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배기였던 딸이 다섯살이 되도록 만나지 못했지만 딸과 아내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는 산지와
김혜원
산지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사람들이 몇 있다. 한국으로 취업을 나오려고 할 때 수속을 할 수 있도록 돈을 빌려준 작은 아버지, 화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이런 저런 도움을 주며 위로와 기도를 해주었던 한국 사람들, 외국인 노동자인 산지와를 아들처럼 여기며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지금의 사장님.
"돈이 너무 없어서 외국에 나갈 수 없겠다 생각했는데 작은 아버지가 돈을 빌려줬어요. 그러니 정말 고마워요. 병원에서 죽으려고 할 때 한국 사람들이 도와줘서 죽지 않고 살아서 다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사장님은... 정말 고마워요. 한 번도 욕하는 소리 들어보지 않았어요. 큰소리도 안 쳐요. 2013년에는 스리랑카 우리 집을 방문해서 딸 옷도 선물해 주고 안아주고 놀아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저에게는 정말 아버지 같은 사람이에요. 저도 이런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을 도울 거예요. 그게 제 꿈이에요."한국 생활 9년 만에 산지와의 꿈이 달라졌다. 한국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열심히 벌어서 부자로 사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부자로 사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도우며 살고 싶은 꿈을 갖게 되었다.
"우리 밭에서 나는 차는 좋은 종류라서 생 찻잎 1킬로그램에 1000원을 받아요. 안 좋은 것은 1킬로그램에 75원을 받는데 거기에 비하면 좋은 값을 받는 거예요. 그래서 한 달에 55만 원에서 65만 원 정도는 벌 수 있어요. 부모님 생활비 보내고 우리 가족 사는 데는 조금 부족하지만 차 따는 사람들에게 돈을 좀 더 주고 있어요. 다른 차밭은 5천 원 정도 주는데 저는 6천 원을 줘요. 그리고 같은 사람이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요. 그래야 한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한국에 나와 일을 해보니까 계속해서 일자리가 있어야 하겠더라구요. 그러면 차밭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돈을 벌고 나도 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산지와의 꿈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커진 것이었다. 나만 잘 살겠다는 생각에서 함께 잘 살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으니 그의 달라진 생각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터뷰를 마치며 산지와는 자신과 같은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 군데 오래 있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회사를 옮기면 퇴직금이 적어요. 못 받을 수도 있어요. 월급이 적어도 한 회사에 오래 있으면 퇴직금도 받을 수 있고 일이 익숙해지면 사고도 잘 나지 않아요. 우리 친구는 다른 회사로 옮긴 지 한 달 만에 사고가 나서 두 다리를 잃었어요. 이전 공장 사장님이 너무나 욕을 하고 괴롭혀서 더 일을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나와서 일자리를 찾으려니까 일자리가 별로 없었어요. 석 달 안에 구하지 못하면 강제출국 당하니까요. 그래서 급한 마음에 쓰레기 처리 공장에 들어갔는데 사고가 났어요. 다음 달에는 스리랑카로 돌아가야 하는데 보상금 받기도 힘들었어요. 처음엔 몇백만 원 준다고 그랬는데 병원에서 만난 브로커를 통했더니 60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원래는 더 많이 받았는데 브로커에게 25%나 30%나 더 많이 줘야 한대요. 브로커에게 돈을 줘도 그만큼 받으면 다행인데 그래도 수수료가 너무 비싼 거 같아요. 한국말도 못하고 한국법도 잘 모르니까 우리한테 그러는 거 같아요. 그 친구는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지 너무 걱정돼요."산지와는 올 7월이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2000아르가 넘는 차밭의 주인이며 사장이 될 것이다. 스리랑카를 찾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관광 가이드를 해보겠다는 야무진 계획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자신의 이웃을 돕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할 꿈과 의지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꿈꾸는 코리안 드림이며 글로벌 드림이 아니고 무엇일까. 스리랑카 노동자 산지와 역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들이 꾸었던 꿈을 똑같이 꾸고 있는 것이다.
산지와,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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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온 지 9년째... 욕 안 하는 사장님은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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