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촌놈 5명이 파주에 모인 까닭

겁없이 출판시장에 뛰어든 대구촌놈의 좌충우돌 첫책 출간기(4)

등록 2015.03.07 13:33수정 2015.03.0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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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북이 나오려면 앞으로 3~4일은 더 걸려야 한다는 인쇄소 김 부장님의 말은 우리에게 아련한 두통의 아지랑이를 피어오르게 했다. 샘플북이 나와야 서점 공급 계약을 맺을 때 책을 드리고 엠디(MD)의 추천과 초도물량을 정할 때 필수이기 때문이었다. 가방에 들어있는 타이레놀을 급히 찾았다.


지난 11월부터 한 해를 넘긴 2월까지 우리의 평균 수면시간은 4시간을 채 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첫 책을 600쪽이 넘는 형태로 발간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꺼운 책은 잘 안 팔린다고 사람들이 만류했다. 나는 안 팔린다는 그 고정관념에 도전했다. 잘 만든 책은 잘 팔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가치있는 책을 기획하고 출간해야 한다는 배수진을 쳤다. 퀭한 김 디자이너의 눈빛은 얼은 동태가 알코올에 절여진 느낌이랄까, 차마 마주보고 대화하기가 그래서 먼 산을 바라보며 말한다.

"대구팀에 전화하세요. 파주에 캠프를 차리고 4박 5일동안 일을 진행하고 가야겠습니다."
"대표님, 지금 대구에 서점 공급 관련 광고매대 자리도 잡아야 하고, 경북대, 영남대, 대구대, 계명대 책 출간 이벤트를 위해서 각 대학교 입학처에 제안서를 넣고 있는 중인데 팀원들을 파주로 다 소집하면 본진이 위험한데유?"

시뻘건 눈빛으로 쏘아붙이는 김 디자이너의 째지는 목소리가 고막을 때려댄다. 뚱한 표정이 완전 썩은 미소를 날려대고 있다.

"김 디자이너. 우리 첫 책은 단순히 첫 책이 아닌 모두의 페스티벌이 돼야 합니다. 대구에 있는 영주, 승범, 성호 팀장님은 이 파주의 출판도시를 보지 못해서 출판시장이 얼마나 큰 경쟁시장이며 레드오션인지 느낄 기회가 없어요.


지금 이 시간 불이 켜져 있는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출판사의 유리창속에 보이는 출판인들의 밤 낮 없는 노동양을 보셔요.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것, 우리 팀원들도 다 파주로 불러서 파주에서 샘플북이 나오는 대로 서점 공급 업무를 한 번에 모두 보고 파주와 서울에서 볼일을 다 끝내고 돌아가십시다. 대구의 왠만한 업무는 이곳 파주에 와서도 다 전화와 인터넷으로 될테니까요."

여러 가지 걱정할 것이 많은 얼굴이다. 김 디자이너는 고맙게도 다음 말을 잇지 않고 대구에 남아있는 팀원들 세 명을 모두 파주로 불렀다. 오후 5시에 출발한 팀원들은 2월의 추운 겨울날 파주에 오후 11시가 가까워서야 도착했다.


첫 작품이다... 사활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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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마케팅을 위한 북트레일러 동영상 촬영중인 워드스미스 출판사 팀 사진속의 워드출판사 김디자이너, 김승범팀장과 강성호팀장이 서점 서지정보에 함께 입력될 북트레일러 동영상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 추현호


대구는 산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라 제법 따뜻하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아주 더운 대구의 기후는 요즘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구는 따시다. 살을 에는 찬 바람에 먼 길을 달려와준 팀원들을 보니 가슴이 울컥한다.

우리는 출판단지 안의 한 게스트 하우스에 두 개의 방을 빌렸다. 먼길을 달려와 노곤한 팀원들에게 푹 주무시라 말하고 나는 로비로 내려왔다.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리더는 항상 미래를 앞서 살아야 하되 현재를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께 배웠다. 아버지는 평생을 사업을 하며 살아오셨지만 아들인 내가 안정된 직장을 가지지 않고 어느 때 보다 불확실한 시대에 불황이라고 모두가 걱정하는 출판 시장에 뛰어든 것을 매우 염려하셨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번 책을 더더욱 성공적으로 출간하고 유통시키고 싶었다. 출판사에게 첫 책은 사활이 걸린 작품이 되어야 한다. 

출판업은 하나의 책을 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 다음 제품을 내려면 이전의 제품에서 투입한 자본과 시간에 대한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이 필요했다. 회사의 신제품은 성공확률이 10퍼센트 미만이라고 한다.

높지 않은 성공 확률을 가진 신제품 성공가능성에 대해서 회사는 고민이 많다. 회사가 유지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10퍼센트의 작은 확률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방법은 10개의 제품을 빠른 속도로 제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통상 신제품의 성공 확률이 10퍼센트라면 10개의 제품을 낸다면 그 중 하나는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원리를 곰곰히 로비에서 생각해봤다. 그저 10개만 낸다고 과연 그 중에 저절로 1개의 베스트셀러 제품이 나올 수 있을까?

"대표님, 왜 안주무시고 내려와 계세요?"

워드스미스 편집자이자 대외홍보를 담당하고 계신 영주 팀장이었다. 한 손 가득 대학교 관계자 미팅 및 이벤트 기획안과 광고 스케줄을 인쇄한 종이뭉치를 들고 내려온 것을 보니 아마 로비에서 일을 하시려나 보다. 영주 팀장은 국내 최연소 데일카네기트레이너로 활동을 하시다가 회사에 들어와 함께한 지 이제 1년 차를 맞게 됐다. 약 4년 전 대구의 커피숍에서 우연히 만나 꿈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연이 닿아 가끔 연락을 주고 받던 과정에 기회가 닿아 워드스미스 편집인으로 들어오게 됐다.

"피곤하실텐데, 주무시지요? 왜 내려오셨어요? 로비가 난방이 잘 되지 않아 추운데요?"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잠이 안오는 것이 아니라, 곧 우리의 첫 책이 출간된다고 하니 설레어서 잠이 오질 않아서요. 파주에 오니 또 새로운 기운이 나요."

대구에서 인쇄 계약을 맺지 않고 사실 파주로 인쇄 계약을 맺은 것은 파주가 단순히 종이 인쇄 공급가격이 저렴해서가 아니었다. 남문시장에서 중심지를 이뤘던 대구의 인쇄 메카가 성서출판단지로 넘어가면서 성서 지역에 새로운 인쇄중심지가 만들어졌다. 거기에서 우리가 제작하려는 하드커버형태의 620쪽 분량의 단행본 견적을 열 군데가량 비교했던 터라 나는 대구가 결코 파주와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교통비와 수고스러운 시간을 생각하면 대구에서 인쇄를 하는 것이 유리한 점도 있었다.

나는 파주를 우리가 출판사를 세우면서 반드시 익숙하게 만들어야 할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했다. 대구라는 지역에서 전국을 넘나드는 콘텐츠를 만들고 국경을 넘을 내용을 만들 수는 있지만 경쟁사를 전혀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도 안 됐다.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출판사의 건물들과 파주 출판단지의 모습을 함께 출판업이라는 모두가 익숙치 않은 전쟁터에서 함께 전우로 뛰어든 팀원들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예감은 적중했다. 파주로 온 팀원들의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가 도는 듯했다.

10분 즘 지났을까? 약속이나 한 듯이 팀원들이 로비로 내려온다. 모두들 저마다의 일 뭉치를 들고 말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팀원들은 모두 자신이 맡은 제작, 유통, 물류, 기획, 홍보, 마케팅 파트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첫 책이 전국의 서점에 공급될 시간이 다가왔다. 그들은 전쟁터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쇄 감리를 거치고 나면 본격적인 책 제작이 인쇄소에서 진행이 된다. 인쇄, 제작 실무자가 인쇄 사고가 나지 않게 관리·감독을 하고 그 동안 출판사의 업무는 대단히 바빠진다. 이제부터는 마케팅 전쟁이기 때문이다.

기억난다... 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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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서 머무는 4일 중 마케팅전쟁에 대비하다. 낮에는 물류단지와 인쇄소 일을 보고 밤과 새벽에는 조용한 숙소 로비를 찾아 지속적으로 마케팅계획을 보완중이다. 작업장의 모습. 마감보다 더 무서운 출간이 다가오는 어느 하루. ⓒ 추현호


2003년, 대구의 복현동의 경북대학교 캠퍼스 경영대학 4합동 강의실. 봄날의 나른한 한 강의실에서 교수님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강의를 하신다.

"마케팅에서는 이 4P를 알아야 된다잉. 이 4피가 머냐 하면 말이쥐, Product(제품), Place(서비스장소), Price(가격), Promotion(촉진) 인기라. 이거 4개를 기본으로 하고 거다가 3C 카는걸(하는걸이라는 대구사투리) 분석해야되는데 그 3C가 먼지 아는 학생 손들어봐라.야! 거 꾸벅꾸벅 조는 아, 니가 함 말해보래이."

나는 그때 춘곤증에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검도부활동으로 기장직을 맡은 터에 날마다 이어지는 운동과 음주가무에 교실에서는 정신을 차리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강의실 책상에 몇 번이나 침을 드리우고 있었다.

"3C요? 교수님? 3M은 알아도 3C는 모르겠는데요."

강의실을 가득 메운 아이들은 표복절도를 하고 교수님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 이름을 물으신다.

"니 이름이 뭐꼬?"

쪽은 쪽대로 다 팔리게 생겼구만. 품위를 지켜라. 추현호!

"03학번 경영학부 추현호입니다. 점심을 주체없이 먹었더니 위장으로 피가몰려 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예습도 꼬박 해오겠습니다. 너그러이 3C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시오, 교수님!"

기어가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남자라면 어떤 순간에도 앞으로 쓰러질 지언정 뒤로 쓰러지진 말아야지.

12년 전 무의식에 배운 그 이론이 지금 이 시점에 절묘하게 필요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그 3C란 것은 Customers(고객), Competitors(경쟁사) 그리고 Company(자사)였다. 나는 로비에서 그 마케팅 이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복잡한 현실에서 배우고 익힌 바를 토대로 행동전략을 짜나가야 했다.

우리 책을 살만한 고객층의 세부 욕구를 정확히 다시 파악하고 해당분야의 경쟁도서목록을 다시 살피며 그들과 다른 우리 제품의 차별성을 꼼꼼히 노트에 기록했다. 이 키워드들로 마케팅 전쟁에서 총알로 쓸 생각이었다. 첫 번째는 세계일주, 두 번째는 꿈, 세 번째는 영어, 네 번째는 학습의 비결이었다. 모두 타겟마켓인 20~30대가 가장 관심있는 부분들이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2014년에 낸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신간 종수는 4만 7589부이며 총 책 발행부수가 9416만5930부라고 한다. 이 시장에서 One of Them(그들 중 하나)가 아닌 Only One(특별한 하나)를 꿈꾸며 여기까지 왔다. 걱정 반, 두려움 반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의 강도는 더욱 나를 압박해왔다. 야, 토니(필자의 미국식 이름)야, 너 설마 지금 간 쫄고 있냐? 하지만 저 가슴 깊은 곳에서 또 다른 오기가 올라왔다.

'웃기지 마라. 나는 쫄면이 아냐. 쫄긴 왜 쫄아. 부딪힌다.'

4일 후. 드디어 샘플북이 손에 놓여졌다. 이제 진짜 영업이 시작되려 한다.
#출판사창업 #홍보 #판촉 #마케팅 #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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