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무거운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네?

[서평] 인권에 대한 가상 토의를 담아서 펴낸 책 <인권 논쟁>

등록 2015.02.20 19:34수정 2015.02.2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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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서울시민인권헌장 폐기를 결정한 서울시에 비판이 쏟아진 바 있다. 당시 서울시는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조항 관련, 보수·종교 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그러자 시장의 선거 당시 공약이었던 헌장 자체를 없던 일로 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성소수자 단체가 시청 점거농성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각계의 시민단체가 연대하면서 점차 농성규모가 커졌고,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과하면서 일단락 됐다.

지난해 4월에는 장애인 170명과 비장애인 30여명이 '장애인 이동권'의 확보를 주장하면서 고속터미널에서 탑승 시위를 하기도 했다. 고속버스 등 장거리 이동수단을 장애인이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인권'의 가치가 화두가 된 사건은 많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국내에선 이런 사건들이 발생해도 인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일이 흔치 않다는 것이다. 일련의 사건은 종종 '소동'으로 비추어지고, 잠깐의 관심을 소비한 뒤에 잊혀지는 식이다. 결국 인권에 대한 개념은 모호한 채로 남고, 빈약한 인권의 가벼움만 와 닿는 현실이다.

아이들을 위한 '인권 논의서'

 <인권 논쟁>의 표지사진.
<인권 논쟁>의 표지사진.풀빛
이기규씨가 글을 쓰고 박종호씨의 그림이 더해진 책 <인권 논쟁>은 아이들을 위한 '인권 논의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이씨는 초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인권에 대해서 차분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책의 내용은 초등학생 여섯명이 주인공으로, 각각 팀을 나누어 토론과 발표를 하면서 의견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토론이 다루는 주제는 법와 인권, 성평등, 사형제도, 외국에서 온 이주민 인권 등으로 다양하고 폭넓다.

여러 장으로 진행되는 본문은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일화로 시작된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만지다가 선생에게 압수되거나, 학교 뒷편에서 군것질을 하다가 CCTV로 적발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여자아이가 머리가 짧거나 목소리가 크다고 "남자애 같다", "동성애자냐"라며 놀림을 받는 상황도 묘사된다.


그 이후에 학생들이 직접 진행하는 토론에서는 양 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한다. "법과 인권 중 무엇이 우선시 되는가"나 "의무를 이행한 사람에게만 인권이 허용되나" 등 흔히 들어본 이야기도 읽을 수 있다. 몇 년 전에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화제가 되었던 학생인권의 개념도 책에서 거론된다.

사형제도에 대한 토론에서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잘못된 판결에 의해서 무고한 사람이 희생된 사례도 나오는데, 2014년 3월 대법원에 의해서 판결난 '진도 간첩단 사건'도 예로 등장한다. 사생활 보호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한다.


구체적이고 생활과 밀접한 사례들이 눈에 띈다

책을 읽으면 일단 '깔끔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소재와 문장, 결론까지 자연스러우면서 간결하게 정리됐다. 틈틈히 넣은 삽화도 적절하게 흥미를 돋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언급되는 사례들도 구체적이고 또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좋다.

주요 독자가 될 초등학생에게 민감한 문제인 '게임 셧다운제'도 자세히 소개되고,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도 설명한다. '노란봉투' 모금 운동을 시작으로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얘기도 들려준다. 한국 최초로 외국계 국회의원이 배출된 일로 외국인 인권을 주제로 토론하기도 하며, 군 가산점 제도를 놓고 성평등에 대한 얘기도 나눈다.

성소수자 문제, 노동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는 것도 읽을 만하다. 언뜻 '어려운 얘기 아닌가' 싶지만 아이들이 읽기에도 쉽게 설명된 글이 장점이다. 지하철의 유리창을 깨진 상태로 방치했더니 강력범죄가 늘어나더라는 '깨진 유리창 이론' 등 재미난 정보도 소개한다.

'인권'과 '노동법'이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지는 사회 분위기에, 어릴적부터 이런 주제들을 쉽게 접할 기회가 없는 한국의 교육환경이 문제로 지적된다. "노동자를 취재해오라"는 숙제를 내줬더니 "어디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나요"라고 되묻는 학생들이 많더라는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의 웃(기면서 슬)픈 발언처럼 말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인권 교육을 위해 책을 한 권 권해주는 것은 어떨까? 심각하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다양한 주제를 접할 수 있는 <인권 논쟁>이라면 적절한 교재가 될 것 같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직접 토론을 하는 내용을 읽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직접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인권 논쟁>(이기규 지음 박종호 그림/ 풀빛 / 2015. 1. 28. / 1만2000원)

인권 논쟁

이기규 지음, 박종호 그림,
풀빛, 2015


#인권 논쟁 #토론 #인권 #성소수자 #학생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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