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 색싯감을 죽였어"... 허형식, 칼을 들다

[박도 실록소설 '들꽃' (27)] # 제6장 경신참변 ⑤

등록 2015.01.07 18:29수정 2015.01.0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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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해제
'들꽃'은 일제강점기에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 침략자들과 싸운 항일 독립전사들을 말한다. 이 작품은 필자가 이역에서 불꽃처럼 이름도 없이 산화한 독립전사들의 전투지와 순국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으로, 그분들의 희생비를 찾아가 한 아름 들꽃을 바치고 돌아온 이야기다. - 작가의 말

 쑥부쟁이, 7~10월에 산길 들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을꽃이다.
쑥부쟁이, 7~10월에 산길 들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을꽃이다.임소혁 사진작가 제공

만주의 겨울

만주의 겨울은 길다. 10월 하순부터 영하로 내려가 땅이 얼면 이듬해 4월이 되어야 녹았다. 해동이 되면 파종의 시기로 농사꾼들은 부쩍 서둘러야 했다.


허필, 마칠봉은 중국인 지주 펑따롱(馮大龍)을 찾아가 첫 해는 5정보(1만5천 평)를 빌렸다. 그 가운데 허필은 1정보를, 마칠봉은 4정보를 농사지었다. 허필은 그 마을에서 금오약방을 냈기 때문이다. 허필은 의원으로 약방을 지키고 농사는 주로 허필의 부인 벽진 이씨와 아들 형식이 맡았다. 그 마저도 힘든 일은 대부분 마칠봉이 맡았다.

지주 펑(馮)에게 빌린 땅은 원시림으로 우거진 산비탈로 불을 놓아 화전을 이룬 후 감자, 옥수수, 보리, 메밀 등을 심었다. 첫해는 봄 가뭄으로 감자와 보리는 절반밖에 심지 못했다. 나머지 땅에는 메밀과 옥수수를 심었다. 파종을 끝낸 뒤는 서둘러 집을 지었다. 허필은 중국인 마을 곁에다가, 마칠봉은 농지가 있는 산비탈에다 집을 지었다. 그들은 화전을 가꾸느라 벤 통나무를 우물 '정(井)'자로 쌓은 다음, 지붕은 서까래를 얹은 뒤 돌이끼로 덮었다. 그런 집을 '틀방집'이라고 했다.

형식은 마칠봉에게 농사짓는 법을 배워가며 자기 몫의 땅에 씨앗을 뿌리고 작물을 가꿨다. 그해는 가뭄이 몹시 심해 주식인 감자와 보리농사는 시원치 않았으나 옥수수와 메밀을 비교적 잘되었다. 추수 후 지주에게 소작료를 주고 나자 1년 양식의 절반 이상은 부족했다. 허필은 약방 수입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마칠봉은 지주 펑(馮)에게 양식 부족분을 1년 장리로 빌렸다.

 중국 랴오닝성의 산하(1999. 8. 제1차 답사 때)
중국 랴오닝성의 산하(1999. 8. 제1차 답사 때)박도

중국인 학교에 다니다

농한기인 겨울철로 접어들자 마땅히 할 일도 없어 형식과 춘옥은 중국인 학교에 다녔다. 가까운 곳에 마땅한 조선인 학교도 없었을 뿐더러, 중국 땅에서 살아가자면 가장 먼저 중국말과 글을 배우는 게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허필은 아들 형식이 학교에 갈 때마다 일렀다.


"우째든동 중국 애들 하고 사이좋게 지내라. 우리는 그들 땅에 얹혀사는 기다."
"예, 아부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중국 애들은 함께 잘 놀다가도 저희들이 불리하다 싶으면 조선 아이들에게 "왕꼬누!"하고 놀렸다. 한두 번은 참았지만 그런 일이 거듭 되자 같은 조선 아이들은 뭉쳐 그들과 집단 패싸움을 했다. 그럴 때마다 형식이 앞장서서 중국인 아이들을 실컷 패주었다. 그러면 심하게 다친 애들은 부모를 앞세우고 허필 집으로 쳐들어왔다.


그들 부모는 조선인들이 남의 나라에 들어와 건방지게 귀한 자식을 때렸다고 당장 자기네 마을에서 떠나라고 윽박질렀다. 그럴 때마다 허필과 어머니 성주댁이 나서 중국인 부모에게 싹싹 빌었다. 그들이 떠나면 허필은 회초리로 아들의 종아리를 쳤다.

"우리 조선사람은 나라를 빼앗긴 망국민이다. 망국인은 걸뱅이 중에 상 걸뱅이다. 그저 중국인 애들 비위를 맞춰가며 지내야 이 땅에서 이나마 빌붙어 살 수 있는 기라."

그럴 때면 성주댁은 한쪽 구석에서 앞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그런 일 후 형식은 중국 애들로 속이 상한 일이 있어도 꾹 참고 지냈다.

"아는 게 힘이다. 우리 조선이 망한 것은 첫째로 모두가 무식해서 그랬다."

아버지 허필은 때때로 아들을 담금질했다. 허필은 아들만 삼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 보(堡)는 만주에 이주한 뒤 곧 풍토병으로 잃었고, 형식과 규식 형제를 두고 있었다. 사실 형식은 어려서부터 공부는 멀리했다. 아버지 허필도 처음에는 공부를 시키고자 닦달하다가 워낙 공부를 등한시하자 두 손 들고 말았다.

다행히 맏이 보가 그런대로 공부하기에 둘째 형식은 농사꾼으로 만들고자 내버려 뒀다. 하지만 만주로 온 뒤, 더욱이 맏아들을 잃자 허필을 더욱 형식을 다그쳤다. 형식도 뒤늦게야 깨우친 탓인지 공부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여 어느새 중국말은 본토 아이들처럼 익숙해 갔다.

 동북지방에는 말로 논을 갈고 있었다(2004. 5. 제3차 답사 때 촬영).
동북지방에는 말로 논을 갈고 있었다(2004. 5. 제3차 답사 때 촬영).박도

퇴학 당하다

어느 하루 학교에서 춘옥을 먼저 보내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데 산 계곡 쪽에서 한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형식이 귀를 기울이자 춘옥의 비명 같았다. 형식은 책보를 던지고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같은 반 아이인 중국인 주먹대장 마오시옹(毛雄)이라는 녀석이 춘옥이를 겁탈하려던 찰나였다.

순간 형식은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그는 마오를 일으켜 세운 뒤 곤죽이 되도록 패주었다. 이튿날 마오(毛) 부모는 아들을 업고 허필 집으로 찾아왔다. 마오는 눈덩이도 엉망이 되었고, 콧등도 무너져 내렸다. 허필 부부는 손발이 닳도록 빌었고, 그동안 약방으로 벌어 모아 둔 돈을 모두 꺼내 위로금으로 건넸다. 그 일로 형식은 학교에서 퇴학을 맞았고, 그러자 춘옥이도 학교를 그만 두었다.

그 해 가을은 소출이 형편이 없었다. 일 년 내 가뭄도 심했을 뿐더러, 춘옥이 어머니 사곡댁이 뒤늦게 풍토병에 걸려 마칠봉이 농사일에 전념하지 못한 탓이었다. 마칠봉은 추수 후 빈 손으로  지주 펑따롱(馮大龍)을 찾아가 한 해만 더 봐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그는 안 된다고 딱 잘랐다. 그 다음 날 다시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마침내 펑은 최후통첩을 했다.

"난 네 말을 믿을 수 없다. 네가 소작료와 그 이자를 다 갚을 때까지 네 딸을 내 집 하녀로 쓰겠다. 내일 당장 네 딸을 데려오라. 내 집에 오면 의식주가 풍부할 것이다. 그게 너와 네 딸을 위한 길일 것이다."

마칠봉은 집에 돌아온 뒤 차마 그 말을 가족에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뒤 몸져 누웠다. 마칠봉은 허필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았다. 사흘 후 지주 펑은 마적 두목을 거느리고 마칠봉 집에 나타났다. 그는 의금부에서 나온 도사처럼 마칠봉 내외를 꿇어앉힌 뒤 윽박지르며 말했다.

"우리 중국사람, 신용없는 사람 상대 안 해. 언제든지 소작료와 그 이자를 다 갚으면 네 딸을 돌려주겠어."

그리곤 울부짖는 춘옥이 팔다리를 꽁꽁 묶어 말에 태운 뒤 유유히 사라졌다.

형식은 그 소식을 그날 밤에야 들었다. 이튿날 아침, 형식은 지주 펑(馮)의 집으로 갔다. 대문을 두드리자 하인이 나타났다. 춘옥이를 데리려 왔다고 하니까 소작료를 다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형식이 대답이 없자 그대로 대문이 닫혔다. 형식이 몇 날을 그렇게 찾아가 대문을 두드렸으나 집안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느 하루는 좀 심하게 문을 두드리며 춘옥이를 불렀더니 하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와 형식을 붙잡은 뒤 대문기둥에 묶고 복날 개 패듯이 매질을 했다. 하인들은 매를 흠씬 맞아 퍼드러진 형식을 말에 태워 금오약국 문 앞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이튿날 춘옥이가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펑(馮)가네 수레에 흰 천을 뒤집어 쓴 채로 돌아왔다. 그 전날 춘옥이는 지주 펑(馮)에게 끝내 겁탈을 당했다. 이튿날 새벽 춘옥이는 잠자던 방 대청에서 목을 맸다.

 일송 김동삼의 백서농장이 있는 쏘베차
일송 김동삼의 백서농장이 있는 쏘베차박도

복수의 칼날

형식은 춘옥의 장사를 지낸 닷새 후에야 일어났다. 곧장 형식은 춘옥의 무덤에 가서 대성통곡을 했다. 형식은 그 모든 사실을 그제야 알고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나는 너를 지켜주지 못했어. 꼭 네 원수를 갚아줄게."

형식은 그날부터 날마다 펑(馮)이 혼자 나들이 하는 걸 길목에서 노렸다. 보름 만에 기회가 왔다. 그날은 펑(馮)이 혼자 갈색 말을 타고 나들이를 하고자 동구 밖을 벗어나고 있었다. 마침 산기슭 모퉁이를 지키고 있던 형식은 새총을 꺼내 펑(馮)이 탄 말의 눈을 정조준하여 당겼다.

새총의 돌멩이는 휙 날아가 말의 왼쪽 눈동자에 정통으로 맞혔다. 그러자 말은 펄쩍 펄쩍 뛰더니 주인을 팽개친 채 달아났다. 형식은 그 자리로 달려가 깊이 숨겨둔 칼을 뽑아 펑(馮)의 엉덩이를 마구 찔렀다.

"너는  내 색싯감을 죽였어. 너도 죽어라! 이 악질 지주 놈아!"

형식은 펑의 목에 칼을 찌르려다가 갑자가 부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순간 살려달라고 싹싹 비는 펑(馮)을 내버려둔 채 칼을 버리고 그 길로 이가태자를 떠났다.

 백두산 가는 길의 자작나무 숲(2004. 5. 제3차 답사 때 촬영)
백두산 가는 길의 자작나무 숲(2004. 5. 제3차 답사 때 촬영)박도

청봉령의 깊은 여름밤

어느새 청봉령 하현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자정을 넘긴 듯 했다. 허형식의 눈자위는 눈물이 괬다. 그때까지 옆자리에 누운 왕조경과 진운상은 눈을 껌뻑거리며 허 군장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왕조경이 말했다.

"그래서 허 군장님은 우리 당에 입당하셨군요."
"그것도 한 요인인 건 사실이야."

진운상이 하품을 한 뒤 말했다.

"군장님! 날이 새면 갈 길이 멉니다."
"그렇군. 그럼 이제 그만 자세."

그러자 왕조경이 허 군장의 나머지 얘기를 다 듣지 못해 안달하면서 말했다.

"나머지 얘기는 아침밥 먹은 뒤 들려주시라요."
"그러지."

허 군장은 홑이불을 머리에 뒤집어 썼다. 진운상, 왕조경 두 경위원도 곧장 잠이 들었다. 헤이룽장성 경성현 청봉령 여름밤은 쉬엄쉬엄 깊어만 갔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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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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