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성 친구들은 저를 ‘송아지’라 부르는데, 언제쯤 ‘소’라고 불러줄까요.
박용성
겨울을 지내며 저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센터에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여섯 명의 동생이 있는데, 그 중 세 명을 가르칠 기회가 제게 주어졌습니다. 나머지 세 명은 근로 장학생으로 오신 대학생 누나가 맡아서 평소처럼 일반 수학문제집으로 가르쳤는데, 저는 당돌하게도 스토리텔링 수학문제집으로 수업하겠다고 했습니다.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센터장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저의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중학교에 들어갈 동생들에게 저는 초등하교 5학년 수학부터 다시 하자고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수학이라고 하는 것도 초등학교 5학년 때 배운 내용에 약간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뿐이라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부터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귀찮더라도 동생들이 스스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진도를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학습을 시작한 후 한 달간은 일반문제집으로 기존 방식으로 수업하던 동생들이 진도가 더 빨랐습니다. 겉으로는 "아니다"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움츠러들었습니다. 하지만 개념을 확실히 인지하고 하루에 다섯 문제씩 스스로 해결하는 수업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한 달이 조금 지나자 일반수학을 한 동생들과 스토리텔링 수학을 한 동생들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달랐습니다. 이야기로 개념에 접근하여서인지 수용하는 데 부담이 없었고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것만 같았습니다. 더 좋았던 것은, 질문이 적어지고 스스로 풀려고 최선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걸핏하면 제게 물어오던 녀석들이 자기들끼리 머리 맞대고 이야기하다가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풀이과정이 다르지만 정답률이 높아졌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수학 공부를 하는 것 같다며 동생들이 좋아하는 모습에는 제가 더 즐거워졌습니다.
고3 진급을 앞두고 수학교사가 되겠다고 했더니 다들 저를 '철없는 아이' 정도로 취급합니다. "교사가 1000원 벌 때 의사는 5000원 번다"는 말도 그때 들었습니다. 지금 제 성적으로 의대는 충분히 갈 수 있다면서, 회심(回心)하기를 바라는 분도 계셨습니다. 제 집안 형편에서 제가 우뚝 일어나면 우리 엄마, 아빠 주름살도 크게 펴질 것이라면서요.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야채를 트럭에 싣고 식당에 배달하시는 아빠 모습을 보면, '그놈의 돈' 좀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한번 여쭤 봤습니다. 그랬더니 아빠 엄마는 의외로 담담하셨습니다. 제가 행복하면 아빠도 행복하고 엄마도 행복하니, 제 생각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수포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학 포기자'를 줄인 말입니다. 그런데 이 수포자가 '공포자(공부 포기자)'가 되고 급기야 자기 인생을,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젊은이가 자기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주변에 허다합니다. 제가 수학교사가 되어 꾸고 싶은 꿈은 수포자 없는 학교를 만드는 꿈입니다. 물론 공부 방법 좀 바꾼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생각은 않습니다. 터무니없이 많은 '교과서 내용'부터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수학 교사가 되어서, 제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은데, 제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요?
(기사 작성 : 여수고등학교 2학년 이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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