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빅토르 위고, 작가 조정래를 만나다

<조정래의 시선>을 읽고

등록 2015.02.15 16:49수정 2015.02.1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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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說)'이라고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낯설다. '그럴듯하지만 꾸며낸 이야기'가 소설의 정의라지만, 한자말이 의미하는 것은 '작은 이야기'가 아닌가. 죽을 때까지 살아보지 않고서도 온갖 인생을 경험할 수 있도록 여러 인생의 축소판을 그린 이야기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렇게 보면 소설을 매개로 가장 많은 인생을 우리에게 소개한 작가는 누굴까? 대하소설<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등장하는 인물이 1800여명이라고 하니, 정답은 조정래다. 또 하나의 장편소설 <정글만리>로 우리에게 우리가 모르는 중국을 소개한 작가가 자신의 철학과 <정글만리>를 집필하게 된 이유와 과정을 담은 <조정래의 시선>을 출간했다. 그의 인터뷰와 대담, 그리고 칼럼 등을 모아 엮은 책이다.


작가로서의 뚜렷한 목표의식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나는 굴욕감을 느낀다. 우리가 노벨상에 너무 주눅 들어 있지 않나 싶다. 노벨상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수상자의 90퍼센트가 백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왜 받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나? 노벨상에 연연할 게 아니라 우리 문학을 스스로 사랑하고 키우는데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p.213)

노벨상에 대한 조정래의 생각이다. 덧붙여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997년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그들이 우리나라에 물린 이자가 25퍼센트였고, 최근 그리스에게는 2퍼센트를 물렸다고 한다. 조정래는 서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들마저 서구중심주의 사고방식을 갖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일갈한다.

소극적, 방어적 민족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여기서의 민족주의란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즘과 같은 배타적, 공격적, 반인륜적인 민족주의가 아닌 국가의 존립과 독립적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민족주의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일제로부터 독립할 당시 국내외에 떨어져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김구, 여운형, 박헌영 등은 독립된 국가가 해결해야 할 두 가지 문제를 공통적으로 제기했다고 한다.

그것은 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무상몰수, 무상분배)이었다. 저자는 이제는 해결난망이 된 두 가지 문제가 두고두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치, 교육, 부동산 등의 얽히고 설킨 문제들은 이 두 가지가 처결되지 않은 후유증이다.


<정글만리>에서 바라본 경제, 정치, 통일에 관한 전망

저자는 <정글만리> 집필을 위해 1990년부터 구상하고 취재를 위해 중국 출장을 장단기로 16회 이상 다녀왔다고 한다. 우선 그는 아직도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국인들이 더럽고, 게으르고, 짝퉁이나 만드는 민족으로 각인되어 있는 점을 우려한다.

중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속철도 허셰호를 자력으로 만들고, 국제특허 출원 세계 1위에다가 전자제품 판매도 1위의 나라가 된 명실공히 G2의 나라라는 것이다. 알리바바와 샤오미 같은 기업이 곧 삼성과 애플을 압도할 수도 있을 거라는 전망 앞에서는 사실 작가의 우려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소설 속 하경만이 실존하는 인물 하덕만 사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중국의 인건비 상승과 중국의 기술력 증대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을 위협한 것이 분명하지만,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하경만 사장은 이를 예상하고 매출의 일부분을 중국을 위해 투자했고 노동자들을 존중했으며,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처해 오히려 회사의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 등의 집권기간에 열린 개성공단은 경제적 교류가 문화적 교류로 이루어지고 이는 곧 하나의 공동체로 가는 과정이었다. 개성공단은 남과 북이 윈-윈하는 사업 프로젝트였음이 확실하다. 우리 남한의 기술과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 대비 값싼 인건비 등이 중소기업의 대외 수출 능력을 높였으니 말이다.

동서 해안을 따라 개성공단과 같은 공단 10개만 조성된다면 남과 북은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기대와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남과 북의 소강상태를 틈타고 중국과 일본이 경제적 침탈을 시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 소설의 주제는 청소년 교육문제

작가 조정래는 집필이 시작되면 매일 아침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글을 쓴다. 금주는 물론, 휴대폰도 지니지 않고 쓸데없는 약속도 잡지 않는다. 아침 체조를 매일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며, 골프 같은 운동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또 그는 소설적 상상력을 위해 1인칭 소설을 비판한다. 그의 소설은 늘 3인칭이고 주인공이 한 명만 등장하지 않는다.

"저는 젊은 날 문학을 시작할 때부터 빅토르 위고와 같은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사회, 역사의식을 문학성과 가장 잘 조화롭게 형성화한 모범적인 작가였기 때문이죠. 빅토르 위고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면서,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옹호한 작가였습니다.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내세우며 독일을 무시하고, 프랑스를 향해 으스댈 때 영국의 그 오만과 자만을 꺾은 것이 독일의 괴테였고,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였습니다."

한국의 빅토르 위고, 조정래는 문학성 운운해 가며 사회성이나 역사성을 외면하고 심한 자폐증에 빠져 있는 우리 문인들에게 위고의 명언으로 경종을 울린다.

"예술은 아름답다. 그러나 진보를 위한 예술은 더욱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조정래의 시선> 저자 조정래, 발행 해냄 출판사, 제1판 1쇄 2014년 12월 15일

조정래의 시선

조정래 지음,
해냄, 2014


#조정래 #빅토르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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