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털 품은 홍게... 한국에서나 가능한 일

[주장] 기업들의 해양 투기 여전... 2016년 종료시점 조금이라도 앞당겨야

등록 2015.03.12 19:25수정 2015.03.1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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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폐수버려 만든 상품 공개 광화문에 모인 환경단체가 기업들의 주력 상품을 꺼내놓고 해양투기 행위를 규탄하고 있다. ⓒ 환경보건시민센터


지난 10일 정오, 서울 광화문에 난데없는 참치 통조림과 요거트, 생삼겹살이 등장했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와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작년과 올해 바다에 산업폐수를 버린 기업들을 규탄하며 주력 상품을 꺼내놓은 것이다. 두 곳 환경단체는 "5월 31일 이후에도 해양투기를 계속하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며 경고했다.

이 캠페인은 이들 환경단체가 앞서 2월 24일기자회견을 갖고 2014-2015 해양투기실태 조사보고서를 발표한 데 따른 후속 행동이다. 이들은 해양수산부로부터 건네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해 바다에 폐수를 버렸고, 올해 폐수를 버릴 기업들의 명단도 공개했다.

펄프와 종이를 만드는 무림피앤피가 작년 배출량에 이어 올해 신청량까지 2관왕을 달성(?)한 가운데, 해양투기 중단을 약속했던 서울우유, 하림, 올품 등의 해양투기도 여전했다. 쌍용은 오히려 배출량을 가장 큰 폭으로 늘렸고, 수산물 가공식품으로 유명한 사조그룹은 네 개에 달하는 공장을 해양투기에 가담 시켰다. 풀무원 계열사 한 곳도 이름을 올려, 친환경 기업 이미지는 '자칭'이라는 조롱을 면할 수 없게 됐다.

해양투기 기업이 부르는 '희망사항'

앞 다투어 폐수를 버려도 좋을 만큼 바다는 넓지 않다. 물리적 공간만을 상상하는 우리 일반인들의 오해와는 달리 과학자들은 자연적으로 생산성이 있는 바다는 전체의 1할이 채 안될 것으로 본다.

대부분의 수중생물들은 온기와 빛, 또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는 유기물이 풍부한 얕은 물에 살기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산호초는 바다 면적의 1% 이하를 차지하고 있지만, 25% 정도의 해양어류가 그런 '노른자위' 바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식이다. 바다의 '유효 건강'에 관한 이러한 경고음은, 과거에는 마찬가지로 바다에 폐기물을 버려오던 세계 각국이 1975년부터 자발적으로 런던에서 만나 협약을 맺고 해양투기 근절을 약속하는 96 의정서를 채택하게 된 밑바탕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바다에 폐기물을 내던지는 선택이 별도의 설비 투자가 필요한 육상 처리보다 경제적이라고 볼 수만도 없다.


경제학 분야의 세계 석학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엔트로피>를 출간하며 고전경제이론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누군가 유용한 에너지를 사용해 질서를 갖추고 편리를 누리거나 이익을 얻으면 어느 때, 어느 곳의 누군가는 반드시 그보다 더 큰 혼돈과 불편, 손해를 겪어야 한다. "우주의 엔트로피, 즉 무질서는 증가"한다는 물리학에서의 열역학 2법칙을 사회경제학에 적용한 것이다. 그는 '엔트로피 청구서'라는 재미난 표현을 사용해, 작은 시공간의 엔트로피 이득을 추구한 우리 기업들의 해양투기가 더 넓은 범주에서는 잠재적으로 훨씬 커다란 엔트로피 부채로 돌아온다고 경고한다.

우리 바다는 기업들이 버려 온 각종 화학물질, 중금속, 석유화합물들로 더럽혀졌다. 이제 저마다 죽음으로부터의 안전을 '지불'해야만 하는 엔트로피 부채는, 인류를 포함해 바다를 터전으로 삼는 모든 생명의 몫이다. 그러나 기업 입장으로서도 명단 공개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하락이라는 부메랑이 만만치 않다. 잠재적 피해가 얼마나 될지 돈으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외부비용'인 셈이다.

해양투기 기업들이 붙잡아야 할 마지막 동아줄은 법의 테두리다. 정부에서 해양투기를 법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안 됐지만, 그러한 최후변론마저 별 설득력이 없다. 한솔, 사조그룹, 하림, 쌍용 같은 대기업보다 훨씬 규모가 작고 영세한데도 육상처리시설이나 관련 기술을 확보해 해양투기를 먼저 중단한 다른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웃프게 하는 해양투기 러닝메이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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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해양투기량 추이 매년 증가하던 해양투기량이 절정에 다다른 2005년 이후에야 감소세로 돌아섰다. ⓒ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사실 한국 정부는 바다 오염에 앞장서 온 기업들의 중요한 해양투기 러닝메이트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서야 부랴부랴 바다에 버려지는 폐기물의 규모를 집계하기 시작했다.

알려진 것처럼 이후 한국의 것으로 종종 대변되는 국내 기업의 경제적 팽창은 가팔랐고, 해양투기량의 증가도 꼭 그랬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그러는 동안 1992년 미국, 94년 중국, 99년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이 진작부터 해양투기를 스스로 중단했다. 가깝게는 2007년 일본이 해양투기를 중단하면서 한국은 폐기물을 합법적으로 바다에 버리는 세계 유일의 OECD 국가로 남게 됐다.

이런 나라가 런던협약 당사국 총회의 부의장국에 연임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2005년 바다에 버려진 폐기물이 1천만 톤에 이르고, 홍게에서 나온 돼지털이 방송을 타서야 정부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 1천만 톤이 100만 톤씩 줄어 올해로 꼭 10년째다. 이명박 정권이던 2012년 말에는 2014년 이후 해양투기가 전면 금지되도록 관련법이 개정되며 기대를 자아냈다. 오래 갈 수 없는 기대였다. 이내 박근혜 정부가 해양환경관리법 시행규칙의 예외조항을 근거로 들어 육상처리기술이 없는 기업의 해양투기 종료를 2년 유예했다.

이러한 사실이 보도되자, 해양수산부는 즉각 "(해양투기 종료가 미뤄진 것이) 2012년 법 개정에 반영된 것이지 박근혜 정부와는 무관"하다는 취지의 해명자료를 내며 감싸기에 나섰다. 그러나 현 정부가 부활시킨 해수부의 '폐수 및 폐수오니 해양배출 한시적 인정기준'을 들여다보면, '육상처리 곤란'을 표명한 527개 업체의 심기를 행정부처가 대변하고 있는 자화상이 또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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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투기선창 풍경 해양투기선 출항이 종료된 인천항 투기선창(왼쪽)과 해양투기가 계속되고 있는 포항항 선창(오른쪽). ⓒ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그간 해양 배출이 허용된 폐기물의 양이나 종류는 점차 줄었다. 하지만 바다 생태계에 미칠 영향이 무엇보다 치명적일 게 뻔한 산업폐수와 오니부터 금지 시켰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정부가 그만큼 기업들의 편익만은 지켜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를 끝으로 해양투기는 만 26년 만에 그 종료를 눈앞에 두게 됐다. 그러나 "반대운동 해왔지만 지난 10년의 시간을 줄이기는커녕, 법적 예외조항을 악용한 2년의 연장을 막지도 못했다"고 말하는 윤준하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위원장의 웃음이 씁쓸했다.

맹자의 가르침

중국 송나라의 대부 대영지라는 사람이 맹자를 만났다. 조세제도 개혁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그는 관세와 시장세 징수를 조금 낮추는 정도로만 했다가 내년을 기다려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냐고 맹자에게 물었다. 맹자의 대답이다.

"지금 날마다 이웃집 닭을 훔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것은 올바른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그러면 훔치는 것을 줄여서 한 달에 한 마리씩 훔치다가 내년을 기다려서 그만하겠다'고 대답했다. 만일에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빨리 그만둘 것이지 어찌 내년까지 기다리는가?"

인용된 고사처럼, 두 환경단체들은 해양투기가 종료되는 시점을 몇 개월만이라도 앞당기자고 제안했다. 산업폐기물의 해양투기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면 진작 그만뒀어야 했다는 입장이다. 그밖에도 이들은 보고서와 성명서를 통해 기업과 정부에 ▲ 투기해역을 보호해역으로 지정해 생태계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 ▲ 국민과 후손 앞에 사죄하고 ▲ <대한민국 해양투기 백서>를 발간할 것 등을 요구했다. 오는 5월 31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정한 바다의 날이다. 오래 참아준 바다에게 우리가 그 정도는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전병조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활동가입니다.
#해양투기 #바다 #폐수 #바다위원회 #환경보건시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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