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버텨내는 힘... 내면으로부터 문장을 긷는다

[서평] 초로의 작가가 말하는 소설가의 삶 <소설가의 각오>

등록 2015.02.09 17:05수정 2015.02.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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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좋아하는 작가 한 사람쯤은 있기 마련이다. '좋아한다'는 의미는 그의 작품은 '어느 정도 믿고 볼 수 있다'라는, 작가에 대한 독자의 보이지 않는 신뢰이다. 하지만 작가가 꾸준히 좋은 작품으로 독자의 기대에 부흥하기란 쉽지 않다. 기다리던 후속 작품에 실망하고 등을 돌리는 독자들의 아우성이 심심찮게 들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작가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의 집필 기간 동안 한 권의 소설을 썼다고 해도, 읽는 사람은 고작 서너 시간이면 독파하고 만다.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말한다.


"그 서너 시간 동안, 독자에게는 기분의 변화란 없지만, 써야하는 작가는 장시간 동안 일정한 기분을 유지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결국 당초에 바라던 균형잡힌 소설이 완성되지 않기 마련이다." - 본문 305쪽 중에서

작가가 자신을 갈고 닦는 이유... 오로지 작품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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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마루야마 겐지 지음 /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펴냄 / 1999.05 / 1만원) ⓒ 문학동네

그래서 훌륭한 작가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위해 우선 자기 자신을 단련한다. 긴 시간 동안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먼저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명언에서도 지적하고 있듯, 글은 쓰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담는 법이어서 작가의 생각과 행동, 태도가 글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신뢰는 바로 작가의 사는 모습에서 싹튼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글과 사람은 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로지 쓰기 위해 마라톤을 하고, 조정래는 글 감옥에서 스스로를 유폐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소설가의 각오>의 마루야마 겐지 또한 소설은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쓰는 것임을 실천하고 보여주는 작가다. 30년 넘게 일본 산골 기슭에 칩거한 채 집필활동을 하는 그는 삭발한 모습으로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창작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소설가로 살아온 삶의 애환을 담담하게 때로는 통렬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초로(初老)의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정신세계를 구축해 가는지 오롯한 그 정수를 만날 수 있다.

마루야마 겐지는 문학계를 둘러싼 현실을 엄중히 비판한다. '문학의 죽음'은 바로 소설가들이 제대로 된 소설을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패거리를 지어 술집이니 서재니 출판사 등 지극히 한정된 장소만을 오가면서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는 소설가들이 쓴 작품에 독자들은 진저리를 치고 소설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출판사는 또 어떠한가. 많이 팔리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대중매체를 쫓아다니기에 바쁘다. 마루야마는 소설이 제 자리를 찾으면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소설가는 오직 소설로 대답한다"라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만이 가진 도구이고, 그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갈고 닦아 완전히 몸에 익히는 것이 작가의 사명이다. 영상이 판치는 시대, 사람들은 문자를 통해 이미지를 떠올려야 하는 소설을 귀찮아한다. 하지만 그 자체로 정말 뛰어나고 완벽한, 사람들이 감탄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들어낸다면 문학에도 미래는 있다." - 마루야마 겐지 인터뷰 중

감탄할 만한 문장을 내면에서 길어 올리기 위해 마루야마 겐지가 시종일관 견지(堅持)하려고 했던 태도는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문학이 존재하고, 그것을 반듯하게 성취하려는 뜻이 있다면, 다른 것은 전혀 필요치 않다." - 본문 210쪽 중에서

독자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절박함... 내면에서 길어오는 문장

그래서 그는 주목 받는 것을 경계했다. 매스컴의 유명세를 멀리하고 오직 소설로만 인정받기를 원했다. '자신을 지켜내기'위해서 최소한의 생활비로 글을 쓸 수 있도록 산골로 이주했으며 소설가로서 누릴 수 있는 권위와 혜택도 거부했다.

마루야마는 또 말한다.

"고독을 이길 힘이 없다면 문학을 목표로 할 자격이 없다." - 본문 207쪽 중에서

고독을 이길 힘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스스로가 다져낸 내면의 힘으로 세상에 맞서는 것이다. 벼랑 끝에서 버틸 대로 버티며 거기에서 튕겨 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환원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가장 위태로운 입장에서 불안정한 발밑을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몸으로 부딪치는 그 반복이 마침내 순수문학으로 태어난다고 말이다.

그 절박함이 독자에게 진정한 감동을 선사하리라. 고독을 직시하는 강인한 자세는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는 문학의 광맥을 파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노작가의 깊고 넓은 정신세계를 유영하는 기쁨을 선사한다. 일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현행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yaaawbb10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문학동네, 1999


#소설가의 각오 #미루야마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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