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지금까지는 혁신학교의 수혜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와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걸 배웠거든요. 남은 2년 동안 수혜자가 아닌, 혁신학교의 주체로서 지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희훈
서형양이 지난 2012년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삼각산고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진학을 생각하기보다 고등학교 3년을 만끽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삼각산고는 개교 2년째였다. '학생들이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오토바이를 타는 날라리 학교'라는 소문이 돌았다.
혁신학교인 이곳의 학교 규율이 다른 학교에 비해 느슨해 나온 말이었다. 1학년생 서형양도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서 좋았는데, 일을 혼자 떠맡는 경우가 많았어요"라면서 "혁신학교라서 삼각산고를 선택한 학생은 전교에서 몇 명되지 않아, 고민을 나눌 친구가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서형양은 1학년을 마친 뒤 자퇴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안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2학년이 시작된 2013년 3월 학교에 자퇴서를 냈다. 교무실을 돌면서 선생님들께 감사 편지를 전했다. 한 선생님은 서형양을 붙잡았다. 하루 뒤 서형양은 학교에 낸 자퇴서를 돌려받았다.
"제가 지금까지는 혁신학교의 수혜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와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걸 배웠거든요. 남은 2년 동안 수혜자가 아닌, 혁신학교의 주체로서 지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단물만 빨아먹고 떠나려고 혁신학교에 들어온 게 아니잖아요."2학년 때 서형양과 친구들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조별 프로젝트에서 무단으로 결석하는 친구, 머리카락을 빨갛게 염색한 친구, 잠만 자는 친구, 소극적인 친구와 같은 조로 묶였다.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했다. 곧 결석을 하던 친구는 다시 등교했고, 소극적인 친구는 카메라 앞에서 오열하는 연기를 했다.
"친구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걸 깨달았어요. 조별 프로젝트에서 아무것도 안하는 학생을 '무임승차'했다고 하잖아요. 그동안 점수를 더 받으려고 친구들을 믿지 못하고 제가 일을 떠맡았죠. 저 때문에 친구들이 조별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건 아닐까, 제 행동이 친구들에게 폭력적으로 비춰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해맑은 고3'으로 불리는 아이들학생들이 수업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서형양의 눈에 들어왔다. 교무실은 학생들이 끊임없이 찾는 사랑방이 됐다. "창의적 글쓰기 시간에 공부를 잘하지 않는 친구가 상을 받은 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을 봤다"라면서 "선생님들이 많은 노력을 했다"라고 말했다.
- 2학년 때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를 다룬 보고서를 냈는데, 힘들지 않았어요?"역사 시간에 다양한 수행평가가 있었어요. 일제의 강제 징용·징병을 주제로 한 UCC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이야기도 다뤘어요. 이 과정에서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친구들과 '대숲'이라는 두레(학습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멘토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보고서를 낼 수 있었어요."
- 같은 시기 청소년문화기획단이라는 동아리 활동에서 했네요? "매달 한 번씩 강북구청 앞에서 '강북마을문화장터 탈탈탈'이 열려요. 부스를 마련해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고, 혁신학교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했어요. 우리학교 학생 10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 '삼각산고가 만일 30명의 교실이라면'이라는 보고서도 냈어요. 이를 계기로 교실을 넘어 학교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게 느껴졌어요. 이러한 내용을 묶어 문집을 냈죠."
서형양은 주말엔 대북지원단체인 '어깨동무'에서 활동했다. 전쟁기념관을 평화적으로 바라보는 콘셉트로 직접 해설사로 나섰고, 북한에 대한 청소년의 인식을 조사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고등학교 3년을 두고 서형양은 "행복했다"라고 평했다. "다른 학교 친구들은 저와 대화하면 '햇볕을 쪼이는 기분'이라고 해요, 일반고에서는 공부 부담 탓에 억눌려있는데 저는 혁신학교에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냈으니까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라고 전했다. 삼각산고 3학년 학생들은 '해맑은 고3'이라 불린다.
서형양은 혁신학교 학력 저하 논란을 두고 "잘못된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국·영·수 공부하는 것만 공부가 아닌 것 같아요, 삼각산고 3년을 두고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가 바뀌는 '터닝 포인트'라고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라면서 "이곳에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 거죠"라고 말했다. "혁신학교는 특별한 학교가 아니라, 무너진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정상 학교"라고 덧붙였다.

▲ 오는 2월 삼각산고를 졸업하는 이호연(왼쪽 사진)군은 2학년이었던 2013년 안드로이드 응용프로그램(앱) '삼각산고 영어단어 인증제 자기평가'(오른쪽 사진)를 만들었다.
이호연
오는 2월 삼각산고를 졸업하는 이호연(19)군은 연세대 컴퓨터과학과에 합격했다. 과학공학인재계열 전형에 지원해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 학생들과 겨뤄 당당하게 합격했다. 호연군의 얘기를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앱 개발 회사에서 밤을 새우며 앱을 만들고 있었던 탓이다. 26일 늦은 밤 호연군과 연락이 닿았다.
호연군은 중학교 때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개발자도구(SDK)를 배웠다. 이쪽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 특성화고에 지원하려했지만,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결국 삼각산고에 지원했다. 남녀공학이라는 이유가 컸다.
삼각산고에서 호연군은 선생님들의 지원 속에서 공부뿐만 아니라 앱 개발을 계속 할 수 있었다. 1학년 때 1인 1프로젝트에 참여해 '안드로이드 네트워크 연결'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안드로이드가 설치된 스마트폰끼리, 스마트폰과 컴퓨터 사이에 채팅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2학년 때는 격투 게임인 '버드 파이터'를 내놓았다. 안드로이드 앱 장터인 '구글 플레이'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또한 영어단어 암기 테스트 앱인 '삼각산고 영어 단어 인증제 자가 평가'도 내놨다. 많은 친구들이 이를 통해 공부했다. "성취감과 보람을 느꼈다"라면서 "이런 활동을 하면서 진로를 결정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고3 때도 '에듀 게임과 기능성 게임 시장조사 보고서'를 냈다.
호연군은 "삼각산고에서 선생님은 학생 스스로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를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선생님들은 공부에 관심 없는 친구들까지 모두 챙기려고 했고 친구들은 조금씩 변했다, 사람을 평가할 때 한 면만 봐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라면서 "이런 친구들한테도 많은 걸 배웠다"라고 덧붙였다.
호연군은 "혁신학교가 더 많아져, 많은 친구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찾아 더 좋은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김정안 삼각산고 교사 인터뷰] "첫째 보내고 울던 학부모..." 공부 못하는 혁신학교? 대입 결과 공개합니다 혁신고에 가니, 성적이 더 좋아졌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2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공유하기
복도에서 오토바이 타는 학교로 소문 났지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