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짜리 졸업식... 남학생도 웁니다

규슈조선학교에서 본 '진짜 졸업식' 풍경

등록 2015.03.04 20:51수정 2015.03.0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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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오른쪽)이 재학생인 후배들(왼쪽)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심규상


한국 대부분 학교의 졸업식은 1시간 남짓이다. 일본 규슈조선중고급학교(후쿠오카현 북규슈시) 고급부 졸업식 시간은? 무려 4시간이다. 지난 1일 오전 9시 30분 시작한 졸업식은 오후 1시 30분 쯤 마무리됐다.

지루할 것 같다고? 아니다. 흥미진진한 공연을 본 느낌이다. 졸업식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함께 졸업식을 지켜본 한 지인은 "대하드라마를 본 것 같다"며 "매우 감동스러웠다"고 말했다(관련기사 :  이 학교 졸업식이 유독 애달픈 이유는?).

고급부 졸업식(57회) 공식 식순은 교장선생님 인사말, 졸업증 수여, 상장수여, 내빈소개, 송사, 답사, 폐회 선언 등이다. 한국의 졸업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비슷한 식순의 졸업식인데 시간과 느낌 차이가 큰 이유는 뭘까?

[풍경 1] 졸업생 한 명 한 명이 모두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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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조선중고급학교 졸업식. 졸업식이 끝난 후 재학생들이 퇴장하는 졸업생들에게 색종이를 뿌리며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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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을 따라 졸업생 20 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한명씩 입장했다. 재학생과 학부모들이 모두 일어서 박수로 맞이했다. ⓒ 심규상


한국 졸업식과 두드러진 차이는 졸업생을 대하는 태도다. 학교 측은 졸업생 한 사람 한사람이 이날 행사의 주인공임을 분명히 보여줬다.

먼저 개회가 선언되자 미리 준비해 놓은 꽃길을 따라 졸업생이 한 명씩 20 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입장했다. 재학생과 학부모들이 모두 일어서 박수로 맞이했다.

교장의 축사도 남달랐다. 전진성 교장은 연단에 올라 "지난 1월 재일조선학생 작문대회 심사 결과 우리 학교가 '우리말을 잘 배우고 늘 쓰는 모범학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게 됐다"며 "노고가 많았다"고 치하했다.


이어 졸업생 한 명 한 명에 대해 학창 생활을 되돌아 보며 칭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전 교장은 김아무개 학생을 거명한 후 "우리말을 배우고 쓰는 서예활동에 앞장섰고, 기숙사 생활이 모범적이었으며 학급 동무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학생이었다"고 평했다. 이처럼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깨알 같은 학창 생활 이력을 펼쳐 보였다. 졸업생 30명의 학창 생활을 이야기하는 데만 30분 가까운 시간을 할애했다.

졸업 증서 수여에도 마음이 느껴졌다. 졸업생들이 한 명씩 단상에 오를 때마다 졸업증서 내용을 소개했다. 이어 교장은 증서를 건넨 뒤 모든 졸업생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졸업식이 끝나자 졸업생들은 들어섰던 중앙 꽃길을 따라 한 명씩 식장을 행진해 퇴장했다. 재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색종이를 뿌리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빛나는 졸업장'의 가치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풍경 2] 상장도 학부모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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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조선중고급학교 (후쿠오카현 북규슈시) 57회 졸업식 ⓒ 심규상


졸업식의 또 다른 주인공은 학부모였다. 졸업증 수여에 이어 가진 개근상 수상식 시간. 해당 학생 이름과 함께 해당 학부모 이름이 함께 호명됐다. 두 사람이 나란히 연단에 섰다. 교장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를 다닌 데에는 학부모들의 노고가 컸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또 "정치정세가 복잡하고 경제가 어려운 때에 귀한 자녀를 보내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개근상 또한 한 명씩 연단에 올라 시상했다. 이날 초급부부터 고급부까지 12년 개근상은 6명의 학생이, 고급부 3년 개근상은 10명이 수여했다.
 
졸업생들도 졸업의 영광을 하나같이 부모에게 돌렸다. 졸업생들은 각각 준비해 온 꽃송이를 부모에게 건네며 포옹했다.

[풍경 3]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주고받은 선물

이날 재학생들은 졸업생에게 작은 졸업선물을 건넸다. 재학생들이 직접 만든 정성이 깃든 기념품이다. 졸업생들은 재학생들을 위해 선물을 남겼다. 프린터기, 기록용 컴퓨터 하드디스크, 빔 프로젝트, 난로 등이다.

한 졸업생은 "학교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꼭 필요한 게 뭘까를 고민하다 준비했다"며 "후배들이 보람 있는 학창시절이 되도록 요긴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풍경 4] 마지막 공연에 강당 안은 '눈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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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들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르다 울먹이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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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들의 공연 ⓒ 심규상


공식 졸업식이 끝난 뒤 졸업생들이 준비한 깜짝 공연이 뒤이었다.

졸업생 중 13명의 학생이 농악을 선보였다. 다른 학생들은 각각 조를 나눠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공연은 졸업생 전원이 합창한 '57기의 노래'다. 졸업생들이 만든 곡에 직접 붙인 노랫말에는 학창시절의 애환이 담겨 있다.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있고 목소리는 젖어 있다. 지켜보던 재학생들도 선배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연호하며 울먹였다. 졸업생도, 재학생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도 쉼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1956년 4월 문을 연 이 학교에서는 이날 30명이 졸업해 모두 4261명이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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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나 졸업생 ⓒ 심규상

박지나 학생은 3년 전 규슈조선중고급학교(이하 우리학교)  고급부 입학식에서 인사말을 한 바 있다.

그는 당시 "후쿠오카에 있는 현립 고교(일본 학교)에 합격했지만 우리 민족학교의 좋은 점을 알고 긍지로 여기고 있다"며 "많은 고민 끝에 스스로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었다.  우리 학교와 우리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 대한 차별을 겪으며 고급부 진학에 앞서 숱한 갈등과 고민을 했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인 지난 1일 우리학교 고급부 졸업증서를 받은 그는 활짝 웃었다.

그는 "우리 학교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내 인생의 첫 걸음을 시작한 곳"이라며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도쿄에 있는 미술 계통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며 "게임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초급부에서 고급부까지 12년 동안 우리 학교를 다녔다.
 
- 우리 학교를  졸업하는 소감은?
"우리학교를 선택하길 너무 잘 했고 학교 생활도 너무 좋았다. 우리학교를 초등부 부터 12년을 다녔다. 조선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좋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내 인생의 첫 걸음을 시작한 곳이다.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 학창 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지난 해 5월과 6월 조국을 방문한 일이다. 일본에 태어나 일본에서 살아왔는데 찾아가니 일본사람이 아닌 조선사람으로 따뜻하게 맞아줬다."

- 가장 어려웠던 점은?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우리학교가 제외된 일이다. 우리 학교만 무상교육 혜택을 받지 못해 많은 돈을 들여 학교를 다녀야 했다. 부모님과 가족 모두가 부담이 커 힘들 수밖에 없었다."

- 향후 진로는?
"도쿄에 있는 미술 계통 대학에 진학한다. 이후 게임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은?
"이제까지 제 걱정을 들어 주고 12년 간 정말 좋았다."

- 한국에 있는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본에서 많이 배우겠다. 내가 만든 게임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인과 한국인, 조선인이 사이 좋게 지내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 규슈조선중고급학교 #졸업식 #우리학교 #후쿠오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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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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