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생활' 보장없는 단독주택

[도전! 장기자의 단독주택 살아보기③] 핵심은 '함께 살기'

등록 2015.03.17 14:06수정 2015.04.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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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장기자의 단독주택 살아보기' 연재를 시작하고 두 번의 기사를 썼다. 나의 게으름도 있지만, 그리 들려줄 만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없어 1년을 넘겼다. 지난 기사가 나간 이후 상당히 많은 분들이 '단독주택 살기는 어때?' 하며 물어 오셨다. 그러다 최근 모대학 교수님이 1년 전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해 다시 한 번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그만큼 단독주택 살이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아파트 전세비 마련이 어려워 은행빚을 각오하더라도 내 집에서 살아보자는 용기로 시작한 '단독주택 살아보기'. 같은 처지, 같은 고민을 하는 독자들에게 작으나마 유용한 정보가 되기를 기대한다. - 기자말


[단독주택 살아보기①] "왜 단독주택으로 이사와요? 그것도 젊은 사람이..." 
[단독주택 살아보기②] 이사 온 첫날부터 '신상' 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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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한 주택가에 위치한 우리집. 분홍빛 아젤리아가 활짝 핀 지난 해 봄 사진이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결혼 후 13년을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지 벌써 1년하고도 5개월이 지났다.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돌아보니 상당히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나는 지금 '단독'으로 사는 게 하니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공동' 주택이라고 하는 아파트를 떠나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해 보니, '독립'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아파트를 '단독' 주택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는 첫날부터 내게는 이웃이 생겼다. 내가 살고 있는 골목에는 15채의 집이 있다. 그 중 12집이 골목을 사이로 대문을 마주하며 살고 있다. 우리 동네는 담이 없다. 그러다 보니 사실 유명무실한 대문도 잠그는 집이 없다. 옆집은 물론 이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다 알고 지내며 인사도 잘 하고 산다. 그야말로 '마을'인 셈이다.

단독주택에 산 지 1년 5개월, 가장 큰 변화는...


골목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이웃'의 참 의미를 깨닫는 요즘이다. 어릴 적 시골마을에서 살면서 느꼈던 '이웃'의 정을 새록새록 다시 느끼며 살고 있다.

이사를 온 며칠 후 나는 버려야 할 책과 박스 등을 낑낑 대고 날라야 했다. 이사하기 전 정리를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버려야 할 것들은 많았다. 특히, 읽지도 않고 장식품으로 전락한 수많은 책들을 버려야 했다. 또 취재 과정에서 쌓아놓았던 많은 자료들도 버려야 했고, 이삿짐을 담았던 많은 양의 박스도 버려야 했다.

동네 사람들이 재활용을 버리는 골목 어귀까지 겨우겨우 다 날랐을 즈음, 동네 한 할머니가 나타났다.

"아유~ 뭘 이렇게 다 버려쌋는대유? 흐미~ 많기도 해라."
"아, 안녕하세요? 대추나무집으로 이사 온 한이 아빠예요. 이삿짐을 정리하니까 버릴 게 많아서요..."
"이런 거 여기다 버리는 게 아닌디... 쯧쯧."
"예? 정말요?"

나는 깜짝 놀랐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요일을 착각했거나 장소를 잘못 찾았는가 생각했다. 이사 오자마자 아무데나 쓰레기 버리는 못 된 이웃으로 '낙인' 찍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런데 그 다음 이어지는 할머니의 말씀.

"이런 거는 막 버리는 게 아녀~ 젊은 사람이라 헤프구먼... 이게 다 돈인디."

그러시고는 박스 하나를 질질 끌면서 당신 집으로 가시는 게 아닌가? 그렇다. 할머니는 박스 등 종이를 모았다가 고물상에 팔고 계셨다. 가만히 관찰해 보니 그 할머니가 박스를 줍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시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집에서 나오는 종이나 골목에 버리려고 내놓은 종이·박스는 자신의 집 창고에 모았다가 파는 그런 할머니였던 것이다.

나는 다시 내가 버린 박스를 할머니 집으로 날라야 했다. 그것도 그 할머니 집은 우리 집보다 더 멀리 있다. 나는 책이 들어 있어서 무거운 박스를 할머니집 창고에 쌓았고, "다음에 이런 거 있음 여기로 갖다놔유~"라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처음부터 이 집으로 날랐다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쓰레기 한 번 버리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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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 양 옆으로 14채의 집이 들어서 있다. 담을 없애고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서 이웃들이 한층 더 친해졌다. 물론, 주차로 인한 시비는 전혀 없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다음날 그 할머니는 집 앞 나무 그늘에서 동네 할머니 몇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내가 지나가면서 인사를 드리자 그 할머니는 "어제 저 젊은 양반이 우리 집에 박스를 한 차는 갖다 줬잖여~ 월매나 고마운지..."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할머니들도 나를 칭찬하는 듯 한 눈빛이었다. 나는 어제 쓸데없이 한 고생을 보상받는 듯해서 나름 뿌듯해 하면서 그 자리를 지나쳤다.

그런데, 며칠 후였다. 우리 아이 동네오빠의 엄마가 애 엄마에게 한 가지를 귀띔을 해 줬다고 한다. 종이와 박스를 할머니집에 갖다 줬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사실 그 할머니는 가족도 있어서 살만 하고, 혼자 살면서 더 어렵게 사는 할머니는 다른 집 할머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종이와 박스를 그 할머니네 집에 줬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알았다'고 말한 나는 그 뒤로 쓰레기 버리기 '비밀 작전'을 펼치고 있다. 박스와 종이가 쌓이면 할머니가 옮길 수 있을 만큼 작은 크기의 박스에 잘 담아서 밤 늦은 시각, 사람들이 안 보는 틈을 타 어렵게 사시는 할머니 댁 마당에 갖다 놓는 것이다. 혹시 다른 할머니가 그것을 볼까봐 야심한 틈을 이용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박스를 옮기다가 가족과 함께 사시는 그 할머니와 마주치면 난처해 질까봐 몰래 몰래 박스를 옮겨야 한다. 마치 내가 산타가 된 기분이다.

심지어 나는 마트에 가게 되면 박스를 두세 개씩 더 가져온다. 박스에 가득 차지 않아도 구입한 물건을 조금씩 나눠 넣어서 박스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작은 박스를 골라서 말이다. 그렇게 일부러 쓰레기를 만들어 할머니 집으로 나르고 있다.

그런데 지난 가을 어느 날. 아내가 할머니들에게 대추와 감을 드리려고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더니 그 할머니가 이렇게 얘기를 하셨다고 한다.

"아유~ 고마워서 워쩐댜? 어젯밤에도 한이 아빠가 박스를 잔뜩 갖다 놨대... 번번이 고마워!"

그렇게 해서 내 비밀 작전은 탄로가 났다. 아마도 어떤 할머니는 속이 상하셨을지 모른다. 여전히 난 종이를 모은 박스를 밤중에 나르고 있다. 지난번에는 그 할머니가 고맙다며 계란 한판을 가져오셨다. 종이 팔아서 번 돈으로 사 오신 계란을 먹으며 코끝이 찡하기도 했다. 아내는 우리 집에서 딴 감과 대추를 집집마다 나눠 줬다.

단독생활 보장은 안 되지만, 함께 사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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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감나무와 대추나무에서 거둔 수확물. 사실 나와 아내는 감과 대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년 내 나무 관리하고 수확하여 감은 울구고(표준어를 모르겠음) 대추는 말려서 봉지봉지 담아 이웃에게 모두 나눠줬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그렇게 난 이웃이 생겼다. 아파트에서 살 때는 같은 층 앞집 사람도 모르고 살았다. 퇴근하다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층 버튼을 누르지 않는 아저씨를 보고 당황한 적도 있었다. 같은 층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는 '아~' 하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아이가 뛸 때면 한없이 작아져 아래층 사람들에게 사과와 함께 선물 공세를 하기도 했다. 이른바 '공동' 주택에서 만나는 '이웃'은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단독' 주택에서의 '이웃'은 사뭇 다르다. 우리 골목이 담이 없어서 특히 더 그렇겠지만, 결코 혼자만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우리 가족이 여행을 갈 때 이웃집 애기엄마는 우리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물고기 밥도 주고, 강아지 똥도 치워줬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해가 질 때까지 같이 놀고, 내가 밤늦게 집에 갈 때면 볶음밥으로 아줌마들끼리 저녁을 때우기도 한다.

김장을 하면 이웃집에서 한 포기씩을 들고 집집마다 '맛 좀 보라'며 들고 오신다. 마당에 심은 꽃이 예쁘다고 칭찬했더니 그 집도 심어보라며 반을 뚝 떼어 주시기도 한다. 다섯 살 울 아이는 골목에 사는 할머니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다. 호박엿과 박하사탕을 너무 많이 주셔서 좀 고민스러운 면도 있지만, 정이 흘러 넘친다. 애기들 장난감은 이 집에 가 있다가 저 집에 가 있다가 하면서 돌고 있고, 사다리나 망치 같은 공구들도 서로 서로 빌려 쓴다.

그 뿐인가,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게 되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앞집 아저씨의 빗자루 소리 때문이다. 게으른 나 보다 훨씬 부지런한 아저씨는 일찍부터 일어나 집 앞 마당과 도로의 눈을 쓸어내신다. 우리 집과의 경계까지만 치우셔도 되지만 맘씨 좋은 아저씨는 우리 집 앞은 물론, 심지어 우리 집 계단까지 눈을 치우신다. 그러니 어쩌겠나, 나도 신세를 갚아야 하니까 다음 눈 오는 날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그 집 앞마당까지 눈을 치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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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의 자랑 아젤리아. 이 꽃이 필때면 동네사람들이 구경와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우리 골목 명물이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어제는 옆의 옆집 할머니가 우리 집 마당에 들어와 '아젤리아' 순을 다듬고 계셨다. 깜짝 놀라 웬일이시냐고 물었더니, "이 집에 꽃 피면 온 동네가 환한디, 이 꽃 거름 좀 줘야 쓰겄어" 하시는 게 아니겠나. 허락도 없이 내 집에 들어와 내 꽃나무 영양 상태까지 챙겨주시는 센스!

때론 너무 '단독'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면도 있어 불편하기도 하다. 토요일이나 휴일에 방바닥에 뒹굴며 늘어져 있어볼까 하면 밖에서 '한이야! 노~올자'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들이닥친다. 담도 없으니 문을 안 열어줄 수도 없고, 차가 세워져 있으니 집에 있다는 것도 다 안다.

나무 하나를 심어도 어떤 나무를 심었는지, 왜 그 전 나무를 베었는지를 궁금해 하시고 설명해야 한다. 어느 집에 손님이 오시면 금세 눈치 챈다. 안 보이던 차가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주차할 곳이 없으면 기꺼이 자기 집 앞을 내어주기도 하는 참 따뜻한 이웃.

난 지금 '단독'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단독' 주택에서 '이웃'과 '함께' 살고 있다.
#단독주택 #단독주택살아보기 #함께살기 #공동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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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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