 예보입니다.
"동거차도 산 위에서 세월호가 있는 곳을 바라볼 때 체감온도는 더 하겠죠. 그래도 바다에 잠들어 있던 아이들만 하겠습니까."

- 잠은 어디서 주무시나요.
"이전에 왔을 때 텐트를 쳐 놨어요. 두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작은 텐트입니다. 정부가 포기한 세월호, 다 포기해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지켜봐야 합니다.

- 새해를 맞아 딸을 만나러 가는 건데요. 기분이 어떻습니까.
"요샌 사막에 가도 안 죽을 자신이 있어요. 아…. 그렇게 눈물을 흘렸지만 여전히 끊임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사막에 가도 눈물 덕분에 목말라 죽진 않을 거 같아요. 대답이 잘 됐는지 모르겠네(옅은 웃음).

- 영상 카메라를 들고 계시네요. 직접 <416TV>(바로가기)라는 세월호 유가족 방송을 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방송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그냥 몸부림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잘났다는 언론이 많지만 제대로된 방송이 없어서 유가족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아마 1월 1일이 되면 현충원에 가겠죠. 우리는 당연히 세월호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바다를 찾습니다. 대통령은 팽목항과 이곳 사고 현장에 오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 11월 중순, 실종자 가족들이 수색 중단을 요청하고 인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단 용어 정리를 제대로 해야할 것 같아요. 당시 날씨도 춥고, 파도도 거세지고, 작업할 수 있는 날짜도 줄어 여러모로 수색이 어렵다고 하니까 방법이 없으니 수색 중단을 거론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물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요. 요청한 게 아니에요. 그리고 인양 또한 수색의 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내 나라, 내 바다에 있는 대한민국 미래의 꽃들을 포기하다뇨. 사람으로 할 짓이 아니죠."

- 최근 꾸려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두고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밑그림 그린 세월호 조사위, '정치적 중립' 두고 잡음).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뻔합니다. 진상을 밝히려고 하는데 한쪽에선 제대로 밝히지 못하게 막는 선수를 내세운 거에요."

- 새누리당이 추천한 일부 위원 중에는 세월호 유족을 비난한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의 글을 퍼 나른 사람도 포함돼 있더군요.
"(헛웃음) 그 분들, 많이 배우신 양반들일 겁니다. 그런데 제가 국회에 가 그런 분들과 맞딱드려 봤습니다. 우리가 아는 게 더 많았습니다. 사회·경제·문화 모든 측면에서요. 다만 정치는 제외하고요. 그 사람들은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정치에만 전문가지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전문가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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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표'만 덩그러니,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이 곳... 진도 맹골수도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에는 현재 노란 부표만 남아 있다. 사고 당시 구조작업에 힘을 보태고 싶었던 어민과 유가족, <오마이뉴스> 기자가 한 배를 타고 다시 사고해역을 찾았다. ⓒ 이희훈


- 얼굴이 많이 야위셨습니다.
"원래 늘 말랐어요(웃음). 아무래도 많이 수척해졌죠. 새로 산 운동화가 4개월 만에 옆구리가 터졌어요. 오늘 동거차도에 들어오기 위해 내려오면서 신발을 장만했어요. 속에 털도 달렸습니다.

- 박보나씨인가요? <416TV> 카메라를 들고 같이 다니던 분은 오늘 안 계시네요.
"단원고 2학년 5반 성호(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의 큰 누나에요. 일주일 전부터 많이 아팠어요. 한 번도 앞에서 말은 안 해 봤지만, 보나에게 많이 미안하죠. 옛날 코미디언 중에 남철, 남성남 콤비가 있었는데요. 오늘 혼자 이렇게 사고 현장에 가려니 갑자기 두 코미디언이 생각나면서 조금 허전하네요(웃음)."

- 인터뷰 고맙습니다. 이따가 동거차도에서 사고 현장으로 가는 배에도 함께 올라 이야기 나눴으면 합니다.
"네, 그래요. 고맙습니다."

[동거차도~사고현장] "아무 것도 된 게 없는데... 지성이가 내 손 잡아줄까"

- 이곳이 세월호가 침몰한 현장입니다. 부표 하나가 이곳이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임을 알려주고 있는데요. 얼마만에 찾은 사고 현장입니까.
"한 3주 전에 한 번 다녀갔어요. 당시 기상 상황이 좋지 못해 20~30분밖에 있질 못했어요."

- 아까 팽목항~동거차도 뱃길에선 괜찮았는데, 이곳에 오니 눈물을…. 괜찮으십니까.
"(오열하며) 세월호가 잠들어 있는 현장입니다. 들어가고 싶은데, 정말 들어가고 싶은데…. 엄마·아빠 소명을 다 못했던 이 자리, 수학여행길에 묻어 버렸던 이 자리. 이 바다는 그냥 바다가 아니겠지요. 이 바다가 대한민국의 바다 맞습니까."

문지성양 아버지는 한참 동안 오열했다.

- 이제 다시 동거차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성양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예전에 지성이에게 써 놓은 편지가 있어요. 천천히 가라. 왜 천천히 가라고 했냐면, 내가 가야할 길이니까요. 그런데 그 자식, 달리기를 잘해서 멀리 가버렸을 거에요. 지금은 솔직히 가고 싶어도 가지를 못해요. 뭐 하나라도 제대로 된 게 있어야지. 지금 가면 (지성이가) 얼굴도 안 쳐다보고, 손도 안 잡아줄 것 같아요. 나는 이게 너무 싫어요.

세월호 특별법은요,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걸 보여달라고, 제대로 보여달라고 만드는 거에요. 그날에 있었던 일과 지금까지 진행된 경과를 여과 없이 이야기를 좀 해보자는 게 세월호 특별법이에요. 그런데 언론은 본질이 아닌 '유병언법'을 수일 동안 조명하고. 유병언과 연관됐던 목사도 나오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나와서 좌담까지 하는데….

세월호 이후 세월호 유가족이 좌담하는 것 봤나요? 왜 유가족을 안 부르느냐, 말로 맞짱을 뜨면 전문가라고 하는 놈들이 할 말이 없거든요. 나는 여기서 현장을 봤어요. 어디 박사면 뭐하고, 전문가면 뭐해요. 내가 여기서 두 눈으로 본 것보다 더 잘 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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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해역 다시 찾은 지성아빠 "딸의 영혼이 머물러 있을 이 곳에서 새해를 맞고 싶었다"며 30일 진도 맹골수도 세월호침몰 사고해역을 다시 찾은 지성아빠는 덩그러니 떠 있는 부표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잊지 않기 위해, 또 현장에 오지 못한 다른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 이희훈


대통령 가슴에도 노란 리본이 없어요. 가슴이 없는 사람이에요. 기본 양심이 있으면…. 리본 무게가 우리 유가족에겐 천근만근이지만, 그 무게가 얼마나 하겠어요? 1kg이겠어요, 10kg이겠어요? 안전행정부? 죽이는 행정부에요. 누가 세월호 앞에서 안전을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큰 사고 나면 북한 관련 뉴스 내보내는 나라, 어떤 사안이 안 좋은 영향 미칠 거 같으면 김정은 사진 내보내는 나라, 그게 대한민국이에요.

그래도 이렇게 잊지 않고 함께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 힘이 됩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많은 국민이 서명을 해주고 있어요. 우리는 싸워야 해요. 살아 있는 그날까지. 누구랑 싸워야 하느냐? 희한하게도 우리 대한민국 정부에요.

다른 나라에서 이런 이야기 들으면 코미디라고 할 겁니다. 사고도 코미디, 수습도 코미디, 조사도 코미디. 다 죽여놓고 안 쪽팔릴까요. 이런 건 쪽팔려하지 않고 찌라시나 쪽팔려하는 코미디. 정부가 (세월호를) 포기했어도 나는 포기 안 합니다."

'노란 부표'가 보이자 아버지는 통곡했다 ⓒ 남소연


#세월호 #침몰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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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부 기자입니다.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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