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화 대법관 후보자가 2012년 7월 1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과 부동산특혜 의혹에 관한 야당의원들의 공세를 들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그는 이후 자진 사퇴, 헌정사상 처음으로 중도에 낙마한 대법관 후보자가 됐다.
남소연
지금은 3년 전과 조금 다르다. 대법원은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을 정하기 위해 2014년 12월 8일 대법관후보자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대법관후보자추천위가 대법원이 1차 검증한 명단을 토대로 3배수 후보자를 뽑은 것은 지난 1월 14일이었다. 일주일 뒤,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 가운데 박상옥 후보자를 최종 낙점,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의 임명을 제청했다. 이 과정에서 박 후보자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수사 경력은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대법원 스스로 발목을 잡은 셈이다. 김병화 전 지검장 낙마 때와 똑같다. 당시 참여연대는 "이번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대법원에 있다"며 "대법관 후보 추천방법과 절차를 손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3년 동안 대법원은 달라지지 않았다. 3일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이번 사태 역시 그 책임이 대법원에 있다고 비판했다.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박상옥 후보자의 경우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수사 검사였다는 중요한 문제가 있음에도 제청됐다"며 "(제청) 절차에 큰 결함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원이 대법관후보추천위원들에게 박종철 사건 관련 자료를 주지 않았든, 추천위원들이 이 사실을 알면서도 박 후보자를 추천했든 간에 법원 단계에 상당한 잘못이 있는 것"이라며 "이 모든 원인은 대법원의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규칙'에 있다"고 말했다.
이 규칙의 핵심은 '철저한 비공개'다. 대법원은 2011년 해당 규칙을 만들며 대법관후보추천위 회의 절차와 내용 등은 모두 공개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대법원 규칙 바로가기). 개인이나 법인, 단체 등이 대법관 제청대상자를 천거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 내용 역시 외부에 공개하면 안 된다고 정했다. 만약 A씨가 B씨를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했다고 일부러 알리면, B씨는 자동으로 대법관후보추천위 심사대상에서 제외된다.
임 교수는 "내가 누구를 추천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대법관 구성에)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개인이나 단체가 '나는 이 사람이 이런 면에서 대법관으로 바람직하다'고, 대법관후보추천위는 그 기준을 두고 어떻게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제청권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대법원장의 직접 추천을 허용, 자연스레 추천위원들이 특정 후보를 의식하게 만드는 조항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투명한 절차'만큼 '누가 뽑느냐'도 중요하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로스쿨교수는 "추천위 구성을 보면 대법원장의 의지로부터 독립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대법관후보추천위는 선임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법무부장관, 대한변호사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로스쿨협의회 이사장, 대법관 아닌 법관, 학식과 덕망이 있고 경험이 풍부한 비법조인 3명 등으로 꾸려진다. 이 10명은 모두 대법원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하는 인물들이다.
내용면에서도 추천위원들의 구성은 아쉽다. 일단 당연직 위원들의 구성은 철저히 법조계 중심이다. 시민사회 몫 위원들의 경우 이번에는 김종인 가천대 석좌교수,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회장, 조대현 KBS 사장이었다. 한 교수는 "(현재로선 대법관후보추천위가) 충분히 시민사회를 대변하기 어렵다"며 "국회나 시민사회의 추천을 받는 방식 등으로 대법관후보추천위를 좀 더 민주화하고, 개방해야 한다"고 했다.
졸속·밀실 대법관 후보 검증, 이제는 끝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