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들이 환영회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 이 행사는 보통 '사발식'으로 불린다.
박민규
한동안 막걸리만 보면 속이 울렁거렸다. 반투명 초록병만 봐도 점심으로 먹은 것들이 올라오는 듯했다. 술 좀 마신다고 까불던 친구들도 그랬다.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라는 말을 대학에 들어와서 배웠는데, 여기 딱 들어맞았다. 6개월 정도 갔으니 굳이 구분하자면 '작은 트라우마'였다. 시간이 지나니 다시 막걸리를 마실 수 있게 됐다. 그 시절도 추억이 됐다.
"막걸리 안 마셔요. 신입생 환영회에서 마시고 토한 기억 때문에…."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신입생들에게는 추억이 아니라 현재다. '마시고 토하는' 신입생 환영회는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7년 전 내가 그랬던 것과 똑같다. 과 마다 다르다지만, 보통 막걸리를 2~3병씩 마시고는 토해낸다. 술 많이 마시기로 유명한 공과대의 모 학과는 신입생 한 명에게 무려 9병을 할당(?)한다는 소문도 있다.
행사가 끝나고 몇몇은 토끼눈이 된다. 억지로 토하느라 힘을 줘선지 눈의 모세혈관이 터져나간 것 같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모르는 사람은 물을 테다. "술을 한 번에 그렇게 많이 마시는 것이 가능하냐"고. 하지만 이 행사에서 막걸리는 마시는 것(?)이 아니다. 자기 허리만큼 올라오는 막걸리 통을 앞에 두고 덜덜 떠는 신입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선배들은 이렇게 말한다.
"네 몸을 하나의 큰 통이라고 생각해. 그냥 잠깐 담았다가 다시 빼내는 거야. 걱정 마!"간만에 만난 후배들에게 "아직도 그렇게 많이 마시냐" 물었다. 남의 일인 듯 까맣게 잊고 살다가 졸업할 때가 돼서야 관심을 가지는 못난 선배에게, 후배들은 사정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안 그래도 양을 줄이려고 했는데, 새내기들이 토하고 뒤풀이 자리에 가고 싶다며 차라리 많이 먹자고 하더라고요. 작년에도 다 못 토해낸 애들이 많아서, 확실히 토할 수 있게…."마신 술을 토해내지 못하면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니, 무조건 토할 수 있을 때까지 들이붓는 편이 오히려 신입생들에게 낫다는 거다. 나와 동기들도 한 학번 아래 후배들에게 "소화시키면 안 되고, 토해야 돼"라고 말했었다. 선배로서 부끄럽고 미안했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다시 물었다. "혹시 바꿀 수 있지 않겠냐"고.
"일단 제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까라는 대로 깔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자조에 가까운 반응에 새삼 놀랐다. 다른 후배들도 문제에 대한 인식은 비슷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짚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아졌다. 학생회 활동을 하는 후배들이 고맙게도 뜻을 함께해 줬다. 며칠 뒤 학생회 차원의 간담회가 열렸다.
뜻을 함께 해준 후배들, 간담회 후 '막걸리 한잔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