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최악의 수업, 다신 이러지 말아야지!

[신규교사 생존기 ②] 내 욕심을 채우는 수업은 아이들에게 독이 된다

등록 2015.03.20 11:10수정 2015.03.20 11:10
2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개인적으로 대학에서부터 수업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수업을 더 잘해보고 싶고 창의적으로 진행해보고 싶고. 또,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할지 혹은 배움이 있게 수업을 진행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나의 수업 준비는 언제나 퇴근 시간인 5시를 후울쩍 넘긴다. 9시는 기본, 11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주말도 예외는 없다. 나는 주말에도 내 개인 시간을 쪼개가면서 수업을 준비하곤 한다.


어쩌면 그래서 내 개인 시간을 쪼개가며 준비한 수업에 스스로 애착이 가는 것이 당연했다. 밤새 준비한 것을 다 보여주고 싶고, 다 알려주고 싶고, 더 말해주고 싶고. 야속하게 흘러가는 수업시간 40분은 내가 준비한 수업에는 1분 1분이 아쉬운 시간이었다.

a

수업은 아이들을 위한 것 (글과는 상관없는 이미지입니다.) ⓒ 고상훈


"자자, 여기 봐야지!"
"어디 보는 거야? 선생님 봐야지!"
"집중, 집중! 마지막이야, 마지막!"

그날 사회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전날 열시까지 수업 자료와 내용을 준비하고 나 스스로 수업할 생각에 들떠 자신 있게 6교시 수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수업의 양은 내 생각보다 아이들이 한 시간 안에 배우기에는 다소 부담이 되는 양인 듯 했다. 시간도 부족했고, 아이들의 이해도 역시 한계에 부딪힌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수업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선생님인 나의 말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목소리의 크기도 점점 커져만 갔다. 전할 내용은 아직도 한 움큼인데, 시간은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에 쫓기는 나는 아이들이 떠들면 혹은 딴 짓을 하고 있으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쏘아붙이며 집중을 강요했다. 어서어서 빨리빨리 해야 할 수업 내용을 다 전달하고서 수업을 마쳐야했기 때문이었다.

수업을 그렇게 꾸역꾸역 끝내고나서 아이들이 사회 노트에 정리한 내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데, 이건 뭐 죄다 엉망이다. 아이들 표정들도 멍. 폭풍같이 스쳐 지나간 6교시에 혼이 나간 것 같이 보였다.


아차, 내가 정말 큰 실수를 했구나. 나는 내가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전부 다 보여주겠다는 생각, 그 생각 하나 때문에 정작 정말 중요한 우리 반 방울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겠다고 다짐해두고선 수업에 대한 내 욕심을 채우고 싶어 아이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니. 심지어, 나는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이 내용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느꼈는데 말이다!

사실, 알고 보면 아이들은 정말 솔직하다. 지나치게 어렵거나 재미없거나 힘들면 바로 드러난다. 의자를 흔들흔들, 옆 친구와도 조잘조잘, 눈의 초점도 이리저리, 연필은 낙서를 끄적끄적. 그래서 아이들의 솔직한 리듬에 따라 수업의 흐름과 호흡을 조절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용을 얼마나 어떻게 잘라서 가르치는 지에 따라서 아이들이 배우는 정도 역시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사회 수업을 진행할 때,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고 과감하게 수업을 자르고 호흡을 조절했어야 했다. 그 수업이 비록 내가 밤새 준비한 수업임에도 말이다. 수업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반 방울들이 배워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나는 잊고 있었다. 수업의 주인이 바로 아이들이라는 점 말이다. 나는 그렇게 최악의 수업을 하고 말았다.

'어제 사회 시간이 정말 힘들었다. 집중을 못해서 선생님께 혼났다.'

다음날, 한 아이가 아침 두 줄 글쓰기로 내밀었다. 나는 "선생님이 미안해"라고 답했다.
덧붙이는 글 2015년 3월 2일부터 시작된 신규교사의 생존기를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 #초등학교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