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네 번 배달되는 상자... 열어 보면 '깜짝'

[현장] 언니네텃밭 '봉강꾸러미' 만드는 상주 봉강공동체

등록 2015.03.07 15:50수정 2015.03.0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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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공동체 언니네 텃밭 작업장 다정한 느낌의 봉강공동체 목조 건물에 붙어 있는 언니네 텃밭 간판 ⓒ 이종락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나이 든 어르신들만 남아 있는 시골. 농사지어서 돈 벌 엄두도 내지 못하던 마을에 새로운 희망이 싹튼 지 어느덧 6년. 지금은 손주 용돈 주기엔 부족함 없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들을 더욱 신나게 하는 건 젊은이들과의 어울림이다. 봄이 문턱까지 다가 온 최근, 경북 상주시 외서면 봉강마을 '언니네 텃밭'을 찾았다.


강원도 횡성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상주 봉강공동체는 2009년 7월 그야말로 맨바닥에서 맨손으로 시작했다. 전국여성농민회의 '식량주권 지키기 토종종자사업'의 일환으로 소농중심의 다품종 생산, 안전한 먹을거리 제공 등의 취지로 시작한 언니네텃밭은 이제 시골의 한마을을 살리는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성장했다.

지금이야 작업장 건물에 기본 시설도 갖추고 있지만 천막을 치고 작업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봉강공동체 언니네텃밭의 성공은 전 대표와 사무장이었던 황재순씨와 김정열씨가 구성원들과 6년 동안 땀을 흘리며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봉강공동체에 매주 화요일은 도시의 소비자 회원들에게 한 주 동안 정성껏 준비한 농산물을 보내는 날이다. 아침부터 대표를 비롯한 사무장, 총무의 발걸음이 부산해지고 생산농가들은 준비한 농산물을 작업장으로 가지고 온다.

두부, 달걀, 콩나물, 시금치, 찹쌀, 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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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테이핑 작업 도시회원들에게 보내질 상자 테이핑 작업에 생산농가들의 손놀림이 바빠지고 있다. ⓒ 이종락


3월 첫 주 화요일은 정월 대보름이 끼어있어 보내는 품목이 더욱 풍성했다. 상자 속에 들어가는 농산물이 궁금해 하나 하나 살펴보니 두부, 달걀, 콩나물, 시금치, 찹쌀, 팥, 양대, 묵나물, 피마자, 다래순, 머위, 땅콩 등 10여 가지가 넘었다.


6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언니네텃밭의 월 회비 10만 원은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한 달에 4번 매주 2만5000원어치 농산물을 회원들에게 보내는데, 금액에 비해 매우 풍성하다. 이곳에서 회원들에게 보내는 것들은 모두 친환경 농산물이란 걸 생각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전 11시가 되자 언니네 텃밭 생산자들의 손놀림이 정신없을 정도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솜씨로 상자 테이핑 작업을 마치고 꾸러미마다 담긴 품목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소비자가 받을 상자 속에 가득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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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는 언니네 텃밭 엄덕견 할머니 나이 든 얼굴 뭣하러 찍냐며 거부하시던 할머니가 웃어달라는 부탁에 환히 웃는 모습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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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3년 후에도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박화순 할머니 ⓒ 이종락


조용히 전체를 총괄하면서 택배작업에 집중하는 대표와 세부적인 사항을 일일이 점검하고 살피는 사무장, 총무와 생산농가의 협동으로 이른 봄날 작업장의 열기는 한창 달아올랐다. 최근 택배의 안정성을 위해 일반 업체에서 우체국 택배로 전환한 뒤로는 배송시간을 오후 2시까지 맞춰야 해서 점심식사도 작업 후로 미루어야 할 형편이다.

'언니네텃밭'이란 이름이 풍기는 느낌으론, 모두 여성 중심으로 이뤄질 것 같은데... 작업 장에선 유독 눈에 띄는 남성이 한 명이 일을 거들고 있었다. 올해 마흔다섯 살인 이윤구씨는 대한민국 언니네텃밭에서 유일한 남성 준회원이다.

며칠 전 인도, 태국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이윤구씨는 귀농 5년차로 소규모의 무농약 배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경제적 필요성 외에도 공동체의 취지에 공감하여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운전이나 무거운 짐 운반, 온갖 허드렛일 등을 도와주면서 공동체 안 청일점으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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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점 이윤구씨 상주 봉강뿐 아니라 대한민국 언니네 텃밭에서 유일한 청일점 이윤구씨가 계란 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 이종락


170여 가구에 농산물 공급, 16농가가 생산 담당

현재 170여 가구에 전달되는 농산물들은 모두 무농약과 유기농이며 외서면 봉강리, 이천리에 살고 있는 16농가가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무농약 배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산과 밭작물이라 할머니들의 일손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훗날 할머니들의 노동력이 끊긴 뒤 이어서 생산을 해줄 사람들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

언니네텃밭을 시작한 후 마을 주민들의 생각은 어떻게 변했을까? 무엇보다 자급자족에만 쓰였던 할머니들의 밭작물이 도시 소비자들과의 교류 속에서 상품으로 바뀌면서 소득창출로 이어졌고, 이는 곧 귀농자들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도 한몫했다.

도농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1년에 2번씩 도시 소비자들이 봉강공동체를 찾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이곳에 장 담그기, 산나물 캐기, 여름철 물놀이 등의 체험을 한다. "한적했던 시골마을에 생기가 돌아 원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하는 엄덕견(69), 박화순(73) 할머니의 표정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올해 총회를 거치면서 사무장으로서 상주 봉강 공동체를 6년간 꾸려온 김정열씨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 사무총장으로 옮겨간 뒤 새로운 임원진들이 꾸려졌다. 여느 생산자처럼 조용하게 택배작업에 바쁜 석춘화 대표와 새로이 사무장을 맡은 김옥순씨, 고유정 총무가 향후 2년간 봉강공동체를 이끌어갈 손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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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새로 언니네텃밭을 이끌고 갈 석춘화 대표와 김옥순 사무장, 고유정 총무(오른쪽부터) ⓒ 이종락


풍년이 들어도 시름하는 농민들... 언니네텃밭이 훈풍되길

신임 석춘화 대표는 "지금까지 전임 활동가들이 잘 다져놓은 기반 위에서 더 좋은 농산물을 통해 기존 회원관리에 더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귀농 15년차인 김옥순 사무장과 고유정 총무 역시 "바람 부는 맨땅에서 초창기 임원들이 일궈놓은 봉강공동체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전 임원진에서도 총무 일을 맡았던 고유정씨는 "도시의 소비자들이 감사의 편지를 보내줄 때가 가장 힘이 난다"며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일부 소비자들의 반응에 힘들 때가 많았다, 소비자 교육에 더욱 힘을 썼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공판장이나 대형 도매상을 통해 대부분의 농산물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현실은 농부들의 시름을 더 깊게 만든다. 자신의 밭에 풍년이 든다고 해도, 농부 입장에선 가격 폭락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게 요즘 농촌의 현실이다. 특히 복잡한 유통구조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힘들게 만든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유지해 생산자에겐 안정된 소득을 올리게 해주고, 소비자에겐 적정한 가격의 물건을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친환경 농산물 생산에 앞장서고 있는 언니네텃밭이 노후화된 농촌에 훈풍이 되어 전국 곳곳에 확산되기를 바라면서 봉강공동체 작업장을 나섰다.
#상주 #봉강꾸러미 #언니네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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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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