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파 헛 오두막집 부엌 모습
강은경
니파 헛은 팔뚝 굵기만한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1미터쯤 공중에 띄워 대나무로 벽을 세우고, 대나무로 바닥을 깔았다. 얇은 대나무 바닥과 벽이 그물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통풍이 잘됐다. 지붕은 시원하고 튼튼한 니파야자 잎으로 덮었다.
건축 재료가 다 자연에서 취한 것들이었다. 비바람에 취약해 보였지만, 환경과 잘 어울렸다. 나중에 고스란히 흙으로 돌아갈 것들이었다. '이런 집에서 살면 '소풍'처럼 삶이 가볍고 단순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는 부엌과 방과 거실로 나뉘어져 있었다. 외벽처럼 대나무쪽을 엮어서. 옷가지와 부엌용품 등 속의 살림살이가 아주 단출했다.
제인의 집은 코코넛 야자나무 숲 가운데 있었다. 해변에서 300여 미터 안쪽으로 들어간 자리에. 바랑가이(마을)에서 가장 크고 번듯해 보였다. 마당도 넓었다. 어젯밤 나는 이 집의 작은 방에서 잤다. 옷가지 몇 개가 벽에 걸려 있고 널빤지로 만든 침대가 있었다. 나는 잠깐 등잔불을 켰다가 껐다. 일찍 누웠다.
발치 위에 뚫린 창문을 통해 초승달과 별들이 숱하게 보였다. 오랫동안 뒤척이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중얼거리며. 혹, 유성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강은교의 '별똥별'도 주문처럼 읊었다.
밤하늘에 긴 금이 갔다너 때문이다밤새도록 꿈꾸는 너 때문이다닭 우는 소리만 높았다. 염려했던 모기는 다행히 달려들지 않았다. 침대 모서리를 타고 바글바글 줄지어가던 개미가 신경 쓰였지만. 나는 야영을 할 때처럼 별과 눈 맞추며, 쉬이 잠들지 못했다.
오늘밤은 바닷가로 나가 별을 봐야지, 생각하며 니파야자 잎을 엮어갔다. 작업에 능숙해질만 하자 미셀과 메이아가 점심 먹자고 부엌에서 불렀다. 니파 잎을 내려놓고 핼린과 부엌으로 갔다.
밥과 구운 생선 한 토막. 그런데 삶은 게 한 마리가 내 접시에만 놓였다. 나는 얼른 그 손바닥만한 게를 네 쪽으로 찢었다. 세 아가씨들 밥 접시에 한 쪽씩 놓아 주었다. 다들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밥을 얻어먹고 있는 사람은 난데...
이곳 주민들이 나보다 정말 가난할까?점심을 먹은 후 핼린이 동네를 돌자며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가무잡잡한 얼굴이 둥글고 통통한 핼린은 열여덟 살, 쾌활한 아가씨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이 섬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코론 시에서 한국 드라마를 텔레비전으로 몇 번 봤단다. 한국 남자들이 정말 멋있단다. 어제 저녁에는 배우고 싶은 한국말이 있다며 내 옆에 한참 붙어 있었다. 그녀는 내게서 종이와 볼펜을 빌려 한국어를 큐오논어로 받아 적었다. 여러 번 읽어가며 진지하게 발음을 수정했다.
'안녕하세요. 보고 싶어요. 내 사랑 어디 있어요? 사랑해요.' 핼린을 따라 바랑가이를 돌았다. 50여 가구, 가까운 친인척들이 모여 사는 '씨족마을'이라 핼린은 이집 저집 무람없이 들랑거렸다. 내게 경계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수줍음을 좀 탈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