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어머니김봉준 작. 이소선 어머니 추모 그림
김봉준
광주에서 민주시민을 무참히 살육하며 등장한 전두환 군부정권은 청계피복노조를 강제해산 시킨 후, 그것을 호도하기 위해 알량한 당근을 주었는데 그것은 산업체 부설학교였다.
청계노조 해산 직후 서울시에서는 중구 장충동에 소재한 장충여중을 산업체 부설학교로 지정하고, 동화시장, 을지상가, 연쇄상가, 통일상가 등에 있는 노동자들을 학생으로 모집했다. 그러나 이곳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야간학교인 산업체 부설학교에 들어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하지만 같은 피복제조업체라도 와이셔츠 업체 노동자들은 1일 8시간 노동을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었다.
시에서는 주로 와이셔츠업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상가주식회사에 인원을 할당하고 강압적으로 모집했다. 그 무렵 산업체 부설학교에 다녔던 고 박영숙은 그의 홈페이지 '별난 이력서'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1982년 3월 사장님의 협박으로 장충여중 산업체 특별학교에 입학. 한 공장에 한 명씩 보내는 게 의무이고 전두환 대통령의 특별배려 조치라 안 따르면 사장이 곤란했다고 함."산업체 부설학교는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이 대량의 노동력을 동원하려는 방편으로 만들어졌다. 주로 노동집약적, 경공업, 대규모 공장에 만들어졌는데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농촌 소녀들은 돈도 벌고 상급학교 진학해서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공장에 취업하였다.
청계천의 피복제조업체는 주로 영세 소규모공장에 불과하여 산업체 부설학교가 설립되기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청계노조 탄압을 호도하기 위해 시(市)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편 산업체 부설학교와는 달리 청계천 평화시장 주위에 있는 경동교회, 제일교회, 형제교회, 복음교회, 동신교회, 시온교회, 동대문성당 등에서는 70년대 중반부터 야학이 개설되었다.
당시 야학에는 중·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는 검정고시야학과 노동야학이 있었다. '노동야학'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에서 출발해 그 현실에 맞는 것들을 배우고 가르치며 마침내 스스로 각성하고 단결해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른바 의식화 교육에 중점을 둔 야학이었다.
이 무렵(1982년) 운동권에는 <야학비판>이라는 소책자가 은밀하게 돌았다. 이 책에서는 당시 학생운동이 시위만을 강조하면서 학생 대중에게도 고립되고, 운동역량의 고립을 초래했으며 독재정권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즉 학생운동만으로 한국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노동현장에서 노동대중을 의식화 조직화하는 작업을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 야학의 측면에서 보면 검정고시야학의 보수성을 비판하고, 진보야학으로 노동자대중의 정치교육사상을 통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매개하는 것이 야학의 임무라고 하였다.
70년대 청계피복노조 조합원 교육과 조직은 주로 노동교실을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이와 더불어 청계천 주변의 노동야학을 통해서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경동교회 야학생들의 '동화모임'과 복음교회 시온교회 야학생들의 '평화모임'은 노조의 중요한 힘이 되었다.
청계노조가 강제해산 당하고, 아프리 농성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속, 수배, 부상당해 조직이 풍비박산되었을 때, 그 공백기를 채우고 청계노조의 명맥을 이어간 주요 인자들은 '노동야학'에서 배출된 노동자들이었다. 이들 조합원들은 경찰과 사용자의 눈을 피해 흩어진 동료들을 모으고 학습하기 시작했다.
청계모임, 평화시장 주위 노동야학생들 중심 아프리 농성 때 참가했다가 훈방으로 풀려 나온 조합원, 동화모임, 평화모임의 조합원 등을 대상으로 신광용, 서재덕, 김선주가 중심이 되어 '청계모임'을 조직했다. 이 모임은 평화시장 주위의 노동야학생들을 묶어나가기 시작했다.
형제교회의 김영선, 김종숙, 김경선, 제일교회의 이승숙, 이경숙, 정경숙, 김용숙, 장옥자 시온교회의 지수희, 이은숙, 초원교회의 이안숙, 강화옥 등이 청계모임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소모임을 조직해서 자취방이나 교회의 방에서 노동법 등의 학습을 통해서 조직 확대와 의식을 강화해 나갔다.
이들은 비록 조직의 명칭을 내걸고 공개적으로 활동할 수는 없지만, 청계모임은 청계피복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81년 10월에는 매년 가을에 노조에서 실시하던 '지부장컵 쟁탈 등산대회'를 이어받아 '제 10회 청계피복 노동자 등산대회'를 개최하고, 11월 13일에는 전태일 동지 11주기 추도식에 조직적으로 참가하였다. 또 3월 10일의 '노동절' 행사를 인근 교회에서 치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회원이나 회원 주위의 노동자들이 사용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경우, 청계모임이 조직적으로 관여해서 해결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했을 경우 집단으로 항의하여 임금을 받아내기도 하고, 사용자로부터 폭행, 폭언을 당할 경우 집단으로 몰려가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이들은 당국의 감시를 피해 가면서 장시간 노동, 재정적 어려움 등을 감내하면서도 어떻게든지 청계피복노조운동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와 함께 은밀하게 군부독재정권의 청계노조 해산명령의 불법 부당함과 청계노조 재건의 당위성과 의지를 알리는 '청계피복노동조합을 탈환하자', '단결된 힘으로 청계피복노조를 원상복구하자' 라는 등의 유인물도 지속적으로 배포되었다. 이 유인물은 우편으로 발송되기도 하고, 각종 집회나 행사 때 살포되기도 했다. 아울러 청계노조 10년의 역사를 정리한 '청계노조 10년사 자료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 모든 활동들은 이후 청계노조를 재건, 복구하는 데 밀알이 되었다.
한편 민주화를 열망하는 민주화 양심 세력은 80년 광주의 상처를 딛고 끊임없이 투쟁을 전개해왔다. 1982년 3월에는 광주학살의 책임을 묻기 위한 부산 미문화원 사건이 발생했고, 83년 5월에는 김영삼씨 무기한 단식농성이 있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 결성되었다.
청계피복노조도 아프리농성으로 구속되었던 사람들이 1982년부터 출소하기 시작해 그해 12월 24일 황만호, 전태삼의 석방을 마지막으로 모두 출소했다.
청계모임은 구속자가 청계모임에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활기를 띄기 시작했고, 민종덕도 83년 5월경 수배 문제가 해결되어 청계모임에 공개적으로 합류하였다.
청계모임은 지금까지의 비공개 소모임 활동에서 벗어나 보다 과감하고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기 위해 회원들을 다양하게 조직하기 위한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우선 흩어진 옛날 조합원들을 찾아내고 청계천 주위 야학들을 찾아다니면서 조직을 강화하였다.
특히 교회의 노동야학 중에서 활동 중심을 교회에 국한시키려고 하는 야학생과 교사를 설득시켜 현장중심으로 이끌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때 현장 중심보다는 야학 중심으로 끌어안고 있고자 하는 야학 교사들과 많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청계모임은 자체 행사로도 100여 명까지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83년 10월 9일 제 12회 청계피복노동자 등산대회를 도봉산에서 개최하였는데 이때 약 150여 명의 노동자가 참가하였다.
이때를 전후해서 청계모임 내부에서 공공연한 대중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아직은 시기상조이기 때문에 비공개 활동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심도 있는 토론이 벌어졌다. 그 결과 현재가 청계모임의 역량과 조직의 성격 그리고 정세 등을 감안할 때 공공연한 대중 활동을 전개해나갈 적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1983년 11월 13일 전태일 13주기 추도식을 앞두고 청계모임이 중심이 되어 "전태일 동지 13주기 추도위원회"를 띄웠다. 추도위원장은 민종덕이 하기로 했다.
이소선을 찾아온 민종덕이 그 간의 활동을 설명하고 이번 추도식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소선은 너무도 반갑고 대견했다. 마치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오는 것 같았다. 그동안 생계문제와 상실감 때문에 여러모로 힘들었던 이소선은 새로운 힘이 솟았다.
군부독재는 노동조합을 해산시키고 노조 간부, 주요 조합원들을 구속, 수배 등으로 파괴했으니 청계천 노동운동은 끝났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노조가 강제해산 된 지 채 3년이 되기도 전인 전태일 13주기 추도식을 앞두고 '전태일 동지 13주기 추도위원회'가 공공연한 활동을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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