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대회에 참가한 아가씨들과 인터뷰 자리
강은경
"어쩌나... 긴장 풀어요. 아, 그래요! 역할을 바꿔보죠. 쥬디가 나를 인터뷰하는 거예요. 내게 궁금한 거, 뭐든 물어봐요!"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 시선을 내리깔고 있더니,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국 여자들은 정말 성형 수술 많이 해요? 성형 수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뭐라 대답해야 하나. '외모지상주의, 미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미에 대한 인간의 욕망, 서구화된 미의 기준, 여성의 상품화...' 같은 주제로 논쟁할 자리도 아니고.
"네, 내 조카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쌍꺼풀 수술을 했더라고요. 솔직히 내 눈에는 별로 예뻐 보이지 않았어요. 뭐랄까, 눈코입 조화롭던 균형이 깨져 보인다고나 할까요. 나요? 성형수술 안 했어요. 돈도 없고, 으~ 무서워서 못해요. 아니, 난 화장도 안하는 사람인데요. 뭐든 자연스러운 게 더 예쁘잖아요? 내 눈에는 수술한 얼굴이나, 화장한 얼굴보다 민낯이 더 예뻐 보이거든요." 오십 평생 넘게 살면서 화장을 다섯 번이나 했을까. 지금이야 '민낯'이라는 단어를 예사로 쓰지만, 내가 젊었을 땐 '예의가 없다, 게으르다, 예쁘다고 잘난 척하냐...' 별별 비난을 다 들었는데. 화장을 안 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러고 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지, 내가 사는 사회가 이상한 건지 살면서 헷갈릴 때가 참 많았다.
마침내 11명의 아가씨들의 인터뷰가 다 끝났다. 두 시간 쯤 걸렸다. 명랑하게 말을 잘 하는 아가씨도 있었고, 영어가 서툴러 마이클이 통역을 해준 아가씨도 있었다. 너무 떨어 정말 안쓰러워 보이는 아가씨도 있었다. 대부분 수줍음이 많아 보였다. 팔라완의 주도인 푸에르토 프린세사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아가씨는 당차고 자신만만해 보였다. 도시물을 먹은 티가 났다.
"어떤 아가씨가 훌륭했나요?"인터뷰를 잘한 아가씨 한 명을 뽑아야 한다며 마이클이 내게 물었다. 곤란한 질문이었다. 젊고 건강한 아가씨들이 나는 다 예뻐 보이는데... 얼굴도 말도. 나로서는 우열을 가린다는 게 탐탁지 않았다. 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아 우물거리다가 꽁무니를 뺐다.
"다 예쁘고 다... 아, 모르겠어요!" 마이클이 뽑은 아가씨는 샤롤이라는 아가씨였다. 생글생글 웃으며 모델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던. 샤롤은 환호성을 지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나머지 아가씨들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 곧바로 아가씨들은 나랑 두 번째 테스트를 받기 위해 바랑가이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마이클, 나를 이 자리에 데리고 온 젊은 남자 필립, 그리고 아리얼이 아가씨들과 나를 인솔했다. 아리얼은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트린 덩치 큰 바끌라(게이)였다. 필리핀의 모든 미인 대회에서는 바끌라의 역할이 크단다. 참가자들의 장기 자랑, 안무, 화장, 의상 등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단다. 미적 감각과 창의력이 뛰어나 그럴까. 콧방울 옆에 큰 점이 있는 필립은, 필리핀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사라고 했다.
우리가 박물관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미인들에게 쏠렸다. 아시아 나라 중에서 '미스 인터내셔널', '미스 월드' 같은 국제 미인 대회에서 입상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필리핀이란다. 또한 국내 미인 대회가 가장 많은 나라. 미인 대회를 주체하는 곳은 학교, 회사, 호텔, 바랑가이, 시, 주, 등 다양하다고.
필리핀 여자의 최고 무기는 명문 대학의 졸업장이 아니라 '미모'라니. 미인 대회 입상 경력이 구직부터 사회활동을 할 때, 일종의 '스펙'으로 활용된다. 수천 켤레 호화 '구두광'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이멜다 마르코스(필리핀 제10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부인)도 미인 대회 출신이었다.
박물관으로 가는 동안, 긴장이 풀린 아가씨들이 내게 이것저것 물어왔다. 나이, 직업, 가족, 등 나의 신상에 대해, 그리고 팔라완 배낭 여행에 대해. 작은 마을이라 박물관에 금방 도착했다.
쿠요논 부족 살림살이 모인 소박한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