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인권배심회의2014년 12월 19일 서울시 신청사 3층에서 열렀던 제1차 서울시민인권배심회의 모습
고기복
진정서를 쓰고 서울시 인권센터에 관련 사실을 전달한 지 만 2년이 다 돼 갈 즈음에 내가 낸 진정 사건을 '시민인권배심회의'에 회부할 의향이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28일 서울시민 인권헌장 선언이 무산된 직후였다.
만 2년을 끈 진정사건을 시민인권배심회의를 통해 매듭짓겠다는 것이었다. 만일 배심회의에서 2/3 이상의 찬성으로 합의 평결이 나지 않으면,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에 대한 차별 시정은 더 어려워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배심회의 일정이 잡힌 이후 상황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서울시민 인권헌장 선언 무산 여파가 컸다. 인권헌장 선언에 대한 조직적인 반대 움직임은 거셌고, 선언을 촉구하는 측도 농성으로 박원순 시장을 압박하고 나섰다.
12월 10일 인권헌장 선언 무산에 따른 박 시장의 사과 표명을 보면서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에 몸을 담고 있는 많은사람들이 "지금은 때가 아니다, 회의 시기를 뒤로 미루자"는 연락을 해왔다. 알 만한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해왔던 변호사, 단체 대표 관계자 등 전문 위원들은 너나없이 회의 참석을 거절했다.
회의 전날인 18일,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어떤 이는 "어차피 법안 통과되는 거 보고 결정내리면 될 텐데, 굳이... 어려움 싸움할 필요 있느냐"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이자스민 의원 법안 발의에 대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이주아동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다. 더는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으로 합리적인 토론을 할 때가 됐다"고 말한 것처럼,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은 문제를 푸는 방법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라고 보았다. 비록 지금 실패하더라도, 논의 자체가 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을 하고 배심회의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서울시 인권센터에 분명히 전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에 대한 보육 미지원은 차별"그 결과는 놀라웠다. 8:4로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에 대한 보육 미지원은 차별이다'라는 합의 평결이 나온 것이었다. 세 시간 가까운 열띤 토론 끝에 서울시 인권배심원단이 내린 첫 판결은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것이었다. 첫 번째 회의라는 면에서 그 의미가 있었고, 그 내용에 있어서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인권규범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다수의견으로 합의 평결된 내용은 시민인권보호관에게 전달되었고, 서울시장에게 다음과 같이 차별 시정을 주문했다.
"서울특별시장은 '대한민국 헌법'과 '영유아보육법' 등 각종 법령 및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국제법, '서울시 어린이·청소년 인권조례' 등 서울시의 각종 조례에 따라 ... 미등록 이주아동에게도 영유아 및 가정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려는 목적으로 지급되는 보육료와 양육수당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박 시장은 2012년 6월 9일 다문화가정의 고충을 듣고 해결방법을 고민하는 서울타운미팅에 참석한 후 '원순씨의 시정일기 22'에 소감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이들도 꿈을 가지고 한국에 온 사람들입니다. 서울에서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2세 교육에까지 실패하면 이들은 어떤 희망으로 이 땅에 살 수 있겠습니까? 서울에 사는 외국인은 거의 40만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서울은 이미 국제도시입니다. … 이들에게 좀 더 희망과 꿈을 실천할 수 있는 서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박 시장도 이야기한 것처럼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보육 지원 및 교육 기회 부여는 사회통합의 측면뿐만 아니라 이주민들이 사회적으로 주변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함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참여하는 사회화 과정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취약계층으로 머물러 있는 부모와는 다른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오늘날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기본권적 지원을 이야기하면 어떤 이들은 이주민으로 인한 내국인의 일자리 잠식 위협을 들먹이며 차별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나치의 인종주의가 유대인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다는 막연한 공포와 정치인의 선동이 일으킨 결과였다는 것을 떠올리면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차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면에서 작년 12월 19일 시민인권배심회의 평결 결과는 역사적이며, 세계시민 선언인 셈이다. 미등록 이주민 아동에 대한 보육료 미지급이 사회복지서비스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헌법, 유엔아동권리협약, 국가인권위원회법, 영유아보육법, 서울특별시 인권기본조례, 서울특별시 어린이·청소년 인권조례 등에서 금지한 합리적 이유 없이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임을 시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서울시는 지난 서울시민인권배심회의 평결과 시민인권보호관의 주문을 받아들여서 우리사회에 이주아동과 그 가족의 권리에 대한 많은 논의를 이끌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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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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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2014년 12월 19일 이런 평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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