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냈지만... 수리 않고 '진상규명'2013년 9월 13일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과 관련해 전격적으로 사표를 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진상규명'과 '공직기강'을 언급하며 수리하지 않았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2013년 9월 16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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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수석이 항명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들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궁금해 한다. 대통령과 김기춘 실장 역시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은 그 궁금증을 풀 힘을 가지고 있다. 한 명은 최고 권력자이고, 다른 한 명은 비서실장 아닌가.
실제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김영한 전 수석처럼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계를 잠시 돌려 2013년 9월로 돌아가 보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과 접하게 된다. 당시 채 전 총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정권의 정통성에 생채기를 냈다.
2013년 9월 6일자 <조선일보>는 '채동욱 혼외자' 문제를 특종으로 터트린다. 채 전 총장은 부인했지만 보수언론의 보도는 계속되었다. 같은 달 13일, 법무부에서 혼외자와 관련해 감찰에 착수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흐른 뒤 채 전 총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새가 둥지를 떠날 때는 둥지를 깨끗하게 하고 떠난다는 말이 있다"는 말을 남긴 채 대검청사를 떠났다.
인상적인 장면은 그 다음날 등장했다. 2013년 9월 14일, 모든 언론에서 '채 총장 사의표명'을 머리기사로 보도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진실 규명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사표수리 여부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하면서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채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보름가량 지난 9월 27일, 법무부에서 진상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법무부는 "혼외 아들 의혹이 사실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여러 진술과 정황 자료를 확보했다"며 "(청와대에) 채 총장의 사표 수리를 건의했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28일, 채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지 보름 후에야 박근혜 대통령은 비로소 사표를 수리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흘렀다. 이번에는 정권과 각을 세웠던 검찰총장이 아닌 청와대에서 검찰을 관리하는 민정수석이 '항명'을 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리고 다음날 박 대통령은 사표를 수리했다. 앞서 채동욱의 경우에 비춰 이해되지 않는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출석을 요구했고, 직속상관인 비서실장이 출석을 지시했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 사건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앞서 언급했던 '공직기강'을 정확히 훼손한 행위가 아닌가.
이 사건은 채동욱 전 총장의 '언론에 의해 11세로 주장되는 혼외자 존재 여부' 이상으로 중요한 사안이다. 공직기강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그러나 사의를 표명한 다음날 그의 사표는 수리됐다. 괘씸했던 채 전 총장은 보름 동안 진상조사를 받았지만, 김영한 전 수석은 청와대 감찰은커녕 사표만 바로 수리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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