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경제 위기를 한껏 부풀려, 정권의 욕심만 채운 예는 또 있다. 정부는 반복해서 부동산 정책을 내놓으면서 서민들의 주택난, 전세난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지만 지나보면 대부분 서민에게 빚을 안기는 '부동산 떠받치기'였다.
또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에 기여할 것이라던 자유무역협정(FTA)체결의 성과는 일부 대기업이 독식했다. 대기업 총수의 사면조차도 경제 회생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박근혜 정부.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쓰다가, 의도를 채우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버려지는 게 '서민의 경제난 때문'이라는 핑계였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계 부채가 1000조를 넘어서면서 야당과 시민단체의 대책 마련 요구가 빗발치자 지난해 10월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감내할 수준이 된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내놨다. 한국은행조차도 금융시스템 위기로 가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를 두둔했다. 정권의 의도대로 각색되는 경제 진단과 거기에 맞춰 부각되거나 은폐되는 각종 통계. 올바른 경제 정책은 제대로 된 진단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박근혜 정권의 경제 정책은 번번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할 수 있다.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우면, 9억 아파트 소유자 재산세와 맞먹는 세금을 내게 된다잖아요. 틈만 나면 공공요금 올려놓고 이제 와서 물가가 안 올랐다고 하면 거짓말이지요. 왜 힘들겠어요. 수입보다 써야 될 돈이 더 많으니까 힘든 거지요." 시간이 늦어 잡아 탄 택시. 기사는 "연말연시 분위기가 너무 안 난다"더니, 중년 남자들의 공통사인 불경기에 대해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나갈 돈은 많고 그만큼 벌지 못하니 삶이 팍팍한 것 아니냐며 기름 값을 더 내려야 한단다. 오히려 물가에 대한 진단은 정부 부처나 연구 기관보다 솔직하고 정확하다.
택시기사의 말처럼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현실에선 아무리 물가가 떨어진다고 해도 체감물가는 여전히 높을 수밖에 없다. 물가에서 등락폭 비교보다 중요한 건 구성원 대부분이 수입으로 지출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가이다.
F학점 받은 최경환 경제팀에 2015년 맡겨도 될까연간 물가상승률은 2년 연속 1%대에 머물러 있지만, 그동안의 노동자 임금 상승률은 더 미미했다. 2014년 3분기 노동자 실질임금은 0.1% 상승 2014 누적 상승률도 0.7%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정규직은 2014년 3분기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1년 전보다 1.5% 하락했다.
소비가 위축되면 물가가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때 써야할 정책은 임금 인상을 유도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강제하는 것이지, 서민들에게 대출 기회를 줘 시장에 돈을 풀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 정부의 저물가 타령은 자칫 경기침체 속에서 물가 상승이 거듭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상태로 한국 경제를 밀어 넣을 수 있다.
2015년 한해가 밝았다. "작년에도 그나마 선방, 올해 잘하자"는 덕담은 필요 없다. 2014년은 노동자와 농민, 자영업자 등 '서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한해였다. 임금이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가계 부채는 1천조를 넘어 고공행진하고 있다.
'국민행복 시대, 중산층 70%를 육성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 공약을 걷어차고 경장 성장 논리에 빠져 들었다. ▲3.4%의 경제 성장 ▲부동산 정상화 ▲창업법인 숫자 사상 최대를 기록 등이 도탄에 빠진 서민들 생활을 덮을 수는 없다. 성장이 더 이상 서민들의 임금 인상을 담보하지 않는다. 부동산 정상화는 집 있는 사람, 부동산 부자들이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최경환 경제팀이 2014년 거둔 성적표는 초라하다. 기업과 부자들에게 박수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서민들이 보기에는 F학점, 낙제점이다. 양두구육 같은 공치사로 한해를 시작하자는 최경환 경제 부총리에게 2015년 대한민국 경제 정책을 맡겨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용퇴야 본인의 결단이고 대통령의 결정이 필요한 것이니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계속 경제팀을 이끌 것이라면, 서민들 살림살이를 성장의 불쏘시개로 사용하려는 생각만은 제발 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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