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학교 아동학과 신혜원 교수.
김지영
- 저도 딸을 입양하기 전에 연장아 입양을 고민했어요. 결국, 신생아를 입양했지만 그때는 순전히 이기적인 발상이었죠. 너무 어린 아기는 양육이 힘들어서..."그런 경우 많이 있으시죠. 그런데 사실은 자기 자식이 없어서 입양을 하는 경우는 아예 애기 때부터 키우기를 원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 직접적인 질문인데요. 연장아 입양이 왜 힘들어요?"인간의 발달단계에서 생후 3세까지 양육자하고 애착관계가 형성되는데, 초기 부모 자녀 관계가 아이 삶에 중요한 요소예요. 그런데 연장입양 아이들은 대체로 생애 초기에 애착이 발달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연장 입양아들은 나이가 들어서 입양되기 때문에 애착이 형성되지 않은 경우도 있고 혹은 파행 경험으로 인해 애착 손상 및 심리 정서적 손상이 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힘들어요. 물론 시설에서 자란 아이라도 무난하게 안정적으로 잘 적응하는 아이들도 있지만요. 그리고 연장입양을 하는 사람들이 아이 양육에 사회적 의미를 두는 경우..."
- 사회적 의미라고요? "네. 역사적 사명처럼 생각하셔서 자기 의무처럼 생각하시는 그런 것 때문에 안타까운 경우도 있어요."
- 그런 생각으로 입양할 경우에 어떤 위험성이 있나요?"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좀 다르다는 거죠. 그냥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지 않고 좀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냥 부모 자녀 관계로 만났으면 모든 아이는 다 똑같다는 거죠. 이 아이가 입양됐기 때문에 이런 특성이 있다는 게 아니라는 거죠.
제가 부모 자녀 관계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혈연관계에 있는 아이들을 많이 들여다 보는데 별로 다르지 않아요. 자기가 낳은 아이하고 부모하고 사이에 적합성이 딱 맞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일반 가정도 부모하고 아이하고 상극인 집 있잖아요. 만남의 형태가 다른 것뿐인데. 입양이라는 편견 때문에 더 어려운 거 아닌가 하는 거죠.
아이와의 문제를 사회적 의의로 접근하면 내가 사회적으로 뭔가 공헌한다는 것 때문에 어떻게든 결과가 좋아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힘이 들어가다 보면 부모가 자꾸 원하는 길로 자식이 가야 되는 거죠. 부모 자녀 관계에서 제일 조심해야 되는 게 부모라는 권위를 가지고 자식을 휘두르면 안 되거든요. 입양부모들이 일반 부모들처럼 사회적인 성취나 성공을 강요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것만이 자식의 인생을 간섭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무리 어린 아이도 스스로 자기가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봐요. 그런데 애가 실수할까봐 잘못될까봐 염려가 너무 많은 거예요. 실패하더라도 그 아이가 실패를 경험하면서 성숙해지는 거고 부모가 해줘야 되는 거는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위로해주고 공감해주고 힘을 내서 다음 것을 선택하게 해주면 되는 건데 그 과정이 사실은 쉽지 않죠. 하지만 양육에 대한 힘이 너무 들어갔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아요."
- 연장아라는 개념이 왜 생겼나요?"연장입양은 학문적으로 합의된 개념은 아니에요. 입양을 한 부모들이 나이가 좀 많은 아이들을 입양하는 경우를 '연장아 입양'이라고 명명하기 시작한 거예요. 연장아를 입양한 부모들은 대체로 자녀 양육을 많이 힘들어합니다. 그건 당연하잖아요. 신생아 입양은 부모님들이랑 함께 한 경험 밖에 없어서 자연스럽게 가족공동체로 편입이 돼요. 하지만 예를 들어 다섯 살 때 만났다면 5년 동안 각각 살아온 거예요. 그 5년 동안 생활도 기질도 성향도 다른 거죠."
- 실제로 연장아가 몇 개월부터냐 몇 년부터냐 의견이 분분한데 이게 의미가 없다는 건가요?"의미가 없죠. 인간의 특성은 각기 다 다른데 이거를 일반화시켜 버리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미국에 있는 신생아입양 가정을 만났는데요. 한국인 가정인데 오빠가 둘 있고, 막내딸을 입양했는데 신생아 입양이라기보다는 연장아 입양과 같은 특성을 보였어요.
생후 6개월 때, 입양했음에도 애착 형성이 다 끝난 세 살 이후에 입양한 연장입양아만큼 힘들게 해요. 기질적으로 예민한 아이였던 것이죠. 자신이 버려졌다는 상실감과 갑자기 다른 환경으로 옮겨져서 생활하게 되는 불안감 때문에 입양부모를 아주 힘들게 했던 거죠.
애착 손상이 있는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부모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입양 부모를 테스트해 보는 반응들을 종종합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부모를 이렇게 힘들게 하더라도 부모가 나를 떠나지 않는지를 확인해 보는 행동들을 합니다. 아이의 이런 행동들은 입양부모를 굉장히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하나씩 해결해가면 결국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게 되고, 부모와 아이는 친밀하고 끈끈한 부모 자녀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죠."
- 기질하고 성격은 다르잖아요? "기질은 타고난 속성이죠. 대표적으로 까다로운 기질, 순한 기질, 느린 기질 이렇게 구분을 하죠. 기질은 바뀌지 않아요. 다만 강도가 완만해지는 거죠. 성격은 기질이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는 경험 속에서 만들어가는 거예요. 나쁜 기질과 좋은 기질은 없어요. 다만 환경과 상호작용 속에서 긍정적으로 발현되느냐 부정적으로 발현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기질이 유전될 확률은 10% 미만이에요. 자기가 직접 낳은 아이도 결국엔 '안드로메다'에서 오는 거라고 보면 돼요."
- 제가 언뜻 몇 분한테 똑같은 얘기를 들었는데 애가 입양될 당시 나이만큼 기간이 되어야지 애착이 형성되더라고 하던데요?"심리치료적 관점에서 통상적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이의 문제행동을 고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입양가정의 아이와 부모가 애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요구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반응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차 일정한 패턴의 상호작용을 하게 되고 서로를 신뢰하게 되어 애착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연장 부모님들의 오류는 내가 부모고 쟤는 아이기 때문에 기준과 가치를 애가 맞춰야 되는 거예요. 근데 그건 아닌 거죠. 가족은 그거랑 상관없이 쌍방조절을 해야 되는 거고. 애가 어리더라도 부모님도 애 특성을 인정하고 조율을 하실 필요가 있는데 그걸 자꾸 애가 입양아기 때문에 내 기준에 애를 맞춰야 돼. 나는 옳고 쟤는 틀렸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더라는 거죠."
"입양이라는 편견을 내려놓고 아이를 키우면 좋겠어요"- 그런데 아이가 입양되기 전에 입양가정은 이미 그 가정만의 질서와 분위기, 즉 그 가정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대부분 부모들은 기존 가족의 질서를 깨트리기 싫어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데 그거를 깨트릴 수밖에 없다는 거죠. 아이는 부모나 가족의 부속품이 아니라 독립된 객체이기 때문입니다. 즉,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기존 가족의 문화에 아이의 특성을 포함해 조금 달라진 가족 문화를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가 기존의 질서를 완벽하게 유지하기 어렵다는 거죠.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재구성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걸 기존 가족질서에 대한 위기감으로 느끼는 거죠."
-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기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잖아요. 당연히 새로 온 아이는 우리 가정에 맞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원할 것 같은데요? "제가 아무리 이렇게 얘기를 해도 아이가 가진 권위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말씀하신 대로 원래 아이는 가족에 스며들 수밖에 없어요. 자기가 뭘 얼마나 많이 거부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느긋하게 느슨하게 가주셨으면 좋겠는데 이게 빨리돼야 된다는 거죠. 그런 조급함에 억지로 바꾸려고 하니까 불협화음이 되면서 애착기간이 더 늘어나는 거고요.
입양이라는 편견을 내려놓고 아이를 키우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애 없는 집에 아이가 태어났어요. 부부생활이 얼마나 많이 바뀝니까. 가사 분담도 달라지고 생활 패턴도 엄청나게 바뀌잖아요. 그러다 간신히 평화를 얻었어요. 그런데 둘째가 태어났어요. 그러면 부부만 힘든 게 아니라 큰 애도 힘들잖아요. 자기 존재감의 위기. 그래서 또 지지고 볶고 만날 싸우면서 어쩌고저쩌고 그런다는 거죠. 그러니까 입양아가 집에 들어오는 것도 똑같은 거예요. 동생 하나가 태어난 거예요.
당연히 힘든 거고 그만큼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하므로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씩 천천히 해야 되는데 급한 거죠. 그러지 못하면 부모가 지녀야할 능력이 없다고 자괴감에 빠지고 그게 안타까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