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지방에는 말로 논을 갈고 있었다(2004. 5. 제3차 답사 때 촬영).
박도
퇴학 당하다어느 하루 학교에서 춘옥을 먼저 보내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데 산 계곡 쪽에서 한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형식이 귀를 기울이자 춘옥의 비명 같았다. 형식은 책보를 던지고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같은 반 아이인 중국인 주먹대장 마오시옹(毛雄)이라는 녀석이 춘옥이를 겁탈하려던 찰나였다.
순간 형식은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그는 마오를 일으켜 세운 뒤 곤죽이 되도록 패주었다. 이튿날 마오(毛) 부모는 아들을 업고 허필 집으로 찾아왔다. 마오는 눈덩이도 엉망이 되었고, 콧등도 무너져 내렸다. 허필 부부는 손발이 닳도록 빌었고, 그동안 약방으로 벌어 모아 둔 돈을 모두 꺼내 위로금으로 건넸다. 그 일로 형식은 학교에서 퇴학을 맞았고, 그러자 춘옥이도 학교를 그만 두었다.
그 해 가을은 소출이 형편이 없었다. 일 년 내 가뭄도 심했을 뿐더러, 춘옥이 어머니 사곡댁이 뒤늦게 풍토병에 걸려 마칠봉이 농사일에 전념하지 못한 탓이었다. 마칠봉은 추수 후 빈 손으로 지주 펑따롱(馮大龍)을 찾아가 한 해만 더 봐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그는 안 된다고 딱 잘랐다. 그 다음 날 다시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마침내 펑은 최후통첩을 했다.
"난 네 말을 믿을 수 없다. 네가 소작료와 그 이자를 다 갚을 때까지 네 딸을 내 집 하녀로 쓰겠다. 내일 당장 네 딸을 데려오라. 내 집에 오면 의식주가 풍부할 것이다. 그게 너와 네 딸을 위한 길일 것이다."마칠봉은 집에 돌아온 뒤 차마 그 말을 가족에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뒤 몸져 누웠다. 마칠봉은 허필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았다. 사흘 후 지주 펑은 마적 두목을 거느리고 마칠봉 집에 나타났다. 그는 의금부에서 나온 도사처럼 마칠봉 내외를 꿇어앉힌 뒤 윽박지르며 말했다.
"우리 중국사람, 신용없는 사람 상대 안 해. 언제든지 소작료와 그 이자를 다 갚으면 네 딸을 돌려주겠어."그리곤 울부짖는 춘옥이 팔다리를 꽁꽁 묶어 말에 태운 뒤 유유히 사라졌다.
형식은 그 소식을 그날 밤에야 들었다. 이튿날 아침, 형식은 지주 펑(馮)의 집으로 갔다. 대문을 두드리자 하인이 나타났다. 춘옥이를 데리려 왔다고 하니까 소작료를 다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형식이 대답이 없자 그대로 대문이 닫혔다. 형식이 몇 날을 그렇게 찾아가 대문을 두드렸으나 집안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느 하루는 좀 심하게 문을 두드리며 춘옥이를 불렀더니 하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와 형식을 붙잡은 뒤 대문기둥에 묶고 복날 개 패듯이 매질을 했다. 하인들은 매를 흠씬 맞아 퍼드러진 형식을 말에 태워 금오약국 문 앞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이튿날 춘옥이가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펑(馮)가네 수레에 흰 천을 뒤집어 쓴 채로 돌아왔다. 그 전날 춘옥이는 지주 펑(馮)에게 끝내 겁탈을 당했다. 이튿날 새벽 춘옥이는 잠자던 방 대청에서 목을 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