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구 한 주택가에 위치한 우리집. 분홍빛 아젤리아가 활짝 핀 지난 해 봄 사진이다.
오마이뉴스 장재완
결혼 후 13년을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지 벌써 1년하고도 5개월이 지났다.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돌아보니 상당히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나는 지금 '단독'으로 사는 게 하니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공동' 주택이라고 하는 아파트를 떠나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해 보니, '독립'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아파트를 '단독' 주택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는 첫날부터 내게는 이웃이 생겼다. 내가 살고 있는 골목에는 15채의 집이 있다. 그 중 12집이 골목을 사이로 대문을 마주하며 살고 있다. 우리 동네는 담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사실 유명무실한 대문도 잠그는 집이 없다. 옆집은 물론 이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다 알고 지내며 인사도 잘 하고 산다. 그야말로 '마을'인 셈이다.
단독주택에 산 지 1년 5개월, 가장 큰 변화는... 골목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이웃'의 참 의미를 깨닫는 요즘이다. 어릴 적 시골마을에서 살면서 느꼈던 '이웃'의 정을 새록새록 다시 느끼며 살고 있다.
이사를 온 며칠 후 나는 버려야 할 책과 박스 등을 낑낑 대고 날라야 했다. 이사하기 전 정리를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버려야 할 것들은 많았다. 특히, 읽지도 않고 장식품으로 전락한 수많은 책들을 버려야 했다. 또 취재 과정에서 쌓아놓았던 많은 자료들도 버려야 했고, 이삿짐을 담았던 많은 양의 박스도 버려야 했다.
동네 사람들이 재활용을 버리는 골목 어귀까지 겨우겨우 다 날랐을 즈음, 동네 한 할머니가 나타났다.
"아유~ 뭘 이렇게 다 버려쌋는대유? 흐미~ 많기도 해라.""아, 안녕하세요? 대추나무집으로 이사 온 한이 아빠예요. 이삿짐을 정리하니까 버릴 게 많아서요...""이런 거 여기다 버리는 게 아닌디... 쯧쯧.""예? 정말요?"나는 깜짝 놀랐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요일을 착각했거나 장소를 잘못 찾았는가 생각했다. 이사 오자마자 아무데나 쓰레기 버리는 못 된 이웃으로 '낙인' 찍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런데 그 다음 이어지는 할머니의 말씀.
"이런 거는 막 버리는 게 아녀~ 젊은 사람이라 헤프구먼... 이게 다 돈인디."그러시고는 박스 하나를 질질 끌면서 당신 집으로 가시는 게 아닌가? 그렇다. 할머니는 박스 등 종이를 모았다가 고물상에 팔고 계셨다. 가만히 관찰해 보니 그 할머니가 박스를 줍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시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집에서 나오는 종이나 골목에 버리려고 내놓은 종이·박스는 자신의 집 창고에 모았다가 파는 그런 할머니였던 것이다.
나는 다시 내가 버린 박스를 할머니 집으로 날라야 했다. 그것도 그 할머니 집은 우리 집보다 더 멀리 있다. 나는 책이 들어 있어서 무거운 박스를 할머니집 창고에 쌓았고, "다음에 이런 거 있음 여기로 갖다놔유~"라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처음부터 이 집으로 날랐다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쓰레기 한 번 버리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