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관 세대' 띄우는 <조선>이 교묘하게 감춘 것은?

[미디어비평] '논리 뒤집기'에 이은 보수언론의 무기 '가려서 보여주기'

등록 2015.03.04 17:40수정 2015.03.0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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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가 지난달 청년담론으로 내세운 '달관 세대가 사는 법' 기사. '덜 일하고 여유를 찾는' 젊은 세대를 그려내고 있다.
<조선일보>가 지난달 청년담론으로 내세운 '달관 세대가 사는 법' 기사. '덜 일하고 여유를 찾는' 젊은 세대를 그려내고 있다.조선닷컴 화면캡처

지난달 23일부터 25일까지 <조선일보>(아래 <조선>)는 저소득으로 삶을 꾸리는 청년들을 조명하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젊은 남녀에게 '달관 세대'라고 이름 붙이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보는 내용이었다. '달관 세대가 사는 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총 세 편의 연재로 이어진다.

'덜 벌어도 덜 일하니까 행복하다는 그들... 불황이 낳은 '달관 세대''라는 기사의 제목이나 '월100만 원 벌어도 괜찮아'라는 소제목만 봐도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지 확실히 드러난다.

<조선>은 과열된 스펙 경쟁과 과다한 업무로 지친 20대 청년 네 명을 인터뷰했다. 각각 학원 계약직 강사로 연봉 2500만 원, 파트타임 논술 첨삭으로 52만 원, 주말에 쉬는 콜센터 알바로 월 120만 원, 재택 디자인 알바로 월 80만 원을 버는 이들이었다. "바쁘고 팍팍한 직장생활에 치이면서 살아가느니, 여유 있는 삶을 위해서 비정규직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88만원 세대'와 일본의 '사토리 세대'를 거론한 <조선>은 정규직의 꿈을 버린 청년들을 '달관 세대'라고 불렀고, 연재 기사들은 하나같이 적당히 체념하는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을 묘사한다.

기사를 종합하면, 이번 기획은 언뜻 한국의 2030 세대를 중립적으로 다룬 모양새로 보인다. 지금까지 기성세대가 추구한 가치관과 다른 사고방식을 소개하는 선에서 머무르는 듯하다. 이런 생활방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담았지만, 전체적으로 강하게 비판하지도, 심하게 냉소적이지도 않다.

<조선>의 '달관 세대' 담론이 감춘 것

 <조선일보>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사진. 뉴스를 영상화하면서 '달관 세대'를 표현했다. 기사 본문에서 인용된 '경제 전문가들의 비관적 의견'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일보>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사진. 뉴스를 영상화하면서 '달관 세대'를 표현했다. 기사 본문에서 인용된 '경제 전문가들의 비관적 의견'은 보이지 않는다.조선일보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23일자 <조선닷컴> 기사 '전국민 태극기 달기 운동? 달관 세대에게 물어보라'를 보자.


기사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 현상이 우리나라에 상륙했다"면서, "'우리는 더 힘들게 살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패기가 없다'고 타박하는 것은 부분의 사실일지언정 우리 경제의 구조적 모순은 외면하는 말입니다"라고 썼다. 특히 '달관 세대의 출현'을 "국가동력이 녹슬고 있는 신호"라고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정부기관이 '태극기 달기 운동'으로 애국심을 자극하거나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다그치는 것에 대한 지적으로 보인다.

SNS에 올라온 글은 비슷하면서도 청년층의 시각에 더욱 알맞게 편집됐다. 다음날인 24일, <조선>의 페이스북에는 여러장의 사진으로 구성된 카드 뉴스가 올라왔다. 세 컷으로 요약해서 '달관 세대'를 소개하고, "기성세대가 '아이들 패기가 없다'고 타박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조선닷컴> '사내칼럼'에 실린 글 '"행복하다"는 달관 세대, 그들을 보는 불편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마치 청년의 아픔에 적극 공감하며, 나아가서 사회의 문제점을 조명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실상은 다르다. <조선>의 이런 글이 모두 인터넷에만 전송됐다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앞서 소개한 기사는 <조선닷컴>에만 올렸으며, 신문 지면에는 조금도 할애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의 카드 뉴스는 '달관 세대'가 "경제 성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던 전문가의 경고성 발언을 모두 생략한 상태다. 온라인 매체와 소셜 서비스의 주요 이용층, 종이신문을 읽는 독자가 각각 어느 세대에 속하는지 떠오르는 대목이다.

'달관 세대' 담론이 감춘 것은 이뿐만 아니라 세밀한 사회적 요소들도 있다. 기사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에 비해서 '달관 세대'가 소수라는 점 역시 언급하지 않는다. <조선>은 고수익의 편한 직장을 찾아서 만족하는 청년이 한국에 흔한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IMF 이후 최고로 치솟은 청년실업률 수치, 혹은 매년 최저임금 인상 폭이 제자리걸음인 현실은 보여주지 않는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올 침체'를 우려하면서도, 정작 직종의 다양성과 아르바이트의 임금이 높은 일본에 비해 좁은 한국 청년들의 선택지를 쉽게 생략한다.

보수언론이 청년층을 포장한 이유

 <조선닷컴>에 연재 중인 웹툰 <조이라이드> 중 일부. 청년 세대가 풍요를 누리면서도 불평을 늘어놓는 집단인 것처럼 묘사했다.
<조선닷컴>에 연재 중인 웹툰 <조이라이드> 중 일부. 청년 세대가 풍요를 누리면서도 불평을 늘어놓는 집단인 것처럼 묘사했다.조선닷컴 누리집 캡처

그렇다면 보수언론이 청년층을 두고 '체념'하는 세대로 포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정치계와 언론을 막론하고 '복지 철회'를 주장하는 보수진영의 태도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기세다. 어쩌면 '달관 세대'도 '복지 무용론'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 주장의 연장선에 놓은 프레임일지도 모른다.

노골적인 묘사와 일반화를 구사하는 역할은 기사 바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닷컴>에 연재 중인 웹툰 <조이라이드>는 정부에 대한 대부분 비판을 '사치스러운 불만'으로 그려냈다. 특히, 청년 담론에 있어서는 '풍요를 누리면서도 불평을 늘어놓는 집단'으로 묘사한다. 해당 웹툰 내용은 보수지지층을 만족시키기에 적절할지 모르나 그 의도는 다분히 '물타기' 전략으로 보인다. 이는 <조선>의 '달관 세대' 담론과도 묘한 지점에서 맞닿는다.

저소득에 만족하고 비정규직이 되기를 '스스로' 선택한다면 굳이 그들을 국가가 나서서 도울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청년의 일자리 문제를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너희는 왜 불평하느냐'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리 뒤집던 <조선>, 이번엔 '가려서 보여주기'인가

<조선일보>는 종종 교묘하게 논리를 뒤집는 모습을 보였다. 사안에 따라 유불리를 따지며 보수진영에는 관대하고, 야권에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기도 했다(관련기사 : 이완구는 책임 없고, 박원순은 책임 있다?).

'논리 뒤집기'와 더불어 보수언론이 휘두르는 또 하나의 무기는 '가려서 보여주기'다. 청년층이 왜 미래를 비관하고 현실에 안주하는지, 세대담론을 주장하기에 앞서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은 피해간다. 이는 보수진영이 예산 부족을 근거로 '복지망국론'을 외치면서도, MB정권의 '4대강 사업'과 '자원 외교'로 수십조 원의 세금이 낭비된 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과도 흡사하다.

욕심과 의욕을 잃은 일본 '사토리 세대'의 한국판이 '달관 세대'라면, 청년들을 좌절하게 만든 요인이 무엇인지 짚어야 마땅한 일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젊은이들이 풍요로움과 사치에 물들어 노력을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차라리 어떤 '벽'을 실감한 것에 가까울 것이다. 사회경제적 통계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오늘날 과열된 스펙 경쟁에도 청년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고, 높은 등록금으로 인해 빚은 쌓여간다. 어렵사리 취직에 성공해도 비정규직 비율은 늘어만 가고, 고용 안정성은 '정리해고 완화'를 외치는 정부 정책에 무너지는 게 현실이다.

<조선일보>가 진심으로 청년 세대의 오늘을, 한국 경제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달관 세대' 담론 이후의 생각이 뒤따라야 마땅하다. '3포 세대'의 씁쓸한 현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삶의 방식'이 더 이상 불가능하기에 불가피한 '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청년들은 덜 벌어도 현실에 만족한다'는 말 뿐이라면 '달관 세대'는 기성세대의 무능력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들이 희망을 포기하기 전에, 사회가 먼저 젊은 세대를 버리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대 성격의 추상적인 규정이 아니라 더욱 절실한 것은 삶을 위한 현실적 대안이다.
#조선일보 #달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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