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굴뚝 위의 예수들 만나러 가요

314 쌍용차 굴뚝농성 연대의 날, 함께 해요

등록 2015.03.05 21:15수정 2015.03.06 13:27
0
원고료로 응원
a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70m 굴뚝 위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 ⓒ 유성호


지금 기독교는 사순절을 지나고 있다. 사순절은 예수의 가르침과 고난을 기억하며, 자신의 삶과 이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절기이다. '영광의 주님'이라는 주류 기독교의 해석과는 달리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 이야기의 대부분은 강한 이들에 대한 저항, 그리고 이로 인한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애를 암시하기라도 하듯,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마태오복음에는 왕의 살해 위협에 온 가족이 이집트로 정치적 망명을 해야 했고, 결국 유사 시기 탄생했던 아이들은 공권력에 의해 집단 학살을 당하는 모습이 적혀있으니 말이다. 아름다운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목가적 분위기 가득한 은총의 밤 따위는 애시 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전하는 또 다른 성서인 루가복음은 더욱 극적인 모습을 전하고 있다. 한밤중 들판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복음'을 전하는 상황… 여기에 등장하는 '복음'이라는 단어의 그리스어는 당시 로마 황제에게 발생한 경사에 한해 사용하던 정치적 언어였다.

황제의 대를 이을 아들이 탄생했거나, 원정 전쟁에서 승리했을 경우, 사자(使者)들은 '복음이요! 황제께 좋은 일이 생겼소! 복음이요!'하고 외쳤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세상을 구할 자가 태어나셨다'는 루가복음의 '복음'은 불경하기 이를 데 없다. 황제도 아닌 이가 세상을 구한다니, 더군다나 그가 태어났다는 것이 '복음'이라니!

권력자의 입장에서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렇게 태어난 이를 식별할 수 있는 증거가 황궁이라거나 뼈대 있는 가문이 아니라, 짐승의 밥통인 구유에 헝겊을 두르고 누워있는 이, 게다가 힘없는 아기라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황제가 아닌 존재의 탄생, 그리고 그 탄생이 바로 복음이라는 루가복음의 이야기는 그렇게 처음부터 삐딱했던 것이다.    

힘센 자들의 복음, 우리들의 복음

나아지지 않는 경제 사정으로 다들 어려운 가운데, 그래도 연말 특유의 술렁임이 있던 지난해 12월, 두 명의 노동자가 자신들의 공장 굴뚝에 올랐다. 쌍용자동차의 김정욱, 이창근씨다. 경영악화를 이유로 2009년 사측에 의해 강행된 부당해고로 인해 3000명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렸다. 이후 '그저 일하던 곳에서 다시 일하게 해달라'고 외치던 이들은 언론과 공권력에 의해 '빨갱이', '사회 불온세력'이 되어 상상할 수 없는 폭력과 억압에 시달려야 했다.


그 결과 26명의 노동자, 가족들이 한스럽게 눈을 감아야만 했다. 이 힘겨운 과정을 지나며 쌍차 노동자들은 두 번 높은 곳에 올랐고, 지금 세 번째 고공시위가 한 겨울 내내 공장 굴뚝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루가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 탄생의 장소, 구유가 놓여있는 마구간이나 외양간은 모두 어떤 이들의 일터이지, 일반적으로 사람이 기거하는 곳은 아니다. 바로 그와 같은 곳에 위치한 사람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처음 증인이 들판에서 일하는 이, 즉 노동자였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

공장은 노동자들의 일터이고, 그 곳에 있는 굴뚝은 절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바로 그와 같은 곳에 두 명의 노동자가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서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본과 권력이 그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듯한 세상이 끝장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메시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너무나 안타깝게 전해지고 있는 '복음'일 것이다.

저 힘센 자들의 복음은 영원한 지배와 소유이겠으나 우리들의 복음은 마침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터에서 당당하게 일하는 때가 온다는 선언일 것이며, 이를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외침일 것이다. 그렇게 굴뚝 위의 사람은 노동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복음이 되어 우리의 의지와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

돌아오는 3월 14일은 평택 쌍용자동차 굴뚝에 오른 두 해고노동자의 농성이 92일차를 맞이하는 날이다. 이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전원복직을 염원하는 이들이 모두 함께 모여, 7년 만에 열린 노사 간 협상의 의미 있는 성과를 염원하고, 무척 높은 곳에서 다른 누구보다 간절히 봄의 소식을 기다리고 계실 두 분을 만나려 한다.

그 날엔 이창근 동지의 페이스북과 굴뚝에서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훌쩍거리기만 했던 나도 모처럼 평택으로 가보려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과 함께, 또 서울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달려온 시민들, 벗들과 더불어 힘껏 정리해고 철폐를 외쳐보려 한다.

아울러 마침내 7년간의 싸움을 마치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전원이 일터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그래서 굴뚝에서 겨울을 보내신 이들이 우리와 약속한 것처럼 '살아서' 땅을 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지금은 그렇게 낮은 이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노동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셨던 예수의 생애를 기억하는 사순의 절기이다.

a

314 희망행동의 날 웹자보 ⓒ 314 희망행동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고상균님은 향린교회 부목사입니다.
#쌍용차 #굴뚝농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3. 3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4. 4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