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뻥칠지라도, 그대의 뻥은 감칠맛 납니다

[포토에세이] 모란 오일장 소경

등록 2015.03.24 18:24수정 2015.03.2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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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 모란오일장에서 만난 뻥튀기, 그 옛날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 반갑다. ⓒ 김민수


지하철 8호선 모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이어지는 모란시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오일장이다. 꽃샘추위가 온전히 물러간듯 봄볕이 따스한 날(3월 24일) 열린 모란장은 가장 큰 규모의 오일장답게 북새통을 이루었다.


어디든 사람이 북적여야 사람 사는 맛이 나는 법이다.
한가로운 것이 그리워 사람을 떠났다가도 북적거리는 세상이 그리운 것은 사람은 사람맛 나는 곳에 살아야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뻥이요!"

살가운 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뻥!' 소리와 함께 하얀 김이 모락거리며 올라온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지만, 뻥튀기를 하려는 손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란 오일장이 존재하는 한 그곳에선 계속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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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 쌀, 옥수수, 누룽지, 콩 등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김민수


모란오일장에는 만병통치약에서 부터 화초, 씨앗, 모종, 초상화, 강아지, 갖가지 곡식과 봄나물들과 강아지들까지 천상천하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들이 다 모여 든 것만 같다.

그 모든 것들이 다 모여 있다보니 사람 사는 세상처럼 눈살 찌푸릴 일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니 어쩌겠는가? 눈살 찌푸릴 일이란 순전히 개인적인 성향때문인데, 살아있는 개들을 철장에 가둬두고 손님이 고르면 도살을 해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좀더 솔직해 지자면 조금전 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눈을 보았으니 불편한 것이지, 다른 축산물도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니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개와 눈이 마주쳐 버리다니....이내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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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오일장 뻥튀기할 것을 맡기고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 ⓒ 김민수


개고기 논쟁이나 이런 것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음식문화의 차이일 뿐이고, 어차피 인간은 먹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며, 때론 고상한듯 더 잔인한 일들을 동종인 인간에게도 행하는 존재가 아닌가?

뻥튀기 이야기나 하자.

흔히 과대포장해서 말을 하는 것을 '뻥친다'고들 한다. 쌀이나 옥수수 같이 작은 것들을 뻥튀기하듯, 달콤한 말로 감언이설 하는 것을 뻥친다고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뻥치기는 좀더 고상한 말로 바꿔 말하자면 '공약파기'다. 그리고 좀더 사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거짓말'이고, 은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뻥'이다.

이런 '뻥'에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잘도 넘어가다 보니 이젠 정치인들이라면 으례 겁도 없이 뻥을 친다. 감옥에 들어갈 만한 '뻥'을 쳐도 당당하고, 권력의 끈만 쥐고 있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다. 이 나라의 대다수 국민에게는 권력의 부조리에 항의를 한 댓가만으로도 벌금형으로 당하고, 벌금형 대신 노역을 살겠다고 감옥으로 향하는 일이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다.

1980년 군부독재시절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대다수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현실을 뻥튀기처럼 부풀린 일부 기득권자들에게나 적합한 노래였으나 전 국민이 그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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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오일장 뻥튀기를 할 시간이 되자 "뻥이요" 소리가 들려오고, 귀를 막는 이들의 표정이 유년의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 김민수


그뿐 아니라, 이명박 정권에서의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라는 '뻥'에 놀아났으며, 현 정권과 여당의 선거공약은 '뻥'이였음을 확인하는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세상이고, 귀를 막고 싶은 뻥치는 세상인가?

세상사의 '뻥'을 생각하면 한도 끝도없이 심사가 뒤틀린다.
그러나 모란오일장에서 만만 '뻥이요!'라는 소리는 유년 시절의 추억들을 마구마구 불러일으키며 침샘에 침을 고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시장을 두어바퀴 돌고 팥칼국수를 파는 식당에서 4천 원짜리 점심을 먹는다.
팥칼국수와 옹심이를 손님 취양에 따라 섞어 내주는데 반찬은 달랑 깍뚜기 하나다. 그런데도 앉을 자리가 없이 바쁘고, 주인장은 바쁜 와중에도 식당을 찾는 단골 손님들에게 덕담을 나눈다. 그 덕담도 일종의 '뻥'인데, 아주 기분이 좋다.

"아이고야, 어머니 왜 이렇게 예뻐지셨데?"
"이 나이에 예뻐지면 뭐하누."

크, 한사코 안 예뻐졌다고 우기면서도 입은 함주박만큼 커지신다. 이것도 저것도 뻥, 오일장에서는 이런저런 뻥들이 다 감칠맛이 나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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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오일장 북적거리는 뻥튀기점포 맞은 편에서 맷돌질을 하는 할머니의 몸짓에서 한가로움의 여유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 김민수


뻥튀기집은 북새통을 이루는데 한가로이 맞은 편에서 엿기름 가루를 곱게 맷돌로 가는 할머니는 쓸쓸해 보였다. 그런데 천천히 시장을 서너바퀴 돌다보니 사이좋게 돌아가면서 북적거린다. 그냥저냥, 장날 나와 팔고 싶은 만큼은 어떻게든 팔고 가는 것 같다.

오일장이라는 것이 입심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병통치약도 그랬고, 쇠도 자르는 칼도 그랬고, 무엇이든지 다 붙이는 용접기도 그랬고, 타일이며 유리를 자르는 다이아몬드칼도 그랬다. 손님이 하나도 없는가 싶었는데, 어느 새 하나 둘 모여들어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기도 쉽지 않다. 그 입심이라는 것의 다른 말을 '뻥'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완전 뻥이 아니라, 적당한 뻥. 그래서 오일장에서 만난 뻥은 감칠맛이 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에 사용된 사진은 3월 24일, 모란장에서 담은 사진들입니다.
#모란오일장 #뻥튀기 #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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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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