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월호 첫 목격자...
해경만 믿었던 게 천추의 한"

[새해 맞는 진도 네 가지 장면②] 사고해역 인근 동거차도 주민 조강원씨의 깊은 '한숨'

등록 2015.01.01 21:09수정 2015.01.0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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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0일 낮 12시 10분, 진도 동거차도를 출발한 어선은 10분을 달려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동거차도에서 남남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지점, 이곳에는 사고 현장임을 알리는 노란 부표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배가 멈추자 엔진소리도 잦아들었다. 함께 배에 오른 세월호 희생자 문지성(단원고)양 아버지(관련기사 : "딸의 영혼이 머물러 있을 이곳에서 새해 맞고 싶었다")와 사진기자는 각자의 카메라를 쥐고 바다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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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구조나섰던 어민 "해경만 믿은 것이 천추의 한" 세월호 침몰당시 구조에 참여했던 선주 조강원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세월호 구조할 때 해경만 믿은 것이 천추의 한이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말했다. ⓒ 남소연


동거차도 주민이자, 어선 주인인 조강원(61)씨는 조종실에서 나와 뱃머리에 털썩 앉았다. 날이 흐려 햇볕이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씨는 마치 센 볕을 만난 듯 바다를 보며 찡그렸다. 슬픔도, 분노도 아닌 허무한 감정이 얼굴에 묻어났다.

조씨 옆에 기자도 앉았다.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직접 구조에 나섰나요"라고 묻자 조씨는 "네"라고 답했다. 

"배 안의 승객들을 그렇게 내버려 둘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해경만 믿고 있던 게 천추의 한입니다. 지금도 배에 도끼와 망치가 있는데…."

"사고 당시 생각하면 아직도 잠 못 이뤄"

뱃사람인 조씨에 따르면 이날 파고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다를 잘 모르는 기자가 느끼기엔 배가 상당히 뒤뚱거리고 있었다.


사고 현장인 맹골수도는 진도 본섬으로부터 약 52km 떨어진 맹골도와 동·서거차도 사이의 물길이다. 길이는 약 6km이며 최대유속은 5.49m/s에 이른다. 이는 2012년 지식경제부가 선정한 연안 조류발전 후보지 중 울돌목 다음으로 빠르다.

조씨에게 "4월 16일, 그날을 기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고 답했다.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시에 지휘체계가…. 그러니까 누구 한 사람이 나서서 지휘를 해야 하는데, 우왕좌왕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못 이루는 실정입니다."

"당시엔 언행 하나 함부로 못했습니다"라는 조씨와 동거차도 주민들은 지금도 가끔 섬을 찾는 유가족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이날 배에 오른 문지성양 아버지와도 안면이 튼 사이였다.

"얼마 전에는 유가족들이 (사고 현장에서 동거차도 남쪽편을 가리키며) 저기에 와 텐트를 치고 자려고 했다더라고요. 처음엔 몰랐죠. 이장이 약초 캐러온 사람인가 하고 가보니 세월호 유가족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자면 되겠냐'고 집으로 불러다 재우고 식사도 같이 했어요."

기자가 "사고가 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진도군민들은 유가족들에게 힘이 돼 주고 있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조씨는 "아이고, 무슨 그런 일로요. 사고 현장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구조를 못한 게 미안하죠"라고 답했다.

세월호 구조 참여 주민 "해경만 믿은 것이 천추의 한" 세월호 침몰당시 구조에 참여했던 선주 조강원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세월호 구조할 때 해경만 믿은 것이 천추의 한이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밝혔다. ⓒ 이희훈


"정부, 생업 걱정 말라더니..."

조씨의 생업은 미역 양식과 멸치잡이다. 하지만 사고 이후 전혀 일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동거차도를 비롯해 진도 해역 어민들도 비슷한 실정이라고 했다.

"미역 양식하고, 7~12월엔 멸치잡이 나갔었습니다. 지금까지 전혀 못하고 있죠. 동거차도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뭍에 있는 자식들이 쌀이라도 팔아줘 그럭저럭 삽니다. 아니면 형제들이나 농·수협에서 빚을 내 '내년에 벌어서 갚겠다'하고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게 사는 게 사는 거겠습니까."

그는 "사고 수습이 한창일 때 찾아와 '걱정말라'고 했던 대통령, 총리, 해양수산부 장관이 야속합니다"라고 말했다.

"사고 당시엔 '사람이 죽었는데 우리 1년 좀 못 번다고 어떻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고 현장 주변을 가리키며) 저 앞에 전부가 미역 양식장인데 다 중단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답답합니다. 그땐 대통령도 오고, 총리도 오고, 해양수산부 장관도 와서 '걱정말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으니 정부에서 다 해주겠다'고 했었는데….

사고 현장에서 20여 분 떠 있던 배는 다시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동거차도를 향해 내달렸다. 배에서 내린 취재팀은 곧바로 동거차도에서 팽목항으로 나오는 배에 올랐다. 다음날 풍랑주의보로 인해 배가 다니지 못할 거라는 예보 때문에 서둘러 동거차도를 빠져나와야 했다. 조씨는 선착장에 서서 배를 향해 두 손을 쉼없이 내저었다.

아래는 사고 현장에서 조씨와 나눈 대화의 전문이다.

"사고 현장 가까이 있음에도 구조 못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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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부표'만 바라보다...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 인근 섬 동거차도 주민 조강원(61)씨가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다고 알려주는 유일한 표식인 '부표'를 한참 바라보다 돌아서고 있다. ⓒ 이희훈


- 이곳은 동거차도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나요.
"동거차도에서 남남서쪽으로 약 1.6km 떨어져 있습니다."

- 오늘 날씨는 어떤 편인가요.
"겨울치고는 나쁜 날은 아닙니다. 다만 내일은 풍랑주의보가 예보가 돼 있습니다."

- 바다를 잘 모르는 제가 느끼기엔 배가 굉장히 기우뚱거리는 것 같은데요.
"일반인들이 느끼기에 잔잔하진 않지만 이 정도는 파고가 높은 편이 아닙니다."

-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직접 구조에 나섰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이 좀 나십니까.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현장을 올 때마다 마음이 안 좋습니다. 아마 제일 처음 세월호를 목격한 사람이 저일 겁니다. 그날 오전 8시에 미역 작업하러 나갔는데 저 멀리서 여객선 한 척이 오더라고요. 여객선이 이곳을 자주 지나요.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작업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왔죠. 그런데 오전 9시 30분에 서울 사는 친구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동거차도 앞에서 사고가 났다고요.

그때쯤 면장에게 '구조하러 나가라'고 연락이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배를 끌고 부랴부랴 사고 현장엘 갔죠. 해경이 와 있었습니다. 어련히 잘 구조할 걸로 믿었죠. 그런데 그게 천추의 한입니다. 안에 승객들을 그렇게 내버려 둘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배에 도끼와 망치가 있는데…. 그때 도끼와 망치로 유리창 하나라도 깼다면 한 명이라도 더 구했을 겁니다. 당시에 지휘체계가... 그러니까 누구 한 사람이 나서서 지휘를 해야 하는데, 우왕좌왕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못 이루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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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차도에서 취재팀을 배웅하는 두 사람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으로 <오마이뉴스> 취재팀을 데려다 준 동거차도 주민 조강원씨가 배에서 내려 취재팀을 배웅하고 있다. 이날 동거차도에 들어간 세월호 유족 지성아빠는 맹골수도가 가까운 이 섬에서 새해를 맞기로 했다. 그는 손수건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 이희훈


- 사고 직후 동거차도 분위기는 어땠나요.
"언행 하나도 함부로 못했죠. 희생자 가족들 생각하면 조심할 수밖에 없었고요. 얼마 전에는 유가족들이 (사고 현장에서 동거차도 남쪽편을 가리키며) 저기에 와 텐트를 치고 자려고 했다더라고요. 처음엔 몰랐죠. 이장이 약초 캐러온 사람인가 하고 가보니 세월호 유가족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자면 되겠냐'고 집으로 불러다 재우고 식사도 같이 했어요."

- 사고가 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진도군민들은 유가족들에게 힘이 돼 주고 있군요.
"아이고, 무슨 그런 일로요. 사고 현장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구조를 못한 게 미안하죠."

"형제들에게 빚내 생활 이어가기도..."

-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어선으로 직접 구조에 나선 거죠.
"네. 근데 이 배가 비교적 크잖아요. 사고 당시 해경 보트와 1톤 미만의 빠른 배들이 세월호에 붙어서 구조 작업을 했고, 이 배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배에서 좀 떨어져 있었어요. 이 배에 직접 구조자를 태우진 못했죠."

- 사고 이후 어려움은 없으십니까.
"아이고, 말도 못하죠. 사고 당시엔 '사람이 죽었는데 우리 1년 좀 못 번다고 어떻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고 현장 주변을 가리키며) 저 앞에 전부가 미역 양식장인데 다 중단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답답합니다. (사고 직후인) 그땐 대통령도 오고, 총리도 오고, 해양수산부 장관도 왔죠. '걱정말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으니 정부에서 다 해주겠다'고 했었는데….

- 평소 생업은 무엇인가요.
"미역 양식하고, 7~12월엔 멸치잡이 나갔었습니다. 지금까지 전혀 못하고 있죠. 동거차도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뭍에 있는 자식들이 쌀이라도 팔아줘 그럭저럭 삽니다. 아니면 형제들이나 농·수협에서 빚을 내 '내년에 벌어서 갚겠다'하고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게 사는 거겠습니까."

- 정부에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하겠네요.
"이제와서 보니 좀 야속한 마음도 들고…. 얼마 전에는 해양수산부 장관 면담도 신청했는데, 이제 사임해버렸잖아요. 답답합니다."

- 앞으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바람은 실종자들이 하루 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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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머리 돌리는 동거차도 어선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으로 <오마이뉴스> 취재팀을 데려다 준 동거차도 주민 조강원씨의 어선이 취재팀을 배웅하고 뱃머리를 돌렸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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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동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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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부 기자입니다.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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