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극복하고 중산층을 살리자

[주장] 진보의 30년 집권플랜과 '포용적 번영'

등록 2015.02.10 17:07수정 2015.02.1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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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래 세계의 진보진영은 자신 있게 진보의 가치와 정책을 주장하지 못하고 수세적으로 대응해 왔다.

1990년대 후반 '제3의 길'과 '신중도 노선'으로 중도 진보들이 유럽을 거의 대부분 국가에서 집권했지만, 신자유주의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기업의 주주이익 극대화'와 탈규제 그리고 민영화를 진보의 정책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 케인지언 복지국가가 재정난과 관료주의로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 '복지국가의 재편(retrenchment of welfare state)'의 방식으로 신자유주의적인 방법을 수용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종말

대부분 국가들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30년을 살았다. 특히 1985년의 페레스토로이카로 동구 공산정권이 붕괴하면서 신자유주의가 국가운영의 가장 경쟁력이 있는 이념적인 틀이라는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unleashed capitalism)'가 경쟁과 효율성의 신화를 만들어 내면서 전 지구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의 변방이 아니라 세계 금융의 심장부에서 더 이상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움직이는 '생각'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 드러냈다. 절제되지 않는 탐욕 때문에 금융자본은 붕괴하였다. 그러면서 파생상품과 헤지펀드로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신기루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자본 스스로가 반성과 모색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스스로의 반성이 새로운 대안들을 내놓고 있다.

2015년 1월 15일, 미국진보센터(CAP)와 영국 공공정책조사연구소(IPPR)가 구성한 '포용적 번영위원회(Commission on Inclusive Prosperity)'는 18개월의 작업 끝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어떻게 포용적 번영이 가능하며,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모색하는 내용이다.


미국, 영국, 스웨덴, 캐나다, 호주 등 5개국 17명의 전문가들이 공동 작업을 한 결과였다.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미국 클린턴 정부의 재무 장관이었고,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와 영국 노동당 그림자 내각의 재무장관인 에드 볼스(Ed Balls)가 각각 맡았다.

자본주의 생존을 위한 방향전환


이 보고서는 2008년 위기 이후 세계의 정치와 자본 그리고 학계가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자본주의로서 '포용적 자본주의(Inclusive Capitalism)'를 다양한 컨퍼런스와 국제회의 그리고 공동의 연구 작업을 통해 모색해 온 결과였다.

포용적 자본주의는 지난 30년 동안 자본주의 전개로 발생한 심각한 혼란에 대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기업에 대한 신뢰 하락, 세계적으로 소득 불평등 증가, 자본 시장에서 증가하고 있는 단기적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고방식 그리고 자본주의 제도의 청렴성과 가치의 위기에 대한 반성에서 포용적 자본주의는 시작한다.

과거 경제학자들은 불평등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경제성장 그리고 파이의 분배보다는 파이의 크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심각하게 편향된 수입 분배구조는 장기적으로 성장 속도와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렸다.

결국, 세계 자본주의는 배제의 경제와 버려진 잠재력의 황무지로 변해가고 있다. 포용적 자본주의는 모두가 번영하는 미래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포용적 자본주의는 기업, 정부와 금융이 새로운 윤리적 성장 틀을 구축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계기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는 것이다.

포용적 자본주의는 단순히 좋은 생각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방향 전환이다. 포용적 자본주의는 깨어있는 자본주의, 도덕적 자본주의, 더 좋은 자본주의이다. 존경할 만한 노력, 전체 사회와 국민을 위해 더 좋은 작용을 하는 국민경제를 만들어서 경제의 지속성을 높이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가 필요하다. 시장이 광범위하게 소득과 생활수준을 높여야만 더 넓은 국민적 지지를 유지할 수 있다. 포용적 자본주의는 기업과 투자자가 이익 외에 사회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인식하고 시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질 때 자신들의 행동을 바꿀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러한 포용적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는 2014년 5월 런던에서 열린 '포용적 자본주의 회의(Conference on Inclusive Capitalism)'에서 이코노미스트 저널, 맥킨지 컨설팅그룹, 런던 시장, 영국은행 총재, 챨스 왕자, Rothchild 은행, 빌 클린턴, 로렌스 서머스 등 200명 이상의 세계적 정치인과 산업계의 인물들이 참석하여 진행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제3세대 자본주의 시대가 마감하고 제4세대인 '포용적 자본주의'시대가 개막했음을 사실상 선언한 것이다. 연이어 7월에는 영국에서 노동당을 중심으로 다시 '포용적 번영 회의(Inclusive Prosperity Conference)'가 개최되었다.

중산층의 복원

포용적 자본주의 회의와 포용적 번영 위원회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과 정책적 대안'은 중산층 붕괴와 이를 복원하는 것이다. 1950년대 이래로 주요 산업 국가들에서 생산성과 1인당 국민소득(GDP)는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했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스웨덴, 일본,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 7개국의 수 십년간의 GDP 성장과 중산층 소득을 비교해서 분석하고 있는데, 이들 7개국 모두 시간이 지날수록 전체 국민소득과 90%의 서민·중산층 소득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못하고 상위 10% 소득으로 쏠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나라는 미국과 영국이다. 특히 미국은 2012년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의 48.16%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위 10%가 국민소득의 거의 절반에 육박한 것은 지금과 대공황 시기 밖에 없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도 1970년대 이래 고도성장에도 불구하고 상위 10%에 쏠림현상은 주요 산업국가 중에서 미국 다음으로 심각하게 44.87%에 이르고 있다.

전후에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번영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 과실은 골고루 분배되지 못하고 상위 10%에게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오히려 중산층은 붕괴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IMF 등은 심각한 소득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포용적 자본주의'는 모두가 함께 번영하는 '포용적 번영'을 모색하고 있다.

중산층 붕괴는 세계화와 기술혁명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측면이 있다. 세계화로 경쟁이 격화되어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는 주요 산업국가의 중위수준 노동자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과학기술 혁명으로 인간이 하던오 일을 기계나 로봇이 대체하게 됨으로써 중간 수준의 일자리들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

이에 대한 정책적 대안은 '사람이 먼저다(to put people first)'라는 사람중심의 정책들이다. 사람과 교육에 투자해서 저임금 일자리와 실업을 떨어진 사람들에게 더 나은 일자리로 옮길 수 있도록 정책적 수단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적 정책과제가 되고 있다.

최저임금 향상, 중소기업 보호, 청년일자리 창출

우선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한 직접적인 수단은 최저임금의 올리는 것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7달러의 법정 시간당 최저임금을 10달러로 올리겠다는 정책제안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저시급은 5,580원이다. 미국과의 임금 격차를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최저시급이 8,000원 정도로 상향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최소한의 장치이고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조세감면, 세제 지원 등 다양한 재분배정책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30년간의 재분배 정책에 효과성에 비판적이었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 아이디어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의 보호와 육성도 중요한 산업정책으로 다시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 30년간 사실상 산업정책은 국가에 의해 포기되어 왔다. 그 정책 정당성이 이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튼튼한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지 않으면 대기업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30년 동안 '단기적 주주이익 극대화'가 자본주의 최대의 미덕으로 간주되어 왔던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기업이 이해관계자의 장기적 이익으로 경영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는 인식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롤스 로이스가 산업경쟁력을 갖는 것은 젊은 청년들을 고용해서 직업훈련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사람에 투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청년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열정페이'나 단기적 인턴 일자리들은 기업의 장기적 관점에서 대기업부터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미래를 보장한다. 기업과 국가가 모두 새로운 인식으로 청년일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해야 할 때이다.

지난 30년간 경쟁과 효율성이라는 광기의 시대가 끝이 나고 사람중심의 새로운 자본주의가 모색되고 있다. 이 시대는 사람중심의 사회, 서민과 중산층 90%을 위한 나라가 될 때 민주주의도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주목하는 시대이다. 세계 자본주의 변화 속에서 때때로 큰 충격의 물결이 우리사회에 밀려 왔다.

1980년대 중후반의 동구권의 급격한 몰락은 한반도의 정세를 바꾸어 놓았다. 1980년대의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는 신자유주의로 국가운영의 틀을 바꾸어 놓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포용적 자본주의'로 전환은 새로운 진보의 시대를 알리고 있다. 앞으로 30년은 한국에서도 진보가 장기 집권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길 기대해 본다. 세계사의 바람은 진보의 훈풍으로 바뀌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글을 쓴 임채원 박사는 서울대 국가리더십연구센터 연구원입니다.
#포용적 번영 #신자유주의 #청년 일자리 #중산층 복원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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