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흔적은 없고 한가한 풍경만 가득하여라

[한산도 사진 여행] 추운 줄도 모르고 사진 찍기 삼매경

등록 2015.01.31 20:17수정 2015.01.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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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도로 가는 파라다이스 호
한산도로 가는 파라다이스 호추연창

개찰구로 나가니 '시. 파라다이스'라는 배가 기다린다. 배에는 통영에서 한산도 제승당까지 왕복한다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 하지만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배는 제승당까지 가지 않는다. 제승당에 가려면 하선 후 1km 가량 걸어야 하다.

옛날에는 배가 제승당 바로 아래에 승객을 내려줬지만 지금은 하선 장소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이 낫다. 하선하자마자 바로 제승당에 오르는 것보다 10여분 아름다운 바닷가 길을 걸은 다음 제승당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훨씬 여행답기 때문이다.


 거북등대
거북등대추연창

배를 타고 가면서 꼭 보아야 할 눈요깃거리가 하나 있다. 한산섬에 거의 당도할 무렵 배 오른쪽에서 볼 수 있는 거북등대가 바로 그것이다. 1963년에 세워졌다. 이 등대를 보면 '아하, 여기가 한산섬 근처로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 등대를 배경으로 멋진 개인 사진 한 장을 남길 일이다. 여행을 다녀온 뒤 세월이 흘렀을 때 사진을 보고도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거북등대 같은 조형물을 사진 배경에 넣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 

 한산문
한산문추연창

하선하여 오른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조금 걸으면 입장료를 받는 곳이 나타난다. 이런 곳에서 입장료를 좀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난다. 대한민국 국민이 꼭 돈을 주고 나서야 임진왜란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승선료를 들여 이곳까지 왔더라도 더 이상 돈이 없으면 제승당에 갈 수 없다는 말인가. 기어이 가려면 바다를 헤엄쳐서 가야 한다. 그나저나 이곳에서는 외삼문 현판의 이순신 친필 '閑山門(한산문)'을 잊지 말고 감상할 일이다

 대첩문
대첩문추연창

파도 소리를 들으며 좀 더 걸어 들어가면 멀리 조선 시대 사졸 두 명이 삼지창을 들고 지키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대첩문' 앞이다. 이 문 안으로 들어서면 금세 제승당에 닿는다. 그런데 가까이 가 보니 사졸 두 명이 실제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다.


그것도 조잡스러운 인형이다. 사람 4명을 고용하여 교대로 이곳에서 보초를 서게 하면 좋겠다. 일자리도 넷 창출되고, 아이들이 초병에게 말을 걸어보는 기회도 제공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제승당
제승당추연창

드디어 제승당이다. 승리를 일궈내는 집이라는 뜻이다. 본래 이순신이 붙인 이름은 운주당이었다. 운주당은 작전을 짜는 집이라는 의미였다. 이 집은 1593년에 이순신이 처음 지었다. 그 후 이 집은 1597년 정유재란 중 불타 없어지게 된다. 인근 칠천량 전투에서 원균이 일본군에 대패하여 전사할 때 경상우수사 배설은 12척의 배를 지휘하여 간신히 한산도 본영으로 후퇴한다.


배설은 한산도에 살고 있던 백성들을 안전하게 뭍으로 대피시킨 다음, 당시 조정의 작전 지침에 의거하여 이곳에 보관되어 있던 군량미와 무기 등을 불태운다. 적의 손에 공짜로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청야 전술을 실천한 것이다. 그 이후 일본 수군이 한산도를 침탈하는데, 먹을 것도 없고 무기도 없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집 밖에 없자 끝내 불을 지른다.  

 충무사
충무사추연창

제승당 왼쪽에 이순신 사당 '충무사'가 있다. 물론 안에는 이순신의 초상이 걸려 있고, 관광객이 참배를 할 수 있도록 향 등도 준비되어 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현판의 글씨가 가로로 쓰여 있다는 것이다. '忠武祠(충무사)'다.

조금 전에 본 제승당은 '堂勝制(당승제)'였는데 말이다. 어째서 이렇게 글자의 순서가 좌우로 바뀌는지 알 수가 없다. 제승당은 조선 시대에 그렇게 현판이 달렸었기 때문이고, 충무사 사당은 가로쓰기를 한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럴 거야, 하고 되뇌이면서 혼자 궁금하게 여겨본다.

 한산정
한산정추연창

제승당 뒤로 내려가면 이순신이 장졸들에게 활쏘기 훈련을 시켰던 한산정이 나타난다. 과녁은 바다 건너편에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현재의 관광객이 직접 활을 쏘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과녁을 눈으로만 바라볼 뿐이다.

이윽고 돌아서면 제승당의 뒤태가 보인다. 한때 왜적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전쟁의 현장이지만 지금 바라보는 제승당은 어느 평화로운 시골의 양반가 종택처럼만 보인다. 게다가 1월 17일에 제승당을 찾았을 때에는 마침 수루가 건물을 재건축하고 있는 중이어서 그곳에 올라볼 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오가는 관광객들의 표정에는 평화가 넘쳐 흘렀다. 한산도가 이제서야 한가로운 섬이라는 본뜻을 되찾은 겐가.    

 해갑도
해갑도추연창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해갑도를 본다. 이순신이 한산도 대첩이 끝난 직후 갑옷을 벗고 땀을 씻었다는 조그마한 바위섬이다. 섬 모양이 게의 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통영 사람들은 이 섬을 '게딱까리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게' 이야기가 나오니 '게장' 생각이 나서 꿀꺽 침이 넘어간다. 뭍으로 돌아가면 빨리 게장에 밥도 비벼 먹고 회 한 점에 소주 한 잔도 기울여야겠다. 나는 이순신처럼 땀을 씻을 만한 일도 하지 않았고, 배설처럼 백성들을 피난시킬 일도 없다. 나는 저 해갑도만큼이나 작은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다.
#한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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