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조린공원으로 원래 하얼빈공원을 항일연군 이조린을 추모하고자 이름을 바꿨다.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가 이른 아침 산책을 하며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할 거사계획을 가다듬은 곳이다.
박도
'백마 타고 오는 초인' 역사의 가정은 어리석을지언정, 만일 허형식과 같은 인물이 살아 해방정국을 주도했으면 이 나라 운명은 달랐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근거로 그분은 항일동지들이 러시아로 월경하라고 여러 차례 권유했다. 하지만 그분이 끝내 만주의 동포와 인민을 버리지 않은 것은 외세(일본)를 제거하고자 또 다른 외세(소련)의 힘을 빌리면 끝내 자주국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 젊은 나이에도 미리 알고서 끝내 자주성을 지킨 점이다. 이러한 그의 위대한 점을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연변작가 류순호도 '만주 항일 파르티잔의 제일가는 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0여 년 전까지도 흑룡강지방을 나가면 허극(허형식의 이명)에 대한 이야기들을 적지 않게 얻어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허극에 대해 회고할 수 있는 생존저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세월이 가고 있고 지난 역사도 자꾸만 멀어지고 있다. 물론 조상지의 기념관에 가면 어느 한 구석에 그의 전우, 동지로서 허극의 초상화도 함께 모셔져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최후로 동북항일연군의 제3군 군장과 제3로군 총참모장직까지 담임한 바 있는 허극의 위용에 대하여서는 어떤 사람들도 시비가 없다. 비록 그가 가담해서 싸웠던 동북항일연군이 공산계열의 중공당 조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이상은 공산주의 혁명보다 자기 조국의 독립이었고, 일본군 패망과 함께 자기의 조국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그는 떳떳하게 동북항일연군의 역사에서 빛나는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으며, 참으로 의병 후예답게 만주 항일 파르티잔의 한인들 속에 제일가는 기수로서, 별로서 빛을 뿌리고 있다. -류순호(연변작가) 작 <만주 항일 파르티잔의 제일가는 별>에서 나는 허형식이 "그의 이상은 공산주의 혁명보다 자기 조국의 독립이었고, 일본군 패망과 함께 자기의 조국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라는 이 한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점을 알게 되면서 더욱 그분을 열렬히 흠모하게 되었다. 나는 그분이 진정한 금오산이 낳은, 내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인물이요, 그리고 일찍이 이육사가 노래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이 세상에 알리는 소명으로 다시 길을 떠나고자했다.
나는 하얼빈에 사시는 서명훈·김우종 두 분 선생에게 편지로 다음 세 가지 점을 부탁했다.
첫째, 허형식 열사께서 주로 거주하였던 빈현 일대와 전사하신 경안현 청봉령을 비롯한 주요 전투지를 답사하고 싶다. 두 분께서 저와 그곳을 동행해 주시면 그지없는 영광으로 알겠으나 만일 여의치 못하면 현지 지리에 밝은 조선족 동포를 소개해 달라.
둘째, 동북항일연군에 참전하셨던 분(가능한 李敏 여사), 그 방면에 대해 잘 아시는 역사학자나 공산당원 또는 조선 역사에 조예가 깊은 분을 만나게 해 달라.
셋째, 동북에서 발간된 동북항일투쟁사나 조선족항일열사전과 같은 책을 구해 달라.
넷째, 하얼빈 시내 중급 정도로 우리말이 통하는 빈관(숙소)이나 민박집을 물색해 달라.
편지를 띄운 뒤 열흘 후 중국 하얼빈 김우종 선생 댁으로 전화했다. 이미 내 편지를 받아 읽고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하시면서 조금도 현지 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 편히 오라고 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