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직전에 있던 천리향이 아내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엄동설한에 피어나 온 집안 가득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최오균
그 향기가 천리를 간다하여 '천리향'이라 붙여진 이름답게 몇 송이 핀 천리향 향이 거실은 물론 다락방 서재에도, 화장실에도, 집안 구석구석 어디를 가나 아득하게 밀려옵니다. 마치 아내의 향기처럼 천리향이 품어낸 향기가 온 집안에 퍼져 있습니다.
이 천리향은 3년 전 구례 섬진강변 수평리에 살 적에 화단에서 다 죽어가던 것을 아내가 화분에 옮겨 심어 애지중지 키워온 귀한 나무입니다. 아내는 시들시들 다 죽어가는 천리향을 정성들여 물을 주면서 길러왔습니다. 아내는 마치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내듯 천리향을 정성스럽게 보살피며 키웠습니다.
아내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천리향은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나듯 양지바른 거실에서 생기를 찾아 갔습니다. 그러더니 저렇게 해마다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우리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있습니다.
6년 전만 해도 아내 역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심장이식을 하지 않으면 2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삶이 아내에게 주어졌습니다, 지금은 지나간 말처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그땐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모든 것이 저 수평선 너머로 가물가물 사라지듯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식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사람이, 그것도 나와 가장 가까운 아내의 생명이 산다는 기약도 없이 매일 꺼져가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아내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내 마음속에 가진 '사랑'을 온전히 다 쏟아붓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마 그 6개월 동안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40년을 살아온 기간보다도 더 절실하고 치열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의 기적일까? 아니면 천운일까? 아내는 심장이식 등록을 한 지 6개월 만에 장기 기증자를 만나 기적처럼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사랑의 기적'이라는 것을 믿기로 했습니다.
아사 직전에 있던 이 천리향도 아내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천리향을 구례에서 이곳 연천으로 이사올 때에 가져왔는데, 매년 겨울이 오면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주고 향기를 품어주고 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다가 다시 기적처럼 살아난 아내는 모든 생명을 자기 생명처럼 더욱 귀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내 앞에서 나뭇가지나 화초 잎사귀 하나를 함부로 자르지 못합니다. 아무리 작은 나뭇가지를 자르더라도 아내에게 물어본 다음에 손질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