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2008년 6월 10일 저녁 서울 세종로네거리, 태평로, 청계광장을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가득 채운 가운데 세종로네거리 청와대 방향이 경찰이 설치한 컨테이너 바리케이드(일명 명박산성)로 막혀 있다.
권우성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 당시 세종로사거리에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만든 '명박산성'을 두고 "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검역 주권을 포기했다"라는 비판을 받은 한미 쇠고기 협상을 두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었고 이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가 등 외교적 성과로 이어졌다'며 자화자찬했다. 또 '광우병 사태'를 노무현 정부 탓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이러한 소회는 국민 다수의 평가와 달라,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시간> 속 '내부로부터의 도전 광우병 사태' 챕터에서 취임 직후인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다뤘다.
[논란①] "명박산성은 국민 안전 위한 것"<대통령의 시간>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가 최고조로 달했던 2008년 6월 10일 직전에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에게 "시위대가 청와대에 들어오는 일이 있더라도 인명 피해가 있으면 절대 안 됩니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대처해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이 전 대통령은 "경찰이 청와대로 향하는 시위대를 막기 위해 무리하다가는 자칫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걱정에 당부한 말이었다"라고 밝혔다.
당시 경찰은 세종로사거리에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방어벽을 쳤다. '명박산성'이다. 이 전 대통령은 "'명박산성' 'MB식 소통이 이런 것이냐' 하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물리적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라면서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명박산성'은 이명박 정부의 불통을 상징한다. 이 전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기보다 명박산성을 쌓아올렸고, 미국산 쇠고기 반대 여론은 더욱 커졌다. 또한 당시 경찰은 시민들을 평화적으로 해산시키기보다는 강제적으로 진압하고 연행함으로써, 국민 비판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논란②] "노무현 대통령, 쇠고기 협상 마무리 안 짓고 퇴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전인 2008년 2월 18일 청와대에서 당선인 신분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에게 한미 쇠고기 협상을 남은 임기 중에 처리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쇠고기 협상을 조건으로 내세워 자동차 재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전 대통령은 이를 두고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 찾아갔지만 뒷맛이 씁쓸했다"라면서 "그 일을 마무리 짓지 않은 채 퇴임하겠다니, 넘겨받은 이 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가슴이 답답했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시간>은 참여정부 당시 한미 쇠고기 협상 과정을 깊게 다뤘다. 이명박 정부 들어 2008년 4월 18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을 때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이 "졸속협상을 했다"라고 비판한 것을 두고 "뼛조각 사건과 그로 인한 수차례의 한·미 정상 간 약속으로 협상 여지가 좁아진 것이 바로 그들이 집권하던 때 벌어진 일이 아니었던가"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국민 여론에 밀려 한미 쇠고기 추가 협상에 나섰다. 4월 쇠고기 협상의 실패를 인정한 셈이다.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그는 "국민이 원하지 않는 한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겠다, 미국 정부의 확고한 보장도 확실히 받아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논란③] "촛불집회는 <PD수첩> 괴담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