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부표 아래 300여 명이 갇혀 죽은 배가 있다

[새해 맞는 진도 네가지 장면③] 세월호 침몰한 자리 부표만 흔들리고

등록 2015.01.02 14:39수정 2015.01.0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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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이 곳, 부표만 덩그러니... 맹골수도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에 '이 곳에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다'는 유일한 표식인 부표만 덩그러니 떠 있다. ⓒ 이희훈


한때 우리는 누구나 피해자였다. 그림 솜씨 좋던 예슬이의 언니였으며 마지막 용돈 6만 원과 함께 돌아온 착한 딸 유민이의 아빠였다. 아무 죄 없는 멀쩡한 목숨이 죽어가는 기가 막힌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우리는 "이게 나라냐"고 분노했다.

한때 우리는 누구나 당사자였다. 한 명이라도 더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기다리던 아이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을 때 우리는 절망했고 통곡했다. 300여 명의 목숨을 빼앗으며 침몰한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라며 우리는 치를 떨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또 하루 이틀이 지나자 우리는 "피해자 가족들이 너무 강경하다"며 꾸지람을 했다. 세월호 때문에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고 불평했다. 우리는 더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장에서 보란 듯이 치킨을 먹는 '패륜'이 자행됐다. 우리는 팔짱을 끼고 혀만 끌끌 찰 뿐이었다. 희생자 가족이 동의하지 못하는 진상규명법을 정치권이 흥정할 때도 우리는 "그만 하면 됐지"하고 신경질을 부렸다. 우리는 더는 당사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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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이어진 '부표' 진도 맹골수도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에는 현재 노란 부표만 남아 있다. 사고 당시 구조작업에 힘을 보태고 싶었던 어민과 유가족, <오마이뉴스> 기자가 한 배를 타고 다시 사고해역을 찾았다. ⓒ 남소연


비스듬하게 기운 채 침몰해가던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침몰하는 '대한민국 호'는 더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를 자처했던 우리는 대놓고 '세월호 피로감'을 들먹였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나라님 탓이 아닌 세월호 탓이 되었다. 침몰한 배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과 함께 더 깊숙이 바다에 숨고 말았다.     

침몰한 배 대신 바다엔 부표가 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참사의 흔적은 이제 노란색 부표 하나뿐이다. 노란색 부표엔 부표가 파손되면 연락하라는 전화번호가 선명하다. 배가 침몰하는 7시간 동안 "살려달라"는 수많은 긴급 타전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목숨 하나 구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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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여기 가라앉아 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표' 진도 맹골수도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에는 현재 노란 부표만 남아 있다. 사고 당시 구조작업에 힘을 보태고 싶었던 어민과 유가족, <오마이뉴스> 기자가 한 배를 타고 다시 사고해역을 찾았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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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이 곳... '부표'만 덩그러니 진도 맹골수도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에는 현재 노란 부표만 남아 있다. 사고 당시 구조작업에 힘을 보태고 싶었던 어민과 유가족, <오마이뉴스> 기자가 한 배를 타고 다시 사고해역을 찾았다. ⓒ 이희훈


잘 잊는 것도 좋은 추모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럼 잘 잊는 것은 어떤 것일까? 참사 1년도 안 지난 시점에서 피로감을 들먹이는 억지가 잘 잊는 것일까. 대한민국 건국 이후 가장 참혹한 해상사고라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국가개조까지 들먹이던 집권세력이 있었다. 책임을 묻기는커녕 선거를 통해 완벽하게 면죄부를 부여한 이 생뚱맞은 망각이 잘 잊는 것일까. 대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바람에 출렁이는 파도를 따라 노란색 부표가 흔들린다. 부표를 매단 밧줄을 따라 바다로 내려가면 300여 명이 갇혀 죽었던 배가 있다. 거기, 어둡고 무서운 차가운 바다 깊숙한 곳에 박혀있는 배엔 아직 9명이 갇혀 있다. 기억은 흔들릴지언정 삭제되지 않는다. 대체 무엇을 잘 잊으란 말인가. 망각을 강요하지 마라.

하늘엔 300여 개의 노란 색 별이 빛나고, 팽목항엔 무수한 노란 리본이 은하수가 되어 너울거린다. 그리고 저마다의 가슴 속엔 노란색 부표가 하나씩 흔들리고 있다. 간혹 기억하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잊지는 않을 것이다. 별 빛나지 않는 밤하늘이 없듯이, 노란색 부표처럼 이렇게 저렇게 흔들리면서도 잊지는 않을 것이다. 기억할 수 있음에 다시 일어서는 꿈을 꾼다. 어디에 있든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시큰한 눈물은 지금 흘리는 것으로 끝낼 테니 부디 행복하시라, 평안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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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이 곳... 부표만 덩그러니 진도 맹골수도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에는 현재 노란 부표만 남아 있다. 사고 당시 구조작업에 힘을 보태고 싶었던 어민과 유가족, <오마이뉴스> 기자가 한 배를 타고 다시 사고해역을 찾았다. ⓒ 남소연


#세월호 #특별법 #박근혜 #경제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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