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 고문서 정리를 하는 프랑스의 펠리오. 그는 넉달 동안 유물을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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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고문서들을 팔아 치운 왕원록 도사는 부자가 되었을까? 아닌 것 같다. 그가 받은 돈은 다시 이 곳 막고굴을 보수하는 기금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335굴을 방문했을 때였다. 당대 조성된 석굴인데, 유마힐경변이 그려져 있는 벽화로 유명하다. 이 벽화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데 조우관을 쓴 신라 사신이 함께 그려져 있다. 벽화만 당대 조성한 그대로 남아 있고 불상은 청대에 보수되었다고 한다. 이 보수를 왕원록이 사람을 사서 했단다.
"그럼 왕원록은 자기가 받은 돈을 다 보수하는 데 썼네요.""그런 셈이죠.""정말 막고굴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었나 봐요. 이렇게 보수도 하고..."내 말에 가이드는 딱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특유의 시니컬한 어조로 툭 던진다.
"이쁘지도 않아요."청대 보수한 불상이 볼품이 없다는 거다. 하긴, 스타인도 왕도사의 보수를 보고 '둔황의 조소예술이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비웃을 정도였다. 이렇게 자국민에게 멸시를 받고 있는 왕원록 도사. 좀 짠한 느낌이 있다. 어느 누구도 막고굴의 진가를 모를 때, 그 혼자 막고굴에 애정을 쏟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무지로 비롯된 '잘못된 사랑'이긴 했지만.
하지만 왕원록 도사보다 더 나쁜 것은 무지한 촌부를 꾀여 '학술조사', '문화재연구'라는 이름 아래 약탈을 자행한 스타인이나 펠리오와 같은 제국주의 열강의 탐험가들이다. 지금도 그 문화재들을 돌려주지 않는 그들 나라의 뻔뻔함이다.
비단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비슷하게 나라가 어수선한 틈을 타 무단 반출된 후 환수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도 얼마나 많은가. 일제는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 문화재를 발굴 조사 작업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파괴는 물론 빼돌리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가적 차원으로 국외소재 문화재 환수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경전을 읽고 싶다고요"둔황에서 갈 수 있는 근교 여행지 중에 둔황 고성이 있다. 보통은 옥문관, 서천불동, 야단지질공원 등과 묶어서 가는 코스다. 진짜 성은 아니고 이노우에 야스시 원작의 소설 <둔황>의 영화 촬영세트장이다.
소설 <둔황>은 송나라의 조행덕이라는 사내의 이야기다. 서하 여인을 만나 그녀와 그녀의 문자에 매혹 당해 관리가 되기를 포기하고 모험을 선택한 남자다. 서하군대가 이곳에 밀려올 때 조행덕은 경전을 두고 도망치지 못하고 있던 승려들을 만난다.
"우리가 읽은 경전은 극히 미미한 숫자에 불과합니다. 아직 읽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단 말입니다. 읽기는커녕 펼쳐보지도 못한 경전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예요. 우리는 경전을 읽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행덕의 몸에는 머리끝까지 뜨거운 전류 같은 것이 흘렀다. - 이노우에 야스시, <둔황>그는 깨닫는다. 재물이나 목숨, 권력은 소유하는 자들의 것이었으나 경전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전쟁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 '영원'을 걸고 지켜야 할 것에 눈을 뜬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승려들을 도와 경전들을 막고굴에 넣고 봉인하게 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17굴 장경동에 문서를 쌓아둔 배경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소설에서처럼 전쟁을 피해 문서를 피난 시켰다는 설과 낡아서 관리하기 어려운 문서를 보관하고자 이용했다는 설이 있다. 당시 중국은 글과 종이를 중요시하는 풍습상 문서를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둔황 고성에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영화 세트장을 거닐면서 당시 둔황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조행덕은 삶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순간에, 영원히 남을 '가치'를 선택했다. 거침없이 매혹 당하고, 마지막까지 선택한 가치를 놓지 않는 삶.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는 이야기다.
오늘은 좋은 날, 부처님 오신 날5월 6일은 석가탄신일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막고굴로 향했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년 사월 초파일이면 둔황 사람들은 막고굴에 모여 춤과 노래를 즐기며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그 전통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둔황 사람들은 정토신앙을 숭상했다. 전체 막고굴 벽화의 4분의 1이 서방의 정토를 다룬 것이다. 벽화를 보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비천이 날렵한 자태로 날고 있다. 비천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둔황 사람들에게 이곳은 부처의 나라였고 극락정토의 입구였다. 모래 바람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불국토였다.
오늘 중국 사람들은 막고굴 입장료가 10위안이란다. 보통 입장료는 180위안인 걸 생각할 때 파격적인 가격이다. 입장하면 막고굴에서 가장 큰 불전인 96번 굴 북대불전에서 불상을 한 바퀴 돌며 참배할 수 있다고 한다. 측천무후를 모델로 한 거대 불상의 뒤태를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100% 한족의 얼굴'를 이용해 표를 사 보려 했다. 하지만 신분증을 보여 달란다. 결국, 아쉽게 후퇴했다.

▲부처님 오신 날 치안 경계를 강화한 모습
정효정

▲얼후 연주자 담배 한대 꼬나 물고, 우수에 젖은 눈빚으로
정효정
막고굴 앞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참배하거나,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연주하는 악단도 있고 무도복을 맞춰 입고 춤을 추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들 밝은 표정으로 팔을 활짝 펴고 비천처럼 춤을 춘다. 그냥 빙글빙글 돌기만 해도 즐거운가 보다.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졌다.

▲춤추는 사람들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람들은 매년 이곳에서 축제를 즐겼다
정효정

▲신나는 할머니 오늘은 좋은 날~
정효정

▲구경하는 아이들 "할머니 뭐하세요?" "할머니 대체 뭐하세요?"
정효정

▲둔황의 미소 오늘은 좋은날 부처님 오신날
정효정
지난한 삶, 사람들은 늘 팔을 활짝 펴고 춤출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당시, 막고굴은 험한 현세를 살아가는 위로였고, 석가탄신일은 살아있음을 축하하는 축제였을 것이다. 지금도 막고굴은 각박한 우리 삶 속 오아시스가 되어, 천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고 있다. 이 생이 끝나고 돌아갈 때,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비천처럼 아름답게 돌아갔으면 싶다.
긴 소매를 펄럭이며, 오늘처럼 즐거운 기억만 가지고.
| [여행정보] 둔황 근교 여행지 가는 법 |
서천불동이나 옥문관 같은 둔황 근교 여행지는 택시를 대여하거나 투어버스에 참여해야 한다. 각 유스호스텔이나 호텔 앞 여행사에서 반나절 투어를 진행한다. (85RMB) 오후 12시에 출발해 둔황고성, 서천불동, 옥문관, 한대성벽, 야단지질공원 등을 둘러보고 밤 10시에 도착한다. 이런 투어의 경우 이동거리가 길고 따로 식사시간을 주지 않는다. 자기 먹을거리를 싸서 가는 것이 좋다.
각 관광지 입장료는 포함이 되어 있지 않으니 충분한 현금을 지니고 가자. (둔황고성 입장료 40RMB, 서천불동 40RMB, 옥문관 40RMB, 야단지질공원 80R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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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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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40개 때문에... 중국의 역적이 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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