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담임교사가 최순근 할머니에게 1학년 교과서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짝꿍인 이승찬 어린이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함께 듣고 있다.
장선애
"세살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디, 그때까지 호적이 없었유. 옛날에는 출생신고를 다들 늦게 했으니께. 내가 원래는 한산 이씨인디 호적 빌리느라구 최씨가 됐지."
1946년생으로 6·25전쟁과 가난한 시대를 살아낸 최 할머니의 고단한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남의 집 살이를 하며 자란 할머니는 열아홉살 때 가정을 꾸렸지만,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다. 6남매를 낳아 키우면서 맞벌이를 하느라 자식들 입학식과 졸업식, 운동회에도 가지 못했다.
"막내딸이 쌍둥인디, 걔들 국민핵교(폐교된 귀곡초등학교) 입학할 때 딱 한 번 가봤유. 덕분에 애들 한복 입혀 찍은 사진이 한 장 있어."학교는 그렇게 최 할머니에게 멀기만 한 곳이었고, 평생의 꿈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노인네가 학교 가는 거 나오면 그렇게 부럽더라구. 서울 살면 나두 할텐디 왜 시골은 그런 것도 없나 생각만 했지, 내 생전에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어. 우리 막내아들이 '엄마 진짜 학교 가겠냐'고 묻더니만, 월차내고 내려와서 같이 학교에 가서 알어봐주고 면사무소루 서류 떼러 갔더니 면장님이 직접 교육청에 전화해 다른 서류까지 처리해주시구 해서 하루만에 일사천리루다가 되더라니께."독실한 기독교인인 최 할머니는 성경을 많이 본 덕분에 읽기는 가능하지만,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받침 넣는 게 너무 복잡혀. 숫자두 0을 몇 개 쓰는지 몰라 깜깜하구. 반듯하게 내 이름 석자만 쓸 줄 아니 어디 가서 글씨 써야할 때 '못쓴다'구 헐려면 얼마나 가슴이 저리고 기가 죽는지…"자녀들도 모두 출가하고, 지난해까지 유일한 농사처였던 화산천 둔치밭도 정비공사로 못짓게 되면서 최 할머니의 면학(?) 여건이 조성됐다.
"나는 인제 짐보따리 다 내려놨으니 공부에만 전념할 거다"는 선언에 자녀들도 두 손 들어 환영했다.
할머니의 꿈은 소박하다.
"입학은 했느니 가방 메고 핵교 다녀서 졸업증 따는게 제일 기대돼유. 75살이 돼야 졸업할텐디 다른 욕심은 없구, 그저 편지라도 쓸 줄 알면 더 바랄 게 읍슈."6년 뒤 신양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최 할머니를 꼭 만나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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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늦은 입학 "편지 쓸 줄 알면 좋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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