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등 교체 4만 원, 직접 하니 만 원!

[초짜 살림꾼의 집수리 일기] 현관 센서등, 수도꼭지 직접 교체하다

등록 2015.03.23 18:54수정 2015.03.2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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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지 10년이 넘은 빌라(다세대주택)에 4년째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오는 여름에 전세 기간이 만료되어 이사를 가려다가 우여곡절 끝에 전세금 천만 원을 올려주고 주저앉게 되었다.


이사 갈 마음을 고쳐 먹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난관이 있었다. 이사갈 생각으로 집안 사정을 돌보지 않은 탓에 손을 보지 못한 집안 구석구석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싱크대 수도꼭지는 제대로 잠기지 않을 때가 많아 몇 번이고 다시 눌러 잠가야 했다. 또 수관을 막아놓은 나사 틈에서는 물이 샜다. 욕실 세면대 수도꼭지는 부속이 삭았는지 가끔 저 혼자 물줄기를 내뱉고 있을 때가 있다. 욕실 나무문은 아랫부분부터 썩어가 이제는 건드리면 조각조각 부서진다. 거실 센서등은 센서가 제기능을 못해 일반등처럼 사용한 지가 꽤 됐다.

이런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는 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집주인이었다. 새로 계약서를 쓰면서 교체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보기좋게 '까'였다. 그것도 단칼에.

"우리는 예전부터 세입자가 알아서 해 왔어요. 사는 동안은 책임을 지는 거니까요. 그런데 꼭 그 집만 문제가 생기네요."

태연한 집주인 앞에서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이런 게 가진 자의 '포스'인가? 기에 밀렸으니 민법 운운할 상황이 아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전세금만 올려준 것에 안도하며 내가 알아서 해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새로 쓴 계약서를 들고 동네 주민센터에 가서 확정 일자를 박고 나오는 길로 집 주변을 돌며 수도꼭지 2개와 센서등을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을 알아보았다. 철물점 5군데를 돌고 최종 견적이 나왔다. 최저가 11만 원. 선심 쓰는 사장님의 배려가 녹아든 가격이다.

"센서등 하나 가는 데만 해도 4만 원이에요. 한꺼번에 하니까 깎아드리는 거예요."


집수리비 최저가 11만 원... 그냥 내가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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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대 수도꼭지 교체하기 보통일은 아니다. 이거 하나만 교체한다면 두 번 생각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 초짜는 교체하는 데 3시간이 걸렸다. ⓒ 강현호


적어도 전구는 갈 줄 안다. 하지만 전구와 전등은 한 끝 차이라도 전혀 달라 보인다. 산수와 수학이 한 끝 차이라도 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전구는 부속을 가는 거고 전등은 기계 자체를 교체하는 거다. 무엇보다 전선을 만져야 한다. 무섭다.

무엇보다 세면대 수도꼭지가 난공불락이다. 실리콘으로 붙여놓은 듯 보인다. 그럼, 세면대를 뜯어내는 대공사 아닌가? 초짜의 마음은 점점 복잡해져가고 상황을 점점 거대한 방향으로 그려간다.

그러다 인터넷으로 센서등 가격을 알아보고는 결심했다. 오픈마켓에서 택배비포함 8천 원이면 센서등이 집 앞으로 배달된다. 철물점 주인은 그걸 4만 원 받고 교체해 준다고 했었다. 속지 않았음에 스스로 대견해 하며 나만의 공사를 시작했다.

먼저 센서등을 교체했다. 전기차단기를 내리고 작업하는데 의외로 쉬웠다. 드라이버 하나로 고정된 센서등을 떼고 새제품을 끼우니 작업은 끝났다. 전선을 연결하고 테이프로 감아주는 게 가장 큰 일이라면 일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4만 원을 받기에는 너무 쉬운 작업이다.

거실 수도꼭지까지 무난하게 교체하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그거 조금 일했다고 아귀가 아파오는 걸 보면 집안 일 천재까지는 아닌 모양이지만, 생각처럼 영 기계치도 아닌가보다.

그래서 대망의 세면대 수도꼭지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칼로 실리콘접착 부분(알고 보니 실리콘이 아니라 스폰지였다)을 도려내고 세면대 아래쪽에서 수도꼭지와 수관이 이어지는 부분의 나사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3시간이 훌쩍 지났다. 해냈다.

그 사이 집안은 엉망이 되어 있다. 엔트로피가 최고점을 찍었다. 아내와 아이는 아수라장을 피해 들어가더니 안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손은 아파오고 얼굴에는 정체 모를 검댕이 묻었다. 바지는 젖었고 온 몸은 맥주 한 잔을 애타게 찾을 만큼 수분과 에너지가 빠져나가 있다.

몸은 지쳤지만 돈을 아꼈다...그리고 약간의 자신감 상승

몸은 지쳤지만 돈을 아꼈다. 계산을 해 보았다. 투입된 시간 6시간. 인터넷 주문을 포기하고 빨리 작업하기 위해 동네 철물점에서 산 센서등 1만 원, 수도꼭지 2개 4만9000원, 니퍼 4000원, 중국산 미니 스패너 7000원, 절연 테이프 1000원. 합이 71000원이다. 원래 11만 원 주고 할 일이었으니 난 얼마를 아낀 거냐.

대견하다. 돈도 아꼈고 내 집을 내가 수선하는 데서 오는 재미와 자부심도 생겼다. 문득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이다. 내가 아는 세계가 불쑥 넓어졌다. 언감생심 전기선을 만지고 수도꼭지를 들어내다니 생각도 못 해 봤다. 장족의 발전이라는 말을 이럴 때 안 쓰면 언제 쓸 것인가. 하면 된다는 말이 슬쩍 떠오르지만, 그건 옳지 않다. 해보기는 했어 정도가 적당하겠다. 뿌듯하다.

그런가 하면 폐부 한 구석이 또 씁쓸하다. 2년 동안 돈 천 만 원만 올려준 것에 감격해 쪼르르 달려가 돈을 냈고, 내 돈을 주고도 큰 소리 한 번 제대로 치지 못한 세입자 신세인 나. 그런 위인이 돈 몇 만 원 아꼈다고 가장의 참 모습에라도 등극한 양 의기양양하는가, 이 텅 빈 풍선 같은 자신감이라니.

얇은 바늘이면 뻥 터져버리겠다. 애초에 벌이가 좋았으면 몇 시간 고생하지 않고도 쉽게 수리 했을 거고 그동안 가족이 피난을 가는 수고는 없었겠지. 초라하다. 뭐 그래도 어쩌겠나. 그게 내가 헤쳐나갈 형편이고 처지인 것을. 초라함과 대견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사는 거지. 혹시라도 주세 오르기 전에 조금 비싼 맥주 몇 병 사다 자축과 위안이나 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아날로그캠핑' 블러그에도 게재했습니다.
#수도꼭지 #삶의애환 #집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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