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친구도 취업 탈락, '2년 유예생' 난 어쩌나

졸업유예제 폐지 논란... "너 졸업해?" 한 마디에 유예생 마음은 무너진다

등록 2015.01.28 17:14수정 2015.01.2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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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유예생의 연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보다 더 많이 듣는 말이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너 졸업해?"


대학생들에게 '졸업'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단순히 4년의 대학 교육과정을 마치고 학교를 떠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졸업'은 할 수 있고, 할 수 없음(Can과 Can't)으로 나뉘며, 취업 '성공'과 '실패'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취업을 하지 못해 최소 1~2년의 졸업유예를 한 학생들에게 졸업을 할 예정인, 아니 졸업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7년 째 대학생. 명절 때마다 만나는 친척 어르신들은 왜 아직도 내가 대학생인지 이해를 못하신다. 뵐 때마다 "아직 학생이에요", "아직 졸업 안 했어요"라는 말만을 반복하는 내가 의아하실 것이다. 나는 "졸업 안 하고 미루는 게 취업하기에 좋아서 그래요"라고 살짝 덧붙여드린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의아한 표정은 쉬이 풀리지 않는다. 졸업을 미루는 것이 취업에 좋다니,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 걸.

누구네 아들은 대학교 3학년인데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더라, 누구네 딸은 교대라서 또 간호대라서 졸업만 하면 바로 취업이라더라... 실체도 없는 누구네와 누구네가 나를 짓누른다.

"그러니까 너도 얼른 취업해야지."
"예, 그래야지요..."

졸업유예, 선택 아닌 절박함에 따른 필수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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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유예 2년차. "졸업하고 여태 뭐했어요?"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 일부러 졸업을 유예했는데, 이제 돌아오는 말은 "여태 졸업 안 하고 뭐했어요?"다. ⓒ sxc


이제 갓 스무살이 되어 대학교에 입학하는 사촌동생은 기세가 등등하다. 어른들의 세뱃돈도, 덕담도 두 배다. 얘야, 나도 너 만할 때는 다 술술 풀릴 줄 알았단다. 하지만 그 아이의 철 없는 웃음마저 부럽다. 초라한 반백수인 나에게는 이 명절이 잔인하다.

대학생들이 졸업을 미루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이 졸업생보다는 재학생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기업이 재학생만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졸업 후 붕 뜬 1~3년 간의 시간동안 무언가 생산적이거나, 도전적이거나, 창의적인 일을 한 학생이 있다면, 졸업생이어도 괜찮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졸업을 미루고 재학생으로 남는 것이 낫다. 학교를 다녔다는 변명거리라도 있으니까.

4년 학교생활을 마치고 바로 취업에 성공한 이들은 복 받은 존재니 차치하고, 많은 학생들이 취업 재수 혹은 삼수를 하는 상황에서 수퍼 갑(甲)인 기업들이 재학생을 선호한다는데 졸업을 몇 년 미루고 수료생/졸업유예생으로 있는 것은 개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절박함에 따른 필수요소다.

졸업유예 2년차. "졸업하고 여태 뭐했어요?"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 일부러 졸업을 유예했는데, 이제 돌아오는 말은 "여태 졸업 안 하고 뭐했어요?"다. 취업 준비를 했다고 대답하면 내가 너무나도 형편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 우물쭈물하다가 제대로 된 대답을 못했다. 못마땅스러운 면접관님들의 표정에 그렇게 나는 발목에 묶여있는 돌덩이들과 함께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는다.

그러게요, 지난 2년 간 나는 뭘 했을까요. 취업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지금,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토익성적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는 것이었고 각 회사 입사전형에 맞는 취업 스터디를 하는 것이었다. 근데 이제 회사는 '왜 그것만 했냐'고 질책 아닌 질책을 한다.

유예생들이 걱정하는 건, 늘어나는 입학 후 햇수

가끔은 '졸업유예생'이라는 이도저도 아닌 신분에서 벗어나보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기도 한다. '석사라도 따면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하고. 그러나 그것도 생각대로 쉽게 풀리진 않는 듯했다. 친구 A는 올 2월 석사졸업을 앞두고 지원한 전공 관련 기업 최종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A는 2년 전 학사 졸업 때보다 더 똑똑해졌고 더 노력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것은 '탈락'이라는 결과였다. 나는 비슷한 입장에서 친구를 토닥여 주었다. 석사 타이틀도 취업 패스권은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또 암울해진다.

2월, 졸업이 다가온다. 잠시 고향에 내려와 쉬고 있는 나에게 "졸업해?" "졸업 신청해?" "어떡할 거야?"하며 부유하는 영혼들에게서 문자가 온다.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 내린 나도 "몰라, 어떡하지?"하며 함께 부유에 동참한다.

누군가는 졸업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하지만 모든 졸업생들이 취업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더 이상 졸업을 미룰 수 없는 상태에서 다른 선택권 없이 졸업을 하기도 한다. 같이 취업스터디를 했던 선배 B의 이야기다. 05학번으로 입학해 학교 4년, 군대 2년, 워킹홀리데이와 배낭여행 1년 그리고 취업 준비로 인한 유예 3년. 만 10년을 꽉 채우고 이젠 졸업을 하려 한다. 차마 11년 동안 학교에 적을 둘 순 없었던 모양이다.

남들은 해가 바뀌면 한해, 한해 한 살 더 먹는 나이를 걱정한다. 우리 유예생들은 한해, 한해 늘어나는 입학 후 햇수를 샌다. 입학 7년, 아니 8년차인 나. 고민을 한다. 여자 나이 스물 일곱, 한 해 더 이곳에 머물러도 될까.

며칠 전, 졸업유예제도를 폐지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취업스터디 단체톡방을 휩쓸었다. "이제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 못하는 것 아니냐, 사용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더라"하며 우린 서러워했다. 겨우 어깨를 부비고 있던 학교마저 우리를 거부하려 한다. 이제 우리는 학교에마저 거부당한다. 그 어디도 갈 곳 없는 우리를 거두어 주는 곳은 없어 보인다.

2008년에 입학해 만 7년을 학생으로 지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7년 중 4년이 '학생'이다. 그 중 1년은 어학연수를 이유로 휴학생이었고, 나머지 2년은 '수료생' 혹은 '졸업유예생'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졸업을 하려 한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를, 애매한 이유로.
#졸업유예제도 #졸업유예생 #수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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